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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ked Oct 09. 2022

14. 생각

- 나를 존재하게 하는 것

사람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생각을 한다. 우리가 잠을 자고 있을 때도 생각은 쉬질 않는다. 현재의식에선 생각을 하지 않지만 잠을 자고 있는 의식에선 무언가 생각을 하고 있다. 우리는 꿈을 꾼다거나 혹은 잠을 자고 일어나면 어젯밤 고민하던 일에 대한 해결 방법이 생긴다거나 하는 것으로 간접적으로 우리가 늘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생각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생각은 이미지와 언어를 포함한 정보에 대한 뇌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 대한 정보가 다섯 가지 감각을 통해서 들어오면 그 감각은 그 자체로 기억되고, 그렇게 기억되는 감각을 토대로 느껴지는 감정들이 생겨난다. 뇌에 들어온 감각정보와 감정정보들은 개념화를 통해서 언어로 정의하고, 그렇게 정의한 언어를 기억한다.      

자세히 말하면 시각을 통한 이미지, 청각을 통한 소리, 후각을 통한 냄새, 미각을 통한 맛, 촉각을 통한 촉감 등을 그 자체로 기억한다. 또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감정 –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미움, 사랑, 우울, 걱정 등등 - 들도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그 자체로 기억한다. 이러한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감각과 감정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느낌으로 이 느낌을 규정한 것이 언어이다. 이렇게 규정하는 과정을 개념화라고 할 수 있으며 개념화를 통해 공통의 약속인 언어가 만들어진다.      

발성기관에서 생기는 특정한 소리에 대해 집단 전체가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형태로 만들어지는 것이 언어이다. 이 과정이 반복되는 가운데 언어는 확장된다. 이렇게 확장되어가는 언어에 의해 추상적인 개념들이 생겨나고 다시 언어로 정의할 수 있게 되어, 추상적인 언어들에 의해 논리적인 생각이 가능하게 되었다.

논리적인 생각과 추상적인 관념의 정의로 인해,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게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에 대해 인식을 하게 되었고, 이런 인식은 사회를 발전시켰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의식은 확장되어 삶과 죽음에 대한 의문이 발생하고, 다시 종교와 철학으로 발전되어가게 되고, 과학적인 사고 방식은 인류문명의 발전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렇게 인간사회를 발전시켜온 사고체계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가지게 된다.     


첫째,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언어에 의해 다시 마음이 갇히는 현상이 발생한다.

사람의 마음을 100%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언어에 의해서 생각을 하지만 우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현상을 완전히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언어란 그 사회에 통용되는 개념들을 정리하여 표현한 것으로, 여러 세계의 언어마다 의미하는 단어의 정의엔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과거에 사용한 단어의 의미가 현재엔 다른 의미로 쓰이기도 하고, 국내어를 외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보면 그대로 직역을 할 수 없고 의역이 오히려 더 느낌을 잘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언어에 의해 추상적인 개념들이 정의되면서 언어에 마음이 갇히는 현상이 벌어진다. 더구나 개개인의 개별적인 마음의 차이를 구분해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그 결과 두 가지 문제점이 생기는데 하나는 생각의 틀이 언어에 묶여버린다는 것과 완전하지 않은 언어로 인해 사람들 사이의 소통에 오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생각의 틀에 묶여버린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도덕과 법과 같은 규범이다. 사회적으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도덕적이고 사법적인 규범이 존재한다. 이 규범은 절대선을 말하지 않는다. 그 시대와 지역에 따라 이런 규범은 큰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이런 규범 속에서 태어나면 그것이 규범이라는 것도 모른 채 절대선으로 인식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과거 중세의 규범이 현재에 맞지 않고, 종교를 중심으로 하는 중동지역의 규범이 서구사회에서는 맞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교육이라는 건 세뇌의 한 가지일 수 있다. 또한 언어는 개개인의 마음을 표현하는데 완전한 도구가 아니다. 개인의 감각, 감정, 생각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언어를 사용하여 표현하더라도 자신을 제외한 타인에게 100% 전달할 수 없다. 이런 작은 차이는 사람들 사이에 오해를 일으키고 이 오해로 인해 수많은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둘째, 사람은 생각을 멈출 수 없다는 데 있다. 

인류가 어느 시점에서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언어로 규정하고, 규정한 언어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생각이 멈추지 않는 이유는 욕망이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욕망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욕망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욕망을 상상하며, 실천을 위해 행동하면서 구체적인 과정에 대한 지각, 인식, 분별의 작용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상상에서 시작한 생각은 욕망이 얻어지거나 포기될 때까지 멈추지 않으며, 욕망이 달성 또는 포기된 순간을 제외하고는 다시 새로운 욕망이 일어나기 때문에 생각은 멈춰지지 않는다.     


어릴 때 사람은 교육을 통해서 언어를 배우고 사회를 배우고 사회 윤리에 맞춰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방식을 배운다. 이 과정에서 욕망을 실현해 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생각은 욕망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자신은 사라지고 욕망만 남는다. 더욱이 나이를 먹을수록 생각이라는 괴물에 잡아먹혀 생각을 멈출 수 없다. 그래서 요즘의 노인들에게 불면증이 많이 나타난다.


셋째,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분별심’이다.

분별심이란 옳고 그름을 가리는 행위이다. 이 옳고 그름을 가리는 행위가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옳고 그름 속에서 자신의 정당성을 만들고 그것은 자아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아를 강화하는 행위가 왜 문제가 되는가? 그것은 인간은 늙고 병들고 소멸해가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소멸로 가는 과정을 자아는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자신은 죽고 싶지 않고, 죽을 것 같지 않고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혹은 죽고 싶지 않기에 자신의 자아를 강화하면 죽음이 범접하지 못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무너져서 사라지는 존재인 숙명적인 인간을 욕망의 자아는 부정하고 싶어 한다. 이런 이유로 나이를 먹을수록 보수적으로 되어간다. 자신을 죽음에서 지키기 위해 욕망의 자아을 강화해나가는 과정에서 보수적으로 되는 것이다. 그래서 노인이 될수록 오히려 자아가 강해지고 고집이 세진다. 그렇게 자신이 옳다는 것을 놓지 못한 채 살아가다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욕망에 대한 상상은 욕망을 어떻게 성취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판단 때문에 옳고 그름이 생겨난다. 그렇게 욕망의 자아가 강화되고 그렇게 강화된 자아는 무너지지 않으려는 속성에 의해 자연의 섭리인 늙음과 죽음 앞에 무력화되는 과정에서 괴로움이 커져간다.

옳고 그름, 손해와 이익에 대한 끊임없는 생각의 수레바퀴는 멈추고 싶어도 멈춰지지 않는다. 어느새 탄력을 받은 생각은 본질적인 나와는 관계없는 괴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분별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분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는 욕망적인 자아'에 대한 집착이 자신이 괴롭힌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이 가지는 세 가지 특성에 의해 사람들은 괴로움에 빠진다. 제대로 소통하는 것도 힘들고, 생각을 멈출 수도 없어서 힘들고, 옳고 그름의 판단 속에 자신을 잃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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