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승! 신입사원입니다.
시침이 5시를 채 가리키기도 전에
사무실에 도착해버렸다.
너무 일찍 온 건가 싶기도 했지만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사무실에 들어가서
어제 선배가 하던 일을 흉내 내 보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사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차 몰랐다.
결국 선배가 올 때까지 공연히 시간만 보낼 수밖에 없었다.
6시가 되기 조금 전에 선배가 출근을 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일찍 와봤자 큰 도움도 되지 않았고,
그 자리에서 멀뚱멀뚱 있는 게 참 불편했는데 말이다.
'몇 시에 왔어?'
'4시 40분 정도에 온 거 같습니다.'
'너무 일찍 오는 거 같은데, 5시 조금 넘어서 와도 돼.'
그는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그가 두드리는 키보드만 봤을 때는
흡사 프로게이머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나랑 불과 6개월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도
6개월이란 시간의 경험치를 무시할 수 없는 건지,
아니면 그가 그냥 뛰어난 사람인 건지
어쩌면 둘 다 해당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20분 정도 지났을까.
또 다른 선배가 출근했다.
그의 모자에는 다이아가 두 개나 박혀있었다.
'어, 너구나. 나는 OOO중위야.'
정말 간단하게 인사만 하고는
'이제 내가 잡을게.'
하고 둘이 자리를 바꿨다.
분명 완성도가 있는 보고서인 줄 알았는데
그보다 선배가 키보드를 잡고 나니
수정되는 내용이 생각보다 많이 있었다.
선배가 열심히 작업을 하는 동안
선배는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새벽마다 하는 일은 다음과 같았다.
새벽에 나오는 다 출처의 보고서들을 모두 종합하고 요약해서
우리 부대만의 형식과 포맷으로 자료를 만드는 것이다.
읽고 요약해야 하는 보고서가 많아서 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했고
그보다 양이 많기 때문에 무엇이 중요한 건지 읽어내는 능력이 가장 중요했다.
만약 중요하지도 않은 내용을 넣었다가는
다시 지우고 또 넣고 하는 작업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물론 다시 지우고 또 넣는 작업은 나보다 선배가 하기 때문에
속된 표현으로는
내가 싼 똥을 선배가 치우는 격이라서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었다.
글씨 크기, 줄 간격 등 서식뿐만 아니라
지도 마킹과 사진 등 참고자료까지
무엇 하나 소홀할 수가 없었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가장 막내인 내 손에서 시작하게 된다.
즉, 내가 잘못하면 모든 내용이 엉터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가족오락관의 '이구동성'게임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내가 작성한 날 것의 초안을
6시에 출근하는 선배가 1차적으로 작성하고
6시 20분에 출근하는 선배가 최종적으로 수정하면서
부서장에게 최종 검토를 받게 된다.
정확히 무슨 내용을 작성하는지는 글에 적을 수 없지만
조금의 과장을 보탠다면
CIA와 같은 정보기관을 다루는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부서장의 검토를 모두 마친 보고자료를 업로드하고
부서장이 브리핑을 마친 뒤에야 비로소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시계를 보니 대략 '08:20'이었다.
불과 3분짜리 보고를 위해서
3시간을 넘는 사투를 벌인다니.
그 과정에서 조금의 실수나 오타가 나오면
3시간의 사투가 모두 무위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더 신중해야 하고,
그래서 더 꼼꼼해야 한다.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다.
3시간의 사투를 벌인 후 기진맥진 상태로 사무실 밖에 나갔다.
그제야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며 만감이 교차한다.
모두 나보다 상급자였기에 열심히 '필승' 경례를 날리는데
누군가 고개를 끄덕이고 우리 사무실로 향해 가다가
다시 내쪽으로 걸어오더니 내 이름을 확인하고는
'너구나? 반갑다. 이따 보자' 하고 악수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