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들이 남기고 간 축복
여행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이었다. 별안간 치솟는 고열을 느끼며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승무원을 찾았다. 안온했던 기내 공기가 이내 술렁이고 고열 증상을 보이는 승객들이 여기저기서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속도로 한가운데 비상 착륙한 비행기 밖으로 나와 몇몇 승객이 들것에 실려 이송됐다. 어느 나라의 어느 도시인 줄도 모른 채.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역시나 코로나 바이러스였을까, 우리는 무탈히 집으로 돌아갔을까. 그날 종일 꿈에 대해 생각했다. 애써 잊으려 해도 끊임없이 보도되는 확진자 수와 재난경보문자가 꿈에서 본 장면들을 떠올리게 했다. 왜 하필 여행을 가서는. 결국은 꿈 속의 나를 자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침대에 누워 구글포토에 저장된 여행사진을 한참 들여다 본 것이, 스페인 남부의 오렌지나무 가로수와 플라멩고, 신선한 식재료로 만든 타파스를 그리워하다 잠이 든 것이 문제였다. 나는 꿈에서나마 기어코 여행을 떠났다.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요즘, 곱씹을 수 있는 추억이 있어 다행이라 여기곤 했다. 외장하드에 저장된 수 천 장의 여행사진과 동영상을 반복해 보며 지금의 처지를 위로했다. 아름답고, 맛있고, 외롭고, 무용한 기억들이 나를 살리는 듯했다. 한편으로는 추억의 유효기간을 헤어려보았다. 언제까지 저 먼 곳을 애타게 그리워만 할 순 없지 않은가. 어쩌면 지금의 위태로운 상황이 종식되더라도 국경을 넘나드는 일이 예전과는 같지 않을지도 몰랐다. 건강과 경제력 같은, 어떤 자격을 갖춘 이들에게만 문이 열리는 세계.
다행히 나는 하나의 방법을 알고 있다. 낯선 이국으로 떠나지 않고서도 “이 서글픈 시기를 그렇게 곱디곱게 채색할 수 있는” 방법을, 누구의 허락도 없이 자유롭게 세계를 드나드는 방법을. 그건 다름 아닌 걷기였다.
“이 서글픈 시기를 그렇게 곱디곱게 채색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내가 만난 아름다운 것들이 남기고 간 축복이 아닐까? 예사로운 아름다움도 살날보다 산 날이 많은 어느 시기와 만나면 깜짝 놀랄 빼어남으로 빛날 수 있다는 신기한 발견을 올해의 행운으로 꼽으며 1982년이여 안녕.”
<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남길까> 중에서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매일 한 시간씩 산책을 했다. 원고 작업을 끝낸 뒤, 집 근처 하천을 따라 걷는 것이 하루 중 가장 큰 기쁨이었다. 봄에는 온갖 과실나무의 꽃 모양을 비교하며 이름을 알아맞추는 재미로, 여름에는 밤마다 키가 쑥 자라던 들풀과 버드나무의 성장을 지켜보는 즐거움으로 시시콜콜한 고민들이 가득찬 머릿속을 정화시켰다. 가을을 지나 매서운 추위가 찾아온 겨울에도 걷기는 계속됐다. 씩씩하게 산책하는 개들과 나란히 걸으며 발견한 예사로운 아름다움들이 나의 평범한 일상을 알록달록 물들였다.
슬프게도 이제는 단순히 걷는 행위조차 조심스럽다. 마스크 위로 경계의 눈빛을 주고 받으며 간격을 벌리고, 혹여 재채기라도 터지면 대역죄인의 심정으로 고개를 푹 숙인다. 겨우 집앞이라도 걸어보려는 마음이 이기적인 욕심은 아닌가 싶어 지레 움츠려들고 만다. 무엇보다 두려운 사실은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절망에 빠지지 않는 건 “내가 만난 아름다운 것들이 남기고 간 축복” 덕분이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차례로 도착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나를 안심시키기 때문이다. 언제나처럼 꽃을 피우고 풀을 자라게 할 자연의 기세가 나를 안도케 한다. 또한 이것은 지금의 서글픈 시기를 희망과 낙관으로 채색할 수 있는,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코로나 시대 이전에는 결코 알지 못했을 신기한 발견을 올해의 행운으로 꼽으며,
2020년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