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승! 신입사원입니다.
이제 특기학교 수료식만 마치면
진정한 정보인으로 거듭남과 함께 각자의 자리로 떠나게 된다.
나는 1등으로 특기수료를 함과 동시에 '우등 수료'에 대한 상장을 받게 되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어딜 가든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충천했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그 결과로 받게 된 상장이었기에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훗날 그 자신감이 도리어 나를 옥죄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금요일 수료식을 마치고 주말만 지나면 본격적인 첫 출근을 하게 된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또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해야 할 생각에
주말 내내 두려움 반 설렘 반인 마음 상태였다.
오랜만에 친구들도 만나 주말을 즐기고 있는데
'띠링'하며 카톡 메시지가 하나 왔다.
'일요일 저녁 몇 시쯤 도착해?'라는 맞선임의 연락이었다.
맞선임은 부대에서 20분 거리에 위치한 곳에 살고 있어
출퇴근을 하며 군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잠시 부대에 들릴 테니 도착하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나는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조금 일찍 부대에 가기로 했고,
짐이 생각보다 많았기 때문에 부득불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수원에 가게 되었다.
'도착하면 그냥 들어갈 수 있겠지'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한 채로.
차에서 내려 부대 경계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초병에게 가서
'어.. 저.. 저 내일 수원으로 배속받게 된 OOO소위라고 합니다.
짐이 많아서 그런데 부모님 차를 타고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라며
어수룩한 티를 팍팍 내며 물어보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마 얕보였던 것 같기도 하다.
다행히 나와 절친한 사이이자 1년 선배로 가 있던
정환이형(가명)의 도움을 받아 들어갈 수 있었다.
형은 '어, 나 000에서 근무하는 000중윈데'라고 하더니
뭔가를 열심히 적고, 어딘가에 통화를 하고는
우리 부모님에게 ‘이제 들어가셔도 됩니다.’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속으로 형과 너무 많이 비교되는
어리바리한 내 모습을 보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저렇게 능숙하고 멋있는 간부가 되고 싶다는 다짐을 했다.
그렇게 형의 도움을 받아 숙소에 도착해서 내가 쓰게 될 방을 안내받았다.
현관문에는 'OOO대위', 세 글자가 쓰여 있었다.
나는 '대위’라는 계급에 지레 겁을 먹고는
소심하게 노크만 3번 두드리고는 기다렸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다시 노크를 하고는 보이지도 않는 사람에게
'필승! 이번에 전입 오게된 OOO입니다.
제가 202호 방으로 배정을 받아 안내를 받았고'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내 소리가 들렸는지
‘어, 나 샤워 중인데 10분만 이따가 들어올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달리 갈 곳도 없었기에 문 앞에 서서 기다렸고
10분 정도 지나자 그가 문을 열어주었다.
'필승! 이번에 전입 오게...'
'어.. 어. 근데 방이 좀 더러울거야.'
그는 똑같은 대본을 읊고 있는 내 말을 매정하게 끊고는 방으로 인도해주었다.
그런데 이게 사람이 쓰던 방인지,
가축이 쓰던 방인지 모를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미국에서 살다 온 사람이었나 싶은 생각이 든 게,
그는 방에서 신발을 신고 다녔다.
그리고 청소라고는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고,
정말 최악이었던 건 '화장실 변기'를 막아놓았다는 것.
그는 말했다.
'수압이 약해서 잘 막혀. 내가 뚫어보려고 했는데, 잘 안 뚫리네. 미안해~'
나는 바보같이
'아닙니다. 필승!'이라고 대답했다.
당신이 막아놓은 변기니깐 당신이 뚫고 가세요.
라고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렇게 정말 최악의 상태인 방을 나에게 떠넘긴 그는 홀연히 퇴장했다.
나는 그의 이름도 몰랐다.
적어놨다가 전역할 즈음에 발신번호제한으로
'그때 왜그러셨어요?'라며 문자라도 넣는 건데.
(앞으로도 계속 강조하겠지만 절대 일반화할 수는 없는 이야기고,
내가 속한 공군에는 훌륭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많다.
그리고 이 사람은 전역해서 더 이상 군인도 아닐거다.)
여기를 다 어떻게 청소해야할지 막막한 생각이 들던 차에
나와 같이 이 돼지 헛간에서 살게 될 동기가 들어왔다.
창원에 거주 중인 바로 그 친구였다.
그래도 같이 청소할 동지가 생겨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수원에서 우리가 하게 된 첫 임무는 '남이 막아 놓은 변기 뚫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