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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ked Nov 13. 2022

15. 멈춤

내면을 향한 위대한 첫걸음

명상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어떤 명상도 처음엔 멈춤에 초점을 둔다. 멈춤이라는 것은 명상의 첫 번째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을 멈추는 것일까? 멈춘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이익이 있는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 편안한 마음을 찾으려는 의도에서 명상을 시작한다. 그래서 괴로움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스승들은,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괴로움의 원인인 욕망에서 잠시 벗어나기를 가르친다. 욕망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욕망을 멈춰야 한다.

      

예를 들면, 흙탕물이 담긴 투명한 유리용기가 있다. 그리고 이 유리용기가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인다고 생각해보자. 먼저 유리용기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유리용기를 한곳에 정착시켜야 한다. 이것이 1단계이다. 이렇게 유리용기를 멈추고 나서 조금 시간이 지나면 출렁거리던 흙탕물도 잔잔해진다. 이것이 2단계이다. 이렇게 잔잔해진 흙탕물은 또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면 무거운 흙은 아래로 가라앉고 위쪽엔 투명한 물이 남게 된다. 이것이 3단계이다.     


멈춤은 이와 같다.


1단계로 감각을 멈춰보는 것이다. 이것은 움직이는 유리용기를 어느 한 장소에 정착시키는 것과 같다. 즉 외부의 감각적인 자극이 없는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감각을 통해 세상을 인지한다. 이렇게 인지하는 작용은 나를 중심으로 의식이 바깥으로 향한다. 감각의 작용에 의해 인지의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감각을 멈추면 바깥을 향하던 의식이 내면을 향하게 된다. 이렇게 의식이 내면을 향한 후에야 오롯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제대로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2단계로 감정을 멈춰보는 것이다. 이것은 유리용기 속의 출렁거리는 흙탕물이 잔잔해지는 것과 같다. 감정은 감각에 의해 활성화되기도 하고 생각에 의해 활성화되기도 하며 또 다른 감정에 의해 활성화되기도 한다. 외부의 감각이 멈춰지면 감정과 생각만 남아있는데, 생각을 통해 감정을 인식할 수 있게 되고 감정을 인식한 순간 감정의 출렁거림을 잦아들게 된다. 


3단계로 생각을 멈추는 것이다. 이것은 유리용기 속에 있던 흙탕물의 흙성분이 아래로 가라앉으면서 위에는 맑은 물이 생성되는 것과 같다. 사실 생각을 멈추는 것은 초보 단계에서는 물론 어느 정도 명상을 하더라도 불가능하다. 생각은 멈추려 하면 할수록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생각을 멈춘다는 의미는 그동안 자신을 온전히 둘러싸고 있는 생각에서 빠져나와 보는 것이다. 생각 속에 빠진 자신을 다른 생각으로 전환해 보는 것이다.      


4단계는 욕망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은 흙탕물에서 분리된 흙과 물을 제대로 구분해서 보는 것과 같다. 이렇게 감각과 감정과 생각을 멈추면 자신도 모르게 빠져있던 욕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욕망에 사로잡혀 사용해온 감각과 감정과 생각이 멈춰지면서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욕망이 아닌 본연의 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제대로 된 명상을 할 준비가 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런 것들을 멈출 수 있는가?      


감각은 계율을 통해 다스린다.

현대사회에서 계율이란 법규나 도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삶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한 삶의 방식이란 감각에 물들지 않은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사실상 감각에 물들지 않은 삶이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감각에 물든 삶을 잠시 멈춰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계율이 필요한 이유는 자기 마음대로 평생을 살아온 감각적인 습관을 멈추는 것이다. 또한 계율을 통해 자신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 감각을 통해 일차원적인 쾌락을 추구하기 때문에 쾌락을 쓰면 쓸수록 감정의 진폭은 커지고 생각의 크기는 작아진다. 다시 말하면 감각적인 쾌락에 빠지면 빠질수록 감정은 격해지고 이성은 마비되어간다. 문제는 감각적인 쾌락을 사용하고 싶은 욕구는 끝이 없지만, 신체의 한계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감각적인 쾌락을 통해 감정적인 즐거움을 점점 더 추구하게 되면서 더 큰 감정의 진폭에 빠져들게 되고 자신의 생각은 그런 감정의 방향을 따라 일어나게 되면서 다양한 생각보다는 감각과 감정적인 생각인 욕망에만 몰두한 생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보약을 먹고 운동을 하더라도 매일 술을 마시고 육체적 쾌락을 탐닉한다면 젊은 시절에는 버텨질지 모르지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육체는 점점 상하게 되는 것과 같다. 마음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감각을 통한 감각적인 쾌락을 잠시 멈춰보는 것은 초급 명상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감정은 집중과 고요함을 통해 다스릴 수 있다.

감각을 어느 정도 멈춘 후에야 감정을 다스릴 수 있게 된다. 감정은 집중을 통한 고요함으로 다스린다. 어떤 것에 집중할 것인가? 여기에 집중명상이 필요하게 된다. 보통의 경우 보통 수식관(數息觀)이라고 불리는 입출식념(入出息念)명상을 많이 하게 된다. 이것은 들숨과 날숨에 집중해서 호흡에 맞춰 숫자를 세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집중이다. 호흡에 집중함으로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집중을 하게 되면 감정은 가라앉고 생각은 투명해진다. 그러면 고요함이 나 자신에 자리 잡게 된다. 이렇게 되면 고요함의 기준점이 생기고 그것을 바탕으로 일어나는 감정을 눈치채게 된다. 그 감정이 분노이든 슬픔이든 기쁨이든, 어떤 감정이 일어나더라고 따라가지 않고 고요함에 머물러야 한다. 이렇게 고요함에 머무는 것이 감정을 멈추는 방법이다. 

사람들에 따라 이런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은 게임을 할 때 집중을 잘하는데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 집중과 이 집중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게임과 같은 것들은 자신의 감각과 감정과 생각을 통한 쾌락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런 쾌락에 대한 집중은 먹이에 집중하는 짐승들이 하는 집중과 같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쾌락에 집중하는 것은 욕망에 집중하는 것이고 이렇게 욕망에 집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고, 개나 돼지와 같은 짐승들도 할 수 있다. 명상에서 말하는 집중이란 욕망을 여읜 집중을 의미한다. 욕망적인 집중이 아니라 비욕망적인 집중을 의미한다. 이렇게 비욕망적인 집중은 욕망에 빠져서 사는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게 만든다.      


생각은 통찰과 지혜를 통해 다스릴 수 있다.

통찰과 지혜는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통찰을 할 수 있고 제대로 된 지혜를 가질 수 있는 것인가? 앞에서 말한 집중명상을 통해 감정이 가라앉고 고요함이 머물면 투명해진 생각을 관찰할 수 있게 된다. 이제 관찰명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흔들리는 자동차 안에서 책을 읽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이와 마찬가지이다. 고요함에 머물러야 비로소 자신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일어나는 생각과 사라지는 생각들을, 고요함 속에서 담담히 관찰하다 보면 어느새 일어나는 생각도, 사라지는 생각도 투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비로소 자신을 관찰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각들을 관찰하다 보면 통찰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고 더불어 지혜가 생기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좀 어려운 얘기인데, 이렇게 관찰하는 자가 정말로 객관적인 관찰자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자신의 감각이나 감정에 물들지 않은 상태인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 전통에서는 선지식(善知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선지식이란 자기보다 공부가 높은 사람을 의미한다. 그래서 고전을 보면 공부하는 스님들이 늘 선지식을 찾아다닌다.      


결국 관찰을 통해 통찰하는 힘과 지혜를 배우게 되고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욕망을 다스릴 수 있게 된다. 욕망은 감각과 감정과 생각을 통해 다스려지는 것이다. 멈춤의 궁극적인 목표는 욕망을 멈추는 것이다. 그래서 욕망에 의해 휘둘리는 삶이 아닌 욕망을 사용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멈추는 것이다. 멈춤은 명상의 처음이고 끝이라고 할 수 있다. 멈춤은 명상의 시작이며 이 시작은 자신을 찾기 위한 위대한 첫걸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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