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헤이안진구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쓴 『나는 걷는다, 끝』은 저자와 그의 연인 베네딕트가 프랑스 리옹에서 터키 이스탄불까지 3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을 걸은 도보 여행을 담고 있다.
텍스트로만 빼곡히 채워진 3백여 쪽의 여정은 따분하리만큼 단조롭다. 매일의 일과를 덤덤히, 때로는 격앙된 톤으로 나열한 게 전부다. 오늘은 어느 도시에서 길을 시작해, 어떤 도로를 통과했고, 무엇을 먹었으며, 언제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내용이 무한히 반복된다. 가끔은 길에서 만난 주민의 호의로 차를 얻어 마시거나 근사한 저녁을 대접받는가 하면, 어떤 날에는 비에 홀딱 젖은 채 숙소를 찾아 헤맨다. 다리 부상으로 일주일쯤 꼼짝하지 못하는 나날도 부지기수다.
대단한 모험과 깨달음으로 여행이 완성될 것 같지만 실상 여행의 맨얼굴은 이토록 헐겁고 단순하다는 사실을 두 사람의 여정은 말해 준다. 보고, 먹고, 느끼는 것이 전부인 하루. 잠깐의 인연과 헤어짐의 연속인 하루. 그런 매일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일 것인지는 오롯이 각자의 몫이다.
난젠지의 수로각에서 출발해 비와호 수로를 따라 오카자키岡崎(헤이안진구와 오카자키 공원 일대)로 향하는 길은 퍽 무료했다. 오카자키 공원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별다른 볼거리 없이 대로변을 따라 묵묵히 걸을 뿐이다. 벚꽃 시즌에는 짓코쿠부네十石舟라는 작은 유람선을 타고 비와호 수로에서 뱃놀이를 즐긴다던데, 개화 시기보다 일주일 앞서 온 나는 앙상한 벚나무만 실컷 구경했다.
교토를 여행하는 동안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특별한 사건 없이 그저 어딘가를 걷고, 걷고, 또 걷는다. 가끔은 스스로 깜짝 이벤트를 꾸며 낸 적도 있었다. 800년 남짓된 수령의 녹나무를 보기 위해 평소답지 않게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선 날이 그렇다. 쇼렌인青蓮院 입구를 지키고 있던 두 그루의 녹나무는 한눈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지라 그 앞에선 결코 고개를 숙일 수 없었다.
둘째 주 토요일을 맞아 오카자키 공원에서는 헤이안 라쿠이치平安楽市 마켓이 한창이었다. 중고품 위주인 도지, 기타노텐만구의 플리마켓과 달리 헤이안 라쿠이치는 핸드메이드 소품과 공예품이 주를 이룬다. 공원 주변으로는 반려견과 아이를 대동한 커플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나란히 줄넘기를 하는 아버지와 아들, 목마를 탄 소녀, 빈 유모차를 세워두고서 커피를 즐기는 엄마들. 평화로운 주말 오후의 모범 답안 같은 풍경이다.
하루가 무던히 흘러간 그날 밤. 내게도 뜻밖의 호의가 찾아들었다. 니오몬도리仁王門通의 후미진 골목에 있는 미즈이로쿠라부みず色クラブ에서 늦은 식사를 하고 있던 내게 옆자리의 여성이 맥주 한잔을 사고 싶다며 말을 걸어 온 것이다. 손님은 우리 둘 뿐이었고, 두 사람 각자 1인분의 식사를 즐기는 와중이었다. 용기 어린 그녀의 호의를 거절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좋다는 의미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술 한모금에 얼굴이 새빨개지는 나의 속사정은 비밀로 한 채.
<교토 산책자를 위한 공간>
치에리야
친구의 집에 놀러간 듯한 꾸밈없는 분위기의 가정식 식당이다. 교토산 무농약 채소를 사용한 오반자이 플레이트와 베트남식 샌드위치 반미가 이곳의 대표 메뉴. 교토를 배경으로한 영화 <마더워터> 속 채소가게로 등장하기도 한 이곳에는 주인 치에리 씨와 그녀의 귀여운 아기가 늘 상주해 있다. 그래서일까. 키 낮은 밥상 두 개가 나란히 놓인 다다미방은 다소 어수선하지만 그 모습조차 못내 사랑스럽다. 퇴근길에 들러 주인이 내주는 따뜻한 저녁식사를 받아드는 풍경이 자연스레 그려지는 곳. 모든 메뉴는 테이크아웃도 가능하다.
니오몬우네노
110여년 전통의 다시국물 전문점 '우네노'에서 오픈한 우동 전문점. 가고시마에서 잡은 가다랑어와 홋카이도산 미역, 오이타현의 표고버섯 등 산지에서 조달한 재료로 우려낸 국물을 사용한다. 탄력 있는 면발보다는 국물에 심혈을 기울이는 간사이식 우동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 교토의 명물 채소인 구조네기(파)九条ネギ와 유바가 들어간 싯포쿠 우동, 구조네기와 유부가 들어간 키츠네 우동은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도지 부근의 우네노 본점 매장에서 다시국물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