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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은정 Jan 16. 2017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는 법

아이슬란드(2) : 골든서클로 향하는 길


첫 목적지는 싱벨리어 국립공원이었다. 이번 여행의 길잡이가 되어 줄 <론리플래닛>은 레이캬비크에서 시계방향으로 링로드를 도는 코스를 추천했지만, 우리는 고민 끝에 시계 반대 방향을 선택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이라는 매우 단순명료한 이유였다. 변수가 많은 여행지인지라 가급적이면 위험요소를 제거할 필요가 있었고, 시계방향의 특별한 메리트를 찾지 못한 것 역시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시계 반대 방향 루트를 따를 경우 가장 첫 번째 목적지는 자연스럽게 '골든서클'로 이어진다. 레이캬비크에서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데다 싱벨리어 국립공원과 게이시르, 굴포스가 30분 이내 거리에 모두 모여 있어 반나절 코스로 제격이다. 골든서클을 둘러본 뒤 우리는 레이캬비크로 다시 돌아가지 않고 '셀포스selfoss'라는 도시에서 1박을 할 예정이었다. 대나무의 마디를 끊듯 하루에 2~3시간 정도만 링로드를 따라 이동한 뒤 짐을 푸는 전략이다. 서두르지도, 느슨하지도 않은 우리의 속도를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빗속을 달리는 동안 나는 야심차게 준비해온 음악을 재생시켰다. 앞으로 10일 동안은 이 좁은 차 안이 우리의 주된 활동 공간이 될 터였다. 운전자의 컨디션과 바깥 날씨, 그날의 목적지에 맞게 음악을 선곡하는 것은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일이었다. 너무 낯선 음악은 가뜩이나 긴장한 A의 운전을 방해할 것 같아 오늘은 귀에 익은 한국 가요 위주로 틀기로 했다. '오늘부터 우리는' 하고 외치는 발랄한 소녀들의 목소리가 우리의 여행을 응원해주는 듯하다.


"날씨가 어쩜 이렇게 제 멋대로일까, 역시 아이슬란드야." 


천연덕스럽게 얼굴을 바꾸는 하늘마저도 싫은 기색 없이 우리는 받아들였다. 마음을 곱게 쓴 덕분인지 왼쪽 창으로 무지개가 보인다. 입안에서만 맴돌던 작은 흥얼거림이 나도 모르게 밖으로 비져나왔다. 머쓱했던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조금 더 적극적으로 노래를 따라 불러본다. 손가락으로 문지른 것마냥 일곱 빛깔의 경계는 흐릿했지만 무지개의 등장만으로도 행운을 거머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 앞에 놓인 모든 것이 좋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시야를 가리는 빗줄기도, 낮게 내려앉은 구름도, 온몸에 깃든 얇은 긴장감마저도. 


하지만 천진했던 우리의 들뜬 마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가장 먼저 나는 음악 볼륨부터 낮춰야만 했다. 





자동차 운전이 익숙하지 않은 A를 대신해 나는 내비게이션을 확인하며 길 안내를 도울 예정이었다. 하지만 운전이 미숙한 A만큼이나 나의 지도 보는 솜씨는 형편 없었다. 좌/우회전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몇 번이나 급커브를 틀었는지 모른다. 뒤이어 달리는 차가 있었다면 이미 여러 차례 사고가 났을 법한 상황의 연속. 게다가 맵스미의 음성 안내와 가수의 애절한 목소리가 주거니받거니 섞이면서 나는 더욱 패닉 상태에 빠져버렸다. 당황스러운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도로 위의 표지판이 이상하리만큼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한국에서는 교통 표지판의 키가 큰 덕에 멀리서도 내용을 쉽게 파악했다. 반면, 눈 높이에 위치한 아이슬란드의 표지판은 말 그대로 코앞에 닥쳐야 내용을 인지할 수 있었다. '어어어' 하다가 급하게 핸들을 꺾기를 여러 번. 결국 나는 음악 플레이어를 아예 꺼버린 채, 휴대폰 화면과 앞유리창을 번갈아 주시하며 인간 내비게이션이 되기로 작정했다. 신기한 일이다. 서울의 교통 표지판이 제아무리 높은 위치에 걸려 있다 한들, 그 주변에는 더 높고 복잡한 장애물들이 산재해 있었다. 고층 빌딩과 수시로 바뀌는 신호등 불빛, 복잡한 사거리, 8차선 도로, 쏟아지는 인파 사이에서도 우리는 기어코 길을 잃지 않고 표지판을 따라 움직인다. 


반면, 그 흔한 신호등과 횡단보도조차 없는 말끔한 도로를 달리며 표지판을 보지 못해 헤매는 꼴이라니. 나무 한 그루 없는 산맥과 초원이 전부인 망망대해 같은 풍경 안에서 나는 자유롭게 활보하기는 커녕, 오히려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방향을 잃고 말았다. 매초마다 쏟아지는 정보를 처리하던 나의 유능한 시각 시스템이 광활한 자연 앞에서 오작동을 일으키고 만 것이다. 


어쩌면, 그동안 나는 '분에 넘치게' 보고 느끼는 상황에 익숙해져 있던 게 아닐까. 그러는 사이 나는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피로에 시달렸던가. 이 아이러니한 대비가 너무도 아이슬란드스럽다는 생각에 미치자 그제서야 내가 얼마만큼 한국에서 멀어졌는지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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