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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은정 Jul 23. 2015

자급자족 라이프의 시작

캠프힐(3) - 자연의 리듬을 알아가기  


당시 나는 채소의 맛을 알아가던 중이었다. 


친구의 삼촌이 사준 소고기를 얻어 먹고서 제대로 체한 바람에 지하철 2호선 개찰구에서 구토를 한 직후였다. 그 뒤로 주저 없이 고기를 끊었다. 이왕 몸을 챙기는 김에 밀가루와 인스턴트 식품도 먹지 않기로 했다. 운동을 병행했더니 몸도 마음도, 그리고 피부도 맑아졌다. 무엇보다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조는 일이 사라졌다. 비록 채식은 1여 년 만에 끝이 났지만, 건강한 삶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런 나에게 캠프힐의 생활방식은 더할나위 없이 풍요로웠다. 캠프힐 사람들은 저녁마다 먹을 식빵을 매일 굽고, 샐러드에 들어갈 채소를 길렀으며, 소와 양들을 초원에 풀어놓고 키웠다. 토실한 달걀은 닭들의 보금자리에서 매번 염치 없이 훔쳐왔고, 젖소로부터는 신선한 우유를 얻었다. 만화 <플란다스의 개>에서나 보았던 철제 양동이에 담긴 우유는 집집마다 배달되었고(위생상의 이유로 나중에는 가공우유로 바뀌었지만), 누런 지방띠를 두른 우유의 일부는 요거트를 만드는 데 썼다. 창고에 겹겹이 쌓아둔 겨울이불 틈새로 끓인 우유가 담긴 냄비를 하루 동안 넣어두면 시큼한 요거트가 완성되어 있었다. 말로만 듣던 자급자족 유기농 라이프였다. 



먹을 것을 스스로 일구는 삶은 멋졌다. 


'멋지다'는 표현이 이 바지런한 일상을 일순간 새침하게 만들어버리는 것 같아 잠시 망설여졌지만 어쩔 수 없다. 진흙으로 더럽혀진 웰리부츠를 신고서 땀냄새를 사방에 풍기며 집으로 돌아오는 가드너(gardener)들을 볼 때마다 '멋지다'라는 말 외에는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았다. "내일 쯤이면 양들이 새끼를 낳을거야. 새벽에는 보초를 서야할 것 같아" 라고 말하며 어깨를 으쓱이는 파머(famer)들은 또 얼마나 듬직했는지. 


이들의 일상은 단단했다. 도시의 속도에 떠밀려 엉거주춤한 자세로 내달리던 나의 서울생활과는 확연히 달랐다. 적어도 캠프힐 사람들은 서두르는 법 없이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시기에 땅이 필요로 하는 것과 사과의 수확 시기를 놓치지 않았고, 닭들이 숨겨둔 달걀을 잘도 찾아내었다. 얼핏 별거 아닌 일처럼 보이지만 그 모든 별 것 아닌 일들의 저편에는 깊이 들여다본 사람들만이 찾아낼 수 있는 무엇이 있다고 믿는다. 나와 같은 뜨내기들이 단숨에 알아챌 수 없는 자연의 리듬을 이들은 발견해 왔다. 오랜 기다림과 애정의 힘으로.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감자를 캐기 위해 허리를 굽히는 일 또한 마다하지 않았다. 키가 작은 블랙커런츠의 열매를 따기 위해서는 무릎도 꿇었다. 몸과 마음이 함께 움직이는 그 정직한 움직임들이 나는 유난히 좋았다. 




한번은 가드너인 세쓰와 함께 비닐하우스 옆을 지나가던 길이었다. 갑자기 몸의 방향을 튼 그가 비닐하우스 안으로 향하더니 탐스럽게 맺힌 오이 하나를 뚝, 따다가 내 손에 쥐어주었다. 키가 큰 알리나와 걸을 때는 그녀가 똑, 따준 못생긴 사과가 내 손에 들려 있었다. 


갓 따올린 식물의 싱그러운 맛보다 더 신기했던 건 이들의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나에게 자연은 소중히 보호하거나 함부로 접근해서는 안 될 대상이었지, 길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처럼 윙크를 날릴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다. 아마도 그때부터이지 않았을까. 꺼릴 것 없이 물기 먹은 잔디 위에 드러눕고, 축사 안 돼지의 등 언저리를 가만히 만져 볼 수 있게 된건. 


겨울에서 봄으로 향하던 어느 날, 캠프힐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채소밭과 농장을 돌며 노래를 부르고 기도를 드린 적이 있다. 얕게 판 땅 속에 캔들을 놓아두고는 함께 자연의 축복을 빌었다. 캠프힐의 일상에 익숙해진다는 건 동시에 자연의 리듬을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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