산에‘반야’라는 친구가 있었다. 나보다 한 살 아래인 친구인데 지능이 낮은 바보인 친구이다. 모습은 180cm 정도의 키에 좀 뚱뚱한 편이지만 아이 같은 체형을 가지고 있고 몸의 움직임도 아이 같은 면이 있어서 귀여운 느낌이 든다. 인상은 쪽 째진 작은 눈에 검은 피부여서 무서운 듯 귀여운 인상을 하고 있다. 가만히 무표정하게 있으면 차가운 느낌에 무서운 인상이지만, 한 번 웃음이라도 지으면 그 눈이 반달 모양으로 바뀌면서 천진한 느낌을 준다.
이 친구는 나보다 먼저 산에 들어와 있었고, 어떻게 보면 나보다는 고참인 친구이다. 본래 자신의 집에서 쓰는 이름이 있지만, 산에서 스님들과 살고 있어서 붙여준 이름이 반야이다. 역설적으로‘반야’는 불교에서 ‘부처님이 깨달으신 지혜’를 의미한다.
언젠가 한 번 대중들끼리 얘기를 하다가 만약 인기투표를 하면 반야가 일등일 거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이유는 누구나 반야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절집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 비록 마음공부를 하려고 해도 사람들 사이에 있는 갈등은 존재한다. 하지만 반야는 그 누구와 갈등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살고 있을 뿐이다. 물론 반야로 인해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그대로 대중들이 당연한 듯 감당하는 것이다.
다른 사찰은 어떤 식으로 가르치는지 모르지만 내가 있던 곳은 스승님께 많이 혼난다. 거의 혼을 빼놓을 정도로 혼나는 경우가 많다. 보통의 경우 내가 가지고 있던 작은 인식의 세계로 인해서 생기는 아집을 털어내기 위해서 혼내신다. 물론 알고는 있지만 혼날 때는 너무 고통스럽다. 혼나는 그 자체가 힘들기도 하지만 세상을 버리고 마음공부를 하겠다고 깊은 산중사찰에 들어와 놓고선 제대로 공부가 되지 않는 스스로에 대해 힘이 든다. 그렇게 혼나고 반성하고, 다시 혼나고 반성하다 보면 참회(懺悔) 비스름한 경험을 하게 되고 참회를 하고 나면 그 행동을 다시는 하지 않게 되기도 한다.
아무튼 이렇게 혼이 쏙 빠지게 혼나는 날이면 자괴감에 빠져 나 자신이 싫어진다. 그러면 방마다 돌면서 아궁이의 불이 잘 붙어 있는지 다시 살필 때 눈물이 흘러내리곤 한다. 이럴 때면 아궁이 보조역할을 하던 반야가 옆에서 눈치를 보곤 한다.
그 수없이 많던 날 중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혼나서 자신을 자책하며 다시 그렇지 않기 위해 다짐하며 아궁이를 살펴보고 있었다. 옆에는 반야가 같이 쪼그리고 앉아서 불을 보고 있었다.
무심결에 “반야~! 난 왜 이러냐~. 왜 이 업식이 사라지질 않냐?”라고 말하며 내 자신의 업식을 자책하고 있었다. 그러자 반야는 “아~. 그래요~? 그렇구나. 그래서 스님이 힘들구나”라고 말을 하면서 슬며시 사라졌다. ‘나무를 더 가지러 갔나~?’하고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데 파란색 플라스틱 바가지에 우리가 마시는 개울물을 떠 와 나에게 아무 말 없이 내밀었다. 뭔가 내가 안돼 보였던 것 같다. 자신의 입장에서 마실 물 한 그릇 내어주는 것이 최선의 도움이라고 생각한 듯했고, 난 그렇게 위로를 받았다. 그렇게 바가지를 받아드는 순간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리곤 묘한 위로를 받는 느낌으로 자책에서 벗어난 적이 있다. 아마도 대중들 모두 이런 식으로 반야에게 위로받은 경험들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이런 이유로 인기투표를 하면 반야가 1등을 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반야에게 위로를 받을 때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분석하고 원인을 찾아주는 똑똑한 사람보단 그저 옆에서 마음 한 켠을 내주는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의 바보가 더 좋다는 것이다. 그때 마음 한 켠을 내준 반야에 대해서는 지금도 고마움을 느낀다. 내가 자기 번민에 빠지고 회의감이 들어 힘들 때 다시 일어나서 나아가는 힘을 줬다.
그래서 세상에 내려 온 지금, 난 똑똑한 사람보단 심지가 곧고 마음이 넓은 사람이 더 좋다. 세상을 살펴보면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 똑똑함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세상을 속이려는 경우도 많이 봤고, 또한 마음은 얄팍하고 좁아서 별로 같이 있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반면 조금 손해를 봐도 마음이 넉넉하고 계산이 빠르지 않으며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과는 계속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어떻게 살 것인지는 자신의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나는, 똑똑함을 무기로 다른 사람을 기만해서 이익을 취하는 속이 좁은 사람보단 조금은 어리숙해도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마음을 가진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고 싶다.
그리고 가끔 그 시절의 반야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