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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은정 Jan 05. 2018

그리고 다시 여름

고조역



이미 다녀온 도시 혹은 장소를 다시 찾아가는 여행을 좋아한다. 생경한 풍경이 선사하는 설렘만큼이나 익숙한 곳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기 때문이다. 지루할 여지가 없다. 당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른 것처럼 지금 서 있는 자리의 계절과 바람, 공기가 그때와 사뭇 다르므로 이 여행은 결국 새롭게시작된다. 


디앤디파트먼트(이하 디앤디) 역시 교토에 올 때마다 방문하는 곳이다. 그중 한 번은 가을의 끝 무렵이었고, 다른 두 번은 오늘처럼 여름이 막 시작되려던 참이었다. 디앤디 매장과 마주 서 있는 거대한 은행나무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나는 매번 계절의 변화를 실감했다. 짙은 노랑으로 물든 잎이 파랗게 바뀌는 사이 바람은 쾌청해졌고 나 또한 어딘가 조금은 달라졌을 테다.





교토다운 오미야게お土産(여행이나 출장지에서 산 기념품)를 구입하고 싶은 이에게 디앤디는 더할 나위 없이 적격이다. 교토를 비롯해 일본 전역에서 생산된 제품을 만나볼 수 있어 개별 매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는 수고를 덜어 준다. 차 브랜드 ‘마루큐 코야마엔’의 직영점까지 다녀올 여유가 없었던 나 역시 마음에 품고 있던 호지차를 디앤디에서 발견했다. 편집숍 투데이이즈스페셜과 교토시청 부근의 앙제Angers에서도 교토산 제품과 식재료, 생활잡화를 얼마든지 구입할수 있지만 굳이 디앤디로 걸음하게 되는 건 공간이 품은 애틋한 정서 때문이다. 


디앤디가 있는 붓코지佛光寺 경내는 사찰인 동시에 인근 주민들을 위한 쉼터 역할을 한다. 종교적 경건함 대신 작은 공원이 주는 아늑한 분위기가 경내를 감싸고 있다. 동네 아이들이 키 낮은 나무 위를 오르거나 외발자전거 솜씨를 뽐내며 에너지를 발산하는 동안 어른들은 처마 그늘에 앉아 도시락을 먹거나 잠시 눈을 붙인다. 어느 날은 나 역시 단조로운 풍경의 일부가 되어 얕은 잠에 빠져 들기도 했다. 툇마루에 앉아 그만 꾸벅꾸벅. 평일 오후의 안온함에 대책 없이 무장해제 되고 말았다.





올해 첫 여름 빙수는 어느 곳에서 시작하면 좋을까. 행복한 고민끝에 디앤디에서 불과 5분 거리인 키토네를 가 보기로 했다. 마감 직전 방문한 바람에 차 한잔 마시지 못한 지난 아쉬움을 달래고 싶기도 했거니와, 키토네 빙수의 유명세는 오래 전부터 익히 들어온 터였다. 하지만 웬걸,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했음에도 이미 문 앞에는 빙수를 기다리는 행렬이 시작된 참이었다. 그늘막에 앉아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며 차례를 기다리는 나를 향해 직원이 작게 손짓했다. 혼자인 여행은 이렇듯 때로 뜻하지 않은 행운을 안겨다 준다. 


아담한 공간의 둘레를 따라 어깨를 맞대고 앉은 사람들 앞에는 얼음이 소복이 쌓인 빙수가 새초롬히 놓여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여름을 환영하는 단체 세리머니 같아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유난스러운 고명 대신 망고와 키위, 딸기 퓨레를 부은 빙수는 군더더기없이 청량했다. 시간이 지나 접시에 고인 얼음물까지 후루룩 들이켜고 나니 목덜미 부근이 금세 서늘해진다. 


아, 반가운 여름의 맛이다. 





<교토 산책자를 위한 공간>



CAFE | 키토네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공간의 존재는 여행자에게 보다 각별하다. 그곳은 지난 여행의 추억이 회귀하는 장소이자 새로운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2005년 문을연 키토네 또한 그렇다. 교토에 올 때마다 나는 키토네의 환한 조명을 확인하며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곤 했다. 낡은 창고를 개조한 이곳은 그릇과 직물, 다양한 소재로 만들어진 일상의 도구를 모아 판매하는 상점이다. 매장 안쪽엔 아담한 카페 공간이 있어 계절에 어울리는 차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다. 여름에만 맛볼 수 있는 키토네의 가키고리는 줄을 서며 먹을 만큼 인기가 높다. 지극히 사견이지만 키토네를 갈 때는 여럿보다 혼자일 때가 더욱 좋더라. 





SHOP | 워크숍앤숍 바이 박스앤니들

1919년 창업한 마루시게시키マルシゲ紙器 공방에서 운영하는 종이상자 전문점. 하나 하나 손으로 접어 작업한 하리바코貼箱(종이상자)에 이탈리아, 핀란드, 인도 등 17개국에서 수입한 종이를 덧발라 제품을 완성한다. 명함 케이스, 선물상자, 서류함, 레터박스 등 용도와 크기별로 다양한 상품군이 갖춰져 있다. 도안과 질감, 프린트 방식이 천차만별인 종이는 낱장으로도 구입이 가능하다. 그중 핀란드의 유명 패브릭 디자이너 요하나 글릭센, 도예가 가고시모 마코토, 그림책 작가 아오이 후버 코노 등 세계 각지의 아티스트와 컬래버레이션한 오리지널 페이퍼는 놓치기 아까운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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