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교토 여행 | 철학의 길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인파에 지쳐 철학의 길을 빠져나왔다. 목적지였던 난젠지南禅寺를 뒤로한 채 소로의 끄트머리에 다다르자 별안간 거대한 초록이 눈앞에 가득 차올랐다. 히가시야마東山의 완만한 봉우리였다. 초록과 초록이 만나 이루는 고운 능선 아래로는 작은 수로가 흘렀고, 사람들은 자전거를 탄 채 다리 위를 유유히 건너다녔다. 하필이면 하늘은 이토록 파랗게 빛나는 것인지. 언젠가 교토에서 한 달쯤 지내게 된다면 나는 주저없이 이 마을에 머무를 것이라 다짐했다.
히가시야마는 특정 산이 아닌 36개의 봉우리 일대를 일컫는 지명이다. 그 언저리에 긴카쿠지(은각사)와 기요미즈데라(청수사), 고다이지가 뿔뿔이 흩어져 있다. 혹여 여행 중에 휴대전화가 고장나 더 이상 구글맵을 볼 수 없게 됐을 때, 그리하여 감각만으로 방향을 가늠해야 할 때 저 멀리 산이 보인다면 그곳이 동쪽일 확률이 높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지형지물을 이용해 방향을 짚는 사막의 베두인족처럼 동쪽의 산을 바라보며 무작정 걸은 적이 있다. 온종일 먹통인 휴대전화를 원망한 것도 잠시,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한 스스로를 얼마나 기특해 했는지.
수로가 흐르는 이 마을이 좋아진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소박한 오니기리 가게와 카페, ‘호호호자’라는 호탕한 이름의 서점 때문이다. 첫 방문만에 나는 이미 저들의 열렬한 단골이 될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하물며 코스까지 완벽하게 짜 두었다. 수더분한 차림으로 집 밖을 나와 오니기리(일본식 삼각 주먹밥)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 카페의 창가 자리에 앉아 조금 전 구입한 책을 슬렁슬렁 읽는 어느 평일 오후. 상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이듬해 찾아간 오니기리 가게는 예전의 소탈한 모습 그대로였다. 메뉴를 주문한 뒤 마땅히 눈 둘 곳이 없어 휴대전화만 만지작대던 나를 뜻밖에도 젊은 주인이 먼저 알아봐주었다. 온전한 기억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추억하는 쪽은 대개 여행자일 뿐 반대의 경우는 흔치 않으므로. 그런 까닭에 나는 주인과 나눈 1년 전의 대화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왜 자신의 가게엔 서울 사람들만 오느냐고 묻던 그의 엉뚱한 궁금증 같은 것을.
빛이 노랗게 휜 오후 무렵 다시 철학의 길로 걸음을 옮겼다. 인파가 빠져나간 산책로는 생경하리만큼 한적했다. 난젠지의 수로각을 향해 느릿느릿 걷는 도중엔 예닐곱 마리의 고양이들과 만났다. 나무 밑둥과 바위 아래, 풀숲 사이.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고양이가 있다. 알고 보니 인근 주민들이 함께 먹이고 키우는 녀석들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문장에 아이 대신 고양이를 넣어도 무리가 없어 보였다. 주변을 기웃대던 나는 햇볕 방석 위에 앉은 고양이의 옆에 가만히 무릎을 모아 앉았다. 유난히 편안해 보이는 고양이의 시선 끝에는 비누 방울을 후후 불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와 엄마가 서 있다.
<교토 산책자를 위한 공간>
CAFE | 스위스 커피, 플랜츠
공간은 그곳에 머무는 사람을 닮는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테이블과 선반마다 작은 식물을 두는 사람, 매일 자신과 자신 주변의 사람들을 위해 스콘을 굽는 사람, 직접 볶은 원두로 따뜻한 커피 한잔을 대접하는 사람. 그런 두 사람이 함께 운영하는 '스위스 커피, 플랜츠'는 여느 공간보다 편안하고 아늑하다. 스위스의 풍광과 꼭 닮은 기요사토 고원 리조트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운영자가 그때의 추억을 카페 이름에 담았다고. 문을 열고 밖을 나서면 히가시야마의 둥그런 능선이 카페 주변을 포근히 감싸고 있다.
CAFE | 신코칸
카페 신코칸은 일본 왕실 가족의 별장에서 료칸으로 탈바꿈한 요시다산소 내에 자리해 있다. 카페 내부는 오래되었지만 낡고 해묵은 느낌이 없다. 원목 테이블과 의자는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고 마룻바닥은 뒤틀림 없이 반듯하다. 성실하게 관리된 공간이라는 인상. 음료를 주문하면 일본의 사계절과 사랑을 표현한 시 와카和歌가 적힌 종이를 함께 내어 주는데, 차와 함께 시를 음미하길 권하는 여유가 인상적이다. 이곳을 추천하는 두 번째 이유는 다소 생뚱맞다. 철학의 길에서 신코칸으로 향하는 동안 만날 수 있는 심심한 마을 풍경이다. 요시다산 아래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과 사람들의 서두르지 않는 발걸음, 곱게 가꾼 집앞의 화단. 어쩌면 우리는 일상이라는 평범한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낯선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