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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은정 Jun 28. 2015

붉은 커튼의 영화관 

CINEMA SAINT-ANDRE DES ARTS


하루 종일 걸었던지라 잔뜩 지쳐있던 저녁이었다. 숙소로 돌아갈지를 고민하며 지하철을 향해 걸어가던 중 익숙한 흑백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영화 <아티스트>의 두 주인공이 팔을 벌리고서 환히 웃고 있었다. 다른 영화 포스터도 나란히 붙어 있는 것을 보니 극장인 듯했다. 


하지만 멀티플렉스는 아니었다. 상영 중인 영화는 고작 두 편이었고, 티켓 발권기는 커녕 팝콘을 파는 매점조차 보이지 않았다. 대기공간이랄 것도 없는 바깥 공간에서 노년의 부부는 팸플릿을 읽으며 영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연히 발견한 이 오래된 극장이 궁금해졌다. 마침 비도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아티스트>는 무성영화이니 불어를 몰라도 괜찮을 것이다. 


티켓창구는 마치 예전의 지하철 매표소 같았다. 오므린 손 하나가 겨우 들어가는 작은 구멍에다 '신림' 대신 '아티스트'를 말하며 6유로를 밀어넣자 정사각형 티켓이 무심하게 돌아왔다. (그 다음해에는 '아무르(AMOUR)'라 말했고 8유로를 지불했다.) 상영관 출입구는 묵직한 나무문이었고 둥근 철제 손잡이는 사람 손을 잔뜩 탄 탓에 표면이 번들번들했다. 방음이나 제대로 될는지 괜한 걱정을 하며 안으로 들어서자 방금 전의 오지랖이 무척 부끄러워졌다. 와, 영화관이 이렇게 멋져도 되는 거야?


스크린 앞으로 붉은 커튼이 느름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커튼은 정말로 '늠름'했다. 나폴레옹의 목덜미를 감싸며 펄럭이던 붉은 망토 같았달까. 관객수는 열댓 명도 채 되어 보이지 않았고 서로 멀찍이 자리를 두고서 앉았다. 조명이 하나 둘씩 꺼지자 웅성거리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잦아 들었다. 나의 시대에서는 우렁찬 비상구안내 영상이 영화의 시작을 알렸다면, 이곳에서는 그 역할을 붉은 커튼이 대신했다. 천천히, 그리고 우아하게 커튼이 양 옆으로 젖혀지자 뽀얀 속살의 스크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CINEMA SAINT-ANDRE DES ARTS

CINEMA SAINT-ANDRE DES ARTS


Homepage  http://cinesaintandre.fr

Address  30 rue Saint-Andre des Arts / 12 rue Git-le-Coeur(입구가 두 곳)메트로 Saint-michel(생미셀)역과 Odeon(오데옹)역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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