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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푼 Apr 15. 2020

선배와의 만남 '수원에 가길 잘했다.'

필승! 신입사원입니다

특기학교에서의 모든 과정들이 끝났다. 

오늘 저녁에 있을 '선배와의 만남' 시간이 지나면 

내일 오전 수료식과 함께 

자대에서 본격적인 홀로서기를 시작하게 된다. 

4주 동안의 과정 동안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고, 

'왜 정보 특기에 왔을까'하며 후회하는 날도 비일비재했지만 

막상 떠난다니 아쉽고 또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모두가 똑같이 혼나는데 

자대에서는 외로운 싸움이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다른 동기들은 의지할 동기라도 있지만 

나는 수원에 혼자 가기 때문에 달리 의지할 동기도 없었다. 

절친한 형이 사무실 선배로 있다는 사실과 

예비군 훈련을 담당하게 된 동기와 함께 수원에 간다는 것, 

그 두 가지 사실만을 위안으로 삼기로 했다.


어차피 이따 저녁이 되면 

수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선배 중 누군가 올 테지만, 

괜히 궁금해 군내 사람 찾기 시스템을 이용하여 사전 탐색을 했다. 

우리 교육생들은 모두 가까운 미래에 만나게 될 선임들의 얼굴을 확인하며 

오로지 사진으로 받게 된 '첫인상'만을 척도로 서로의 군 생활에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어떡하냐. 빡세 보이는데.', '오, 천사 같아 보이는데. 마음 놓이겠다.’ 

너무나도 뻔한 이야기지만 사람의 외모만으로는 

그 사람의 본성을 판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자대 배치 후 1주일 정도면 그 모든 걸 파악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니깐. 

내가 속하게 될 부서는 부서장부터 5명의 선임들까지 

대체로 선한 인상을 띠고 있어 어느 정도는 마음이 놓였다. 

그중 한 명은 너무나도 친숙한 얼굴이었고.


저녁 시간이 되고 맛있는 음식들과 함께 선배들이 하나둘씩 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선배는 충남 쪽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왔다고 했는데, 군복을 입고 왔다. 

퇴근하자마자 와서 옷도 못 갈아입고 왔다며 부연설명을 하고는, 

누가 자기 후임으로 오는지를 물어봤다. 

그리고 그 친구 옆에 앉아 내리 30분 동안 업무 소개를 해주었다. 

한눈에 봐도 조금은 독특한 선배로 보였고, 

그때만 하더라도 그 선배와 내가 한 달 뒤 다시 만나게 될지는 꿈에도 몰랐었다. 

이후 여러 선배가 줄지어 들어왔고, 그중 내 맞선임 선배도 있었다. 

사실 오전에 '사람 찾기'로 찾아봤을 때만 하더라도 

남달리 짙은 눈썹 때문인지 무뚝뚝하거나 무서울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 외로 부드럽고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수원에 대해서 많은 것들이 궁금했지만 

그중에서도 부서 분위기가 가장 궁금했기에 물어봤다. 


'선배님. 혹시 수원 분위기에 대해서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오면 알게 될 텐데 뭐^^ 

부서장부터 해서 모든 부서원들이 다 좋아. 

아마 우리 부서가 제일 분위기가 좋을걸? 

그리고 한 명 빼고는 다 비음주자라서 회식도 자주 안 하고.' 


됐다. 비음주자로서 회식을 자주 안 한다는 사실만큼 

듣기 좋은 얘기는 없었다. 

'혹시 또 궁금한 거 없어?'


나는 저 구석진 곳에서 열심히 업무 설명을 듣고 있는 

불쌍한 동기생을 슬쩍 보고는 이야기했다. 


'제가 가면 하게 될 업무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전혀 궁금하진 않았지만 뭔가 열정 넘치는 신입처럼 보이고 싶었다. 


'내가 지금 업무에 대해서 알려준다 해도 귀에도 안 들어오고

기억도 못 할걸?^^ 오면 차근차근 소개해줄게. 시간 많다~'


정말 짧은 시간이었지만 맞선임으로부터 받은 첫인상은 

'정말 합리적인 사람이구나.'였다. 


이래도 되나? 싶은 모든 것을 '그래도 돼.'라고 이야기해주는, 

마치 지금까지 갖고 있던 군대와 군인에 대한 통념을 시원하게 깨준 사람이었다. 

아니 어쩌면 군대라는 집단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기도. 

어찌 됐든 좋은 사람을 선배로 맞이하게 되었다는 건 분명했기에 

'수원에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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