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은정 Aug 15. 2015

영어와 무기력증의 관계

캠프힐(4)-피할 수 없는 영어와의 전쟁 


3개월 동안은 자주 악몽을 꿨다. 한국에서는 한번도 만나본 적 없던 '가위 비슷한' 것이 찾아오기도 했다. 하루 동안 한 일과 쓰인 노동력에 비해 지나치게 피곤했다. 덕분에 "쏭(캠프힐에서 불렸던 이름)은 방에 있는 걸 너무 좋아해" 라는, 아니나 다를까 제법 근거 있는(!) 이야기가 퍼졌다. 


나와 같은 코워커들은 보통 밤 9시까지 일을 했다. 함께 지내는 빌리저들의 스케줄이나 그날 행사에 따라 유연하게 바뀌긴 했지만, 대체로 9시가 지나면 자유시간을 가졌다. 대부분의 코워커들은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거나 기껏해야 20대 중반이었고 폴란드, 독일, 가나, 필리핀 등 세계 각지에서 북아일랜드의 시골로 온 친구들이었다. 집을 떠나 자유의 몸이 된, 훨훨 날아오를 만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그들의 젊은 혈기는 밤 9시가 넘으면 폭죽처럼 사정없이 터졌다. 


불씨는 어디로 튈지 몰랐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뒤섞여 축구를 하고, 봉고차를 대절해 읍내의 클럽으로 향하기도 했다. 어떤 밤에는 한 코워커의 방에 낑겨 앉아 사이더(cider, 일종의 과일주)와 맥주를 마시며 뒷담화를 까고, 사몰리나 같은 듣도 못한 디저트를 야심한 밤에 만들어 먹었다. 


나 역시 종종 그 무리에 끼어 있었지만 맘껏 즐기지 못했다. 정말이지, 너무 피곤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하다 싶을 만큼 제정신이 아니었다. 저녁 7시 즈음이면 이미 내 몰골은 소금에 반나절 절인 배추나 다름없었다. 소파에 축 늘어진 채로 눈동자만 겨우 데굴데굴 굴렸다. 마음 같아선 그대로 데굴데굴 굴러 침대로 향하고 싶었다. 책상머리에서 매일 원고만 넘기던 사람이 평소 쓰지 않던 근육과 관절을 움직인 탓인 걸까. 이런 게 바로 육체노동이 안겨주는 신성한 피로라면 기꺼이 받을 참이었다. 어쩌면 날씨 때문일지도 몰랐다. 늘 비가 오거나 잔뜩 찌푸린 북아일랜드 날씨는 기본적으로 우울모드가 세팅된 나의 나약한 멘털에 치명적이었다.


이럴 땐 그저 푹 쉬는 게 답이라는 생각에 일주일 중 딱 하루 주어지는 금쪽같은 휴무일에도 방에 콕 박혀 지냈다. 다른 코워커들이 새벽부터 일어나 산으로, 바다로, 다른 큰 도시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오는 동안, 나는 서랍에 감춰두었던 햇반과 컵라면을 꺼내 먹었다. 나름의 보양식이었다. 겨우 두세 달 매운 음식을 먹지 않았더니 컵라면 국물 한 숟가락에 땀이 쭉 삐져나왔다. 식도를 타고 넘어간 빨갛고 진한 국물이 발끝까지 퍼져나가 온몸을 덥혀주길 기다렸다. 


마당에 늘어진 카라를 바라보며 나도 함께 넉다운
넉다운, 넉다운, 또 넉다운

몸은 좀처럼 회복할 기미가 없었다. 아니, 몸이 아니라 마음이 그랬다. 무기력한 기운은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따라다녔다. 가끔은 꿈까지 쫓아와 무겁게 짓눌렀다. 꼼짝달싹하지 못한 것은 몸만이 아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모든 무기력의 원인이 나의 약골 체력이 아니라, 다름아닌 '영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것도 아주 노골적으로. (망할) 놈의 영어 때문에 한동안 나는 아주 찌질해졌고, 자존감은 바닥을 찍었다. 겉잡을 수 없이 순식간에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피할 수 없는 영어와의 전쟁은,

투 비 컨티뉴. 





작가의 이전글 자급자족 라이프의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