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 나 홀로 중국 유학기 (11)
지금이야 초등학교 저학년들도
너나 할 것 없이 갖은 사교육을 다 받지만,
그 당시 나는 사교육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학교 방과후 교실에서 무료로 ‘탁구’를 배운 것 말곤
교실 밖에서 뭔가를 돈 주고 배워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중국어를 사용하는 중국 학교에서,
중국인들과 같이 수업을 들으려면
교실 안에서 이뤄지는 교육 이외의
추가적인 무언가가 필수적이었다.
그게 아니면 애초에 수업을 따라갈 수가 없으니깐.
나는 동네 한국 교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아주 좋은 ‘과외선생님’ 한 분을 초빙했다.
왜 인기가 좋으냐면 상당히 높은 수준의 ‘한국어’를 구사하는 조선족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조선족 학교를 졸업한 대다수의 조선족들은
우리말과는 꽤나 이질감이 느껴지는 언어를 구사했다.
1992년 한국과 수교를 하기 전까지는 중국에서 배울 수 있는 ‘한국어’는 모두 평양 표준어였으니깐.
예를 들어 ‘괜찮다.’를 ‘일없소.’라고 표현한다든지,
한국 사람이 듣기엔 억양에 있어서
뭔가 어색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그 선생님은 평소 ‘한국 드라마’를 즐겨보고,
‘한국어’를 따로 공부한 사람이라서 그러한 어색한 느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한국 아주머니들 사이에서는 이미
입소문이 난 상태였다.
처음 그 선생님과 수업을 진행할 때 사용했던 교과서는 두 종류였다.
하나는 ‘초등학교 1학년’ 어문(우리 국어에 해당) 교과서였고,
또 다른 하나는 현재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초등학교 5학년’ 어문 교과서였다.
1학년 교과서 학습은 내 중국어 실력 신장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이었고,
5학년 교과서 학습은 내용을 미리 알고 가야 조금이나마 수업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했던 거다.
나는 학교 영어 수업과 예체능 수업 시간엔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어문 시간만 되면 교과서에 낙서하거나 엎드려 자는 게 일상이었으니깐.
그러나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이든 고등학교 1학년 수준이든 나에겐 똑같이 어려운 중국어였다.
단순히 문장의 길이가 길냐 짧냐의 차이였고, 짧다 하더라도 내가 알아볼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배울 내용을 미리 예습하고 갔는데도
수업 시간에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은
거의 없었다.
그냥 본문의 제목이나 내용 정도만 ‘한국어’로 배운 그대로 ‘암기’ 한 상태였고,
선생님의 수업 진행은 전혀 쫓아가질 못했다.
학교 수업도 전혀 못 따라가는데
집에 돌아오면 다음 수업을 예습하고 있었으니,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첫째는 학교에서 실컷 공부를 하고 돌아오면 집에서 또 공부를 해야 한다는 데서 오는 짜증이었고,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는 전혀 알아듣지도 못한다는 데서 오는 허탈감이었다.
과외수업을 시작한 지도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여전히 학교 수업은 쫓아가질 못하고,
선생님이 뭐라고 이야기하는지조차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상태다.
그래도 과외선생님과의 초등학교 1학년 과정 수업은 이제 조금씩 따라가고 있는 중이다.
선생님은 내게 본문을 통째로 외울 것을 요구했고, 나는 ‘의미’ 파악 이전에 내용부터 외워버렸다.
나는 여러 교회가 참가한 ‘성경암송대회’에서 1등도 해본 터라, 암기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본문을 한 과씩 외워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중국어의 문형이 머릿속에 박히게 되었고,
학교에서도 중국 친구들과 조금씩 소통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말’보단 ‘몸’을 사용한 의사표현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친한 친구들도 생겼다.
과외선생님과 학교 친구들은 ‘인내심’을 갖고 나와 대화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그러나 학교 선생님들은 달랐다. 그들에게 ‘자비’란 없었다.
하루빨리 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 있어야
학교 다닐 맛이 생길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학교를 놀러 다니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