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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은정 Jan 25. 2016

네 곁에 꽃을 두고 싶다

꽃이 주는 일상의 기쁨



1년 동안 캠프힐에서 지내는 동안 얻은 사소한 습관이 있다면 일상 주변에 '꽃'을 두는 것이다. 


플로리스트가 운영하는 작은 꽃가게를 발견하는 것이 요즘에는 흔한 일이 되어버렸지만, 불과 3~4년 전만해도 익숙한 풍경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꽃 선물을 한 애인에게 뭐 이런데 돈을 썼냐며 타박주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게다가 꽃꽂이가 취미라고 말하는 순간, 문화센터에 나가 풍족한 평일 오후를 누리는 새댁 취급을 받는 기분이다. 


나 역시도 꽃에 대한 뻔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보기에 예쁜 건 사실이지만 잠깐의 '이쁨'을 위해 거금을 들여 꽃을 사는 게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돈을 아끼기 위해 길거리에서 꽃의 허리를 무자비하게 꺽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사실 서울에서 그럴 만한 꽃을 찾기도 어렵다. 시 차원에서 거리 곳곳에  멋없이 심어둔 팬지 정도가 떠오를 뿐).  무엇보다 자취방에 꽃을 꽂아둘 적당한 화병이 있을리 만무하지 않은가! 방 주변을 둘러보니 삼다수 페트병 정도가 눈에 보이는 전부다.



바비큐 파티를 준비하던 중, 정신 없이 어질러진 식탁 위에도 꽃은 빠지지 않는다.


캠프힐에서 나와 한 집에서 산 덴마크 출신의 K는 집안 곳곳에 꽃을 두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내게 했던 첫 번째 부탁도 산책하러 나가는 김에 꽃을 좀 꺽어오라는 것이었다. 5월 즈음부터 마을 구석구석은 들꽃들로 넘쳐났다. 누가 특별히 가꾼 것도 아닐텐데 신기하게도 비어 있는 땅마다 빨갛고 파랗고 노란잎의 꽃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다. 이 무렵 꽃에 대한 사랑은 비단  K만의 것은 아니어서, 누구네 집 거실의 화병이 더 아름다운지 경쟁이 붙은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어느날부터인가 나 역시 지나가는 길에 눈에 띄는 꽃이 있으면 작은 다발을 만들어 방으로 들고 왔다. 한 두송이면 충분했다. 화병 대신 다 쓴 스킨병이나 투명한 유리컵을 가져와 꽂으니 크기가 딱 알맞았다. 


가지에 붙어 있는 잎을 정리하고, 끝을 다듬고, 잎 색깔에 맞춰 이리저리 조합하는 잠깐의 시간 동안 나는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꽃을 만지는 시간이 내게 뜻밖의 휴식을 주었기 때문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아름다운 것을 만지는 동안 나는 잠시 침묵했다. 자연히 시덥잖았던 고민들 또한 사그라들었다. 



이웃집에 사는 할머니 S는 자신만의 비밀의 정원을 가지고 있었다.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 화사한 꽃다발은 필수.
체스를 둘 때는 우아한 화병을.
해바라기철에는 집집마다 노랗고 말간 얼굴이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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