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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은정 Dec 29. 2017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교토 가라스마오이케역


갓 구운 빵에는 특별한 힘이라도 있는 것일까. 영화 <해피 해피 브레드>의 주인공 부부가 도시를 떠나 시골 마을에 터를 잡고 시작한 일은 직접 만든 빵과 커피를 판매하는 것이었다. 부부의 카페에서 만난 사람들은 서로의 처지를 섣불리 동정하거나 위로하는 대신 갓 구운 빵을 살뜰히 나누어 먹는다. 


교토에서는 어느 동네를 가든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빵집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혹시나 싶어 자료를 찾아보니 2016년 일본의 도도부현 가운데 빵을 가장 많이 소비한 도시로 교토가 뽑혔다는 사실을 일본의 통계 사이트에서 발견했다. 전국 평균의 1.4배, 하위권인 후쿠시마현이나 아키타현의 2배 이상이다. 신선한 빵을 구입하기 위해 오픈 시간에 맞춰 줄을 서는 주민들의 열성적인 모습에서 나는 그 통계 결과를 다시 한번 신뢰하게 됐다. 


하루는 기타오지역 부근을 지나던 중 인도를 가로막은 긴 행렬과 맞닥뜨렸다. 알고 보니 일본의 10대 명품 식빵으로 꼽힌 노가미乃が美 매장이 열리길 기다리는 인파였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여성, 나이 지긋한 할머니, 양복을 차려입은 중년 남성 등 빵을 즐기는 세대의 폭도 다양하다. 





오피스 빌딩이 밀집한 가라스마오이케역 부근의 뒷골목에도 소규모 빵집이 두루 모여 있다. 가볍게 식사를 해결하려는 직장인이 많기 때문이다. 베이글이 특히 유명한 ‘플립 업’, 계란을 넣지 않은 도넛을 굽는 ‘니코토 앤 맘’, 런치 메뉴로 제공되는 빵 세트가 인기인 ‘아네année’, 교토에서 손꼽히는 베이커리 ‘르 프티 메크’의 분점까지. 천편일률 프랜차이즈 제품이 아닌 제빵사의 정성과 기술이 깃든 빵을 취향껏 맛볼 수 있다. 


그리고 한 곳 더. 하와이안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나카무라 제너럴 스토어’를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은 주인의 이력부터 독특하다. 하와이로 홀연히 이주한 뒤 호놀룰루의 유명 식당에서 블루베리 크림치즈 스콘을 만들었다던 나카무라 씨는 다시 돌아온 고국에서도 여전히 스콘을 구우며 손님을 기다린다. 


품절 직전에 간신히 구입한 블루베리크림치즈 스콘을 맛본 건 늦은 밤 도미토리의 침대 속에서였다. 온종일 가방 안에서 굴러다닌 탓에 모양이 잔뜩 뭉개졌지만 버터의 풍미와 달큰한 과일맛은 그대로 살아 있었다. 야금야금 스콘을 베어 물며 나는 문득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아이를 잃은 슬픔에 잠긴 부모에게 갓 구운 따뜻한 롤빵을 내밀던 제빵사의 한 마디. 


“별 것 아니지만 도움이 될 거요.” 


어쩌면 나의 상상 이상으로 빵은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을런지도. <해피 해피 브레드>의 리에와 미즈시마 부부 그리고 나카무라 씨의 삶을 바꾸어 놓은 것처럼.






<교토 산책자를 위한 공간>



BAKERY | 나카무라 제너럴 스토어

‘제너럴 스토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곳의 진짜 정체는 스콘과 머핀, 파운드케이크 등을 판매하는 소규모 베이커리다. 다소 생뚱맞은 상호명은 없는 것 빼곤 다 팔던 시골 작은 상점의 분위기를 재현하고 싶은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하와이에서 익힌 베이킹 솜씨로 만든 블루베리 크림치즈 스콘은 꼭 먹어 봐야 할 추천 메뉴. 둥글 넙적한 형태가 퍽 못생겼지만 녹진한 맛과 촉촉함만큼은 나무랄 데 없다. 품절되는 대로 영업을 종료하기 때문에 스콘을 맛보고 싶다면 조금 서두르는 편이 좋다. 





SHOP | 와카바야

2016년 6월 문을 연 와카바야에는 오래된 과거가 있다. 쇼와 시대부터 잡화를 판매해온 부모님이 가게 문을 닫으면서 지금의 주인 부부가 공간을 이어받은 것이다. 이전까지 도쿄에서 생활한 두 사람이 교토로 이주하며 선택한새로운 삶은 간사이 출신 작가의 그릇을 소개하는 일. 와카바야에는 도예 작가인 삼촌의 작품도 함께 놓여 있다. ‘좋아하는 그릇이 있는 생활’이라는 모토에 마음이 동한 나는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둥그런 백자 코자라小皿(작은 접시)를 장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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