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승! 신입사원입니다
배속지를 정하게 되고 가장 먼저 수원 정보처에 있던 형에게 연락을 걸었다. 그 형과의 인연은 한 장의 글로 풀 수 없을 정도로 깊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내가 여섯 살일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자랐으며, 초등학교 중국 유학 시절 같이 동고동락했던 가족 같은 형이다. 아니 2년간 진짜로 같이 살았기 때문에 식구라고 할 수 있다.
'형, 나 수원 가게 됐어.'
‘아, 결국 그 꿀보직 가기로 한 거야?'
‘아니. 형 밑으로 가게 됐어.'
형은 수화기 너머로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소리를 냈다. 우리의 끈질긴 인연이 재밌어서 웃은 거였는지, 편한 자리를 마다하고 힘든 자리를 찾아온 내 모습이 우스웠던 건지.
‘내가 부서 사람들한테 너 얘기 미리 해놓을게. 우리 부서 사람들 다 좋아. 기대해도 돼.'
이래서 인맥, 인맥 하나 보다. 나는 그 형과 함께 군 생활을 한다는 사실 하나는 불행 중 다행으로 여겨졌다. 그 형은 나보다 두 기수 위의 선배로서 나와는 딱 1년 차이가 났다. 이제 막 중위 계급장을 달았던 형이었다. 그래도 내 3년의 군 생활 중 최소 2년은 그 형과 함께, 그것도 같은 부서에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되었다.
이제 정보학교에서 남은 일은 딱 두 가지였다. 첫째는, 맞선임에게 미리 숙소 신청과 각종 행정 처리에 대한 걸 물어보는 것이었고, 둘째는 짐 정리였다. 짐 정리는 사실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맞선임에게 연락을 거는 일이었다. 원래 맞선임이 제일 어렵다고 하지 않나. 게다가 군대 맞선임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어렵게 여겨졌다.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거라곤 나보다 한 기수 위의 선배라는 사실과, 그의 전화번호 11자리뿐이었다. 나는 문자 내용을 썼다가 지우고,
또 썼다가 지우고, 같은 행위를 계속 반복했다. 이렇게 보내면 조금 예의가 없어 보이려나? 첫인상이 가장 중요하다는데. 고민 끝에 결국 문자가 아닌 전화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맞선임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혹여나 그가 업무 중이데 내 전화로 인해 방해를 받지 않았을까 싶어서 털컥 겁이 났다. 그리고 재빠르게 문자를 보냈다.
‘필승, 선배님. 이번에 수원에 가게 된 000 소위입니다. 다짜고짜 전화부터 드려서 죄송합니다. 혹시 제가 준비해야 할 것이 있나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시간 되실 때 연락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필승!' 그리고 한 동안 답이 오지 않았다.
다른 동기들은 이미 맞선임과 통화를 끝낸 상태였다. 대부분 좋은 선임을 만난 듯했다. 그때, ‘미안, 전화했었구나. 출장 중이었어. 너 얘기는 000 중위님한테 얼추 들었어. 준비해올 건 없고 몸만 오면 돼.'라는 답신이 왔다. 문자 내용만 봤을 때는 도무지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조금 사무적인 어투의 사나이였다. 그리고 한 통의 문자가 더 왔다.
'아마 수료식 전날 선배와의 만남 때 갈 거 같은데, 그때 보자.'
비록 짧은 내용의 문자였지만, 내 인생 최고의 맞선임과의 첫 대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