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승! 신입사원입니다.
열심히 변기를 뚫는데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선배와 약속한 시간이 되었기에
변기 뚫기는 내일의 나에게 미뤄 두고
선배를 만나러 나갔다.
'짐 정리는 잘했어? 방은 어때?'
'괜찮은 것 같습니다.'
아직 선배와 친한 사이도 아니고,
전에 살던 사람이 화장실 변기를
막아놓고 갔다는 이야기를 구태여 하진 않았다.
선배의 차 조수석에 타자마자 햄버거 냄새가 진동했다.
'저녁 먹었어? 안 먹었으면 햄버거 하나 먹어.'
'괜찮습니다. 부모님과 저녁 먹었습니다.'
선배는 왼손으로는 햄버거를 쥐고
오른손으로만 능숙하게 운전을 했다.
돈을 모으고 싶다는 생각에 차를 살 마음은 없었지만
차가 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차 없다고 그랬지? 아마 왔다 갔다 하려면 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할걸?'
내 마음을 들킨 것 같다.
시간이 늦어 어두운 탓에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차를 타고 족히 5분은 걸린 것 같았다.
'내일부터 여기 와서 시간 외 근무 태그 하면 돼.
아직 공무원증이 없으니깐 수기식으로 작성하면 될 거야.'
자전거라도 챙겨 오라던 정환이 형의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큰 낭패를 볼 뻔했다.
뚜벅이 신세로 소화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다시 차를 타고 또 어딘가로 이동했다.
'내일부터 여기로 출근하면 돼.'
깜깜해서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를 알 수가 없었다.
내일부터 혼자 올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뭐해, 안 내리고. 출근해야지^^'
밖은 이미 한밤 중인데
모든 사무실의 불빛이 밝아 있었다.
죄다 24시간 교대로 근무하는 부서들이라 그렇단다.
'여기가 우리 사무실이야.'
들어가 보니 내 또래 정도 되어 보이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필. 승!'
우렁찬 목소리로 우리를 반겨 주었다.
아무래도 선배가 가져온 맥도날드 햄버거를 더욱 반긴 걸지도 모른다.
'이름이 어떻게 돼요?'
나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놓는 게 어렵다.
나보다 훨씬 계급이 낮은 병사라도 말이다.
'OOO일병입니다.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편해지면 편하게 할게요.'
나와 그 친구가 서로 안면을 트는 동안
선배는 수십 장의 보고서를 넘겨보고 있었다.
선배가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데 가만히 있기가 어색했다.
'혹시 제가 내일부터 어떤 걸 하면 됩니까?'
'내일부터 해도 안 늦어. 내일 알려줄게.
오늘은 사무실 위치 알려주려고 부른 거야.'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선배가 무언가에 열중하는데
후배인 내가 멀뚱하고 있는 게 꽤나 눈치가 보였다.
내 마음을 아는 건지 고맙게도 그 친구가 정적을 깨 주었다.
'저 헤어졌습니다..'
열심히 보고서를 넘겨보던 선배는
보고서를 내려놓고 그 친구를 꼭 안아주었다.
'아이고, 어떡하냐. 힘들겠다. 근데 세상에 여자 많다~'
나는 오늘 처음 만난
그것도 만난 지 고작 5분도 되지 않은 사람의 이별을
어떤 말로 위로해주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꼭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선배는 한 편으로는 그 친구의 절절한 이별 이야기를 듣고
또 한 편으로는 열심히 모니터를 응시하며 키보드를 두들겼다.
자칫하면 건성으로 듣고 있다고 오해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꽤나 능숙한 멀티태스커였다.
시간이 꽤 지나고 나서 선배가 이야기했다.
'얼추 한 거 같은데 이제 갈까? 나머지는 내일 새벽에 하지 뭐.'
선배는 나를 방에 내려다 주는 길에 이야기했다.
'원래 주말에는 보고서가 많아서 일요일에 와서 미리 요약하곤 해.
그래야 내일 새벽에 정리하면서 조금 수월하거든.'
'새벽 몇 시까지 오면 됩니까?'
'5시 정도에 오면 될 거야.'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5시라니.
그걸 하루도 아니고 앞으로 매일 해야 한다니.
선배 앞에서 티를 낼 수는 없었기에
겉으로는 무덤덤한 척했지만 마음이 착잡했다.
나를 내려준 선배에게 감사 인사와 필승 경례를 하고
방으로 올라가는데 벌써부터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선배가 아까 했던 일을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매일 5시 출근하면 녹초가 될 것 같은데.
이런저런 생각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그렇게 방에 돌아왔는데
내 방이 더 혼란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