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저녁

by Monked


산중 생활은 단조롭다. 특히 내가 있던 절처럼 전기도 없고 전화도 없고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산 속의 스님생활은 단조롭기 그지 없다. 그런 간단한 일상은 자연의 변화에 민감하게 만든다. 해가 뜨고 지는 것과 달이 뜨고 지는 것도 알게되고, 봄이 여름을 스쳐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되는 것도 알게 된다. 밤에 뜨는 별이 계절에 따라 위치를 바꾸는 것도 알게 되고, 나뭇잎이 색을 잃고 바래지는 것도 알게 된다. 일없이 바쁘게만 살던 도시촌놈에겐 이런 모든 자연의 변화가 신비로움이 되어 다가온다.


그중 아름다움의 백미는 여름의 저녁노을이다. 한겨울, 잔설이 남아있는 산죽에 비친 달빛도 아름답지만 여름의 저녁노을과는 결이 다르다. 한여름의 노을이 마음을 풍성하게 해준다면 한겨울의 달빛은 머리를 차갑게 식혀준다.


여름의 저녁은 길다.

저녁예불을 끝내고 나와도 아직 해가 남아있다.

여름의 저녁예불은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남아있어서 꽤 힘겹다. 예불의 마지막인 백팔배를 끝마치고 나면 온몸은 땀범벅이 되어 옷속으로 땀이 흘러내린다. 그렇게 예불을 끝내고 법당을 정리하고 나오면 여름 산중 절의 가장 큰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 멱감으러 개울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수건에 바가지 하나 걸쳐들고 각자 좋아하는 개울로 향한다. 특히 북향에 있는 개울은 한여름에도 이가 부딪칠 정도로 차갑다. 그래서 늘 여기가 붐빈다. 그래봤자 3~4명에 불과하지만 대중은 이 곳을 선호한다.


옷을 벗어 나름 널듯이 나무가지에 펼쳐놓고 바위와 돌을 밟고 들어가 물에 발을 담그면 차가운 감촉이 온몸에 퍼진다. 그리곤 바가지로 대충 몸에 찬물을 뒤집어 쓴 뒤, 나즈막한 웅덩이에 몸을 담근다. 머리 속을 헹궈내는 듯한 냉기가 전신을 덮치면 그 뜨겁던 온몸의 열기가 금세 식어간다. 숨에서 차가운 기운이 나올 때까지 몸을 담궜다가 물에서 나오면 어둠의 그늘이 살짝 드러난다.


그렇게 각자 멱을 감고 나와 도량으로 돌아와서 한 명씩 법당 건물 가장자리에 있는 낮은 너럭바위로 모인다. 그럼 모두 말없이 서쪽을 바라보며 그날의 공연을 기다린다.


잠시 후 드디어 해가 지면서 노을의 향연이 시작된다.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자연의 신비가 하늘을 감싸면 노을만큼이나 장려한 마음이 내 안에 자리 잡는다. 매일 매일이 새로운 하늘이고 노을이다. 붉은 색 노을부터 황금색 노을까지, 빛과 구름과 색의 조화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자연의 신비로 펼쳐지는 것이다.

그렇게 멍하니 끊임없이 변화하는 노을을 바라보다 보면 대략 2~30분 정도의 시간이 흘러있고 도량엔 어둠이 낮게 깔려 있다. 하늘의 선물이 끝나면 이젠 각자 말없이 흩어져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촛불을 켠다.


하나 둘씩 방의 불이 켜지면 어둠은 더욱 짙어지고 하루는 끝을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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