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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푼 May 22. 2022

‘퇴사하겠습니다’ 말할 수 없는 이유

남보다 뒤처지는 두려움

삶에 우여곡절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다들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인생에서 크고 작은 굴곡이야 있었겠지만

내 인생의 굴곡은 남들만큼 심한 기울기의 곡선은 아니었다.


면접관이 실패했던 경험을 물어봤을 때는

무언가 대단한 실패라도 겪었던 사람처럼 잘만 대답했던 것 같은데

이곳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내 인생이란 사전에는 ‘실패’라는 단어가 수록된 적이 없었다.


살면서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일이 많았고

내가 속해 있던 모든 곳에서 인정을 받고 살아왔다.

그게 당연했다.

열심히 살았고, 열심히 한 만큼 대가가 따른 거니깐.

그런데 그 진리가 통하지 않는 세계가 있었다.

그 세계에선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게 돼버렸다.

대가가 정해져 있었고, 그 대가만큼의 열심을 제공해야만 했다.

그리고 어느 누군가는 항상 내가 받고 있는 대가에 비해

나의 열심부족하다고 여기고  내게 상기시켜줬다.

이걸론 부족해.’

 해야 .’


처음에는 그의 말대로 내 열심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요구대로 부족한 걸 채우고자 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열심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부족해.’


‘요즘 세대’가 직장 생활에서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받는 만큼만 일하자.’


어쩌면 당연한 얘기다.

근로자와 사용자가 근로계약을 맺어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에 맞는 임금을 지급받는 거니깐.


그런데 내가 속한 세계에서는 저 이야기가 변형되어

받는 만큼은 일해야지?’라는 심리적 압박으로 다가왔다.

퇴근을 하면 ‘벌써 퇴근할 수 있냐. 바쁘지 않은가 보네.’,

때로는 퇴근하는 날 두고 손가락질을 하며 ‘도망간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뭐라고 하시지?’ 생각했다.

그런데 내 퇴근이 도망으로 완벽하게 둔갑이 된 이후부터는

내 잘못임이 분명해졌다.

그는 내 열심을 정량적으로 평가하고 있었고,

나는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의 평가는 근태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늘 실현이 불가능한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결국에는 나의 무능함으로 결론이 지어질 테니깐.


이러한 공격이 반복되면서 내 정신은 더욱더 피폐해져 갔다.

도저히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허울만 좋은 이야기일 뿐이다.

즐길 수 없다면 피하는 수밖에.


첫 직장이었기 때문일까?

나이가 제일 어리기 때문일까?

실패의 경험이 없어서 맷집이 약해서일까?


온갖 변명거리를 찾아보았다.

어느 변명거리를 갖다 붙여보아도 다 그럴싸해 보였다.


그래. 다시 시작해보자.


퇴사를 하기로 마음먹고 기하기로 했다.


그런데 며칠,  , 몇 달이 지나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만두겠습니다.’


이 한마디가 목 끝까지 차올랐는데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면서 몸이 망가졌는데도

회사를 그만두면 하늘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남들에게 뒤처지는 것 같아 두려웠다.

지금까지 앞서 왔으니깐

이제서야 남들과 같이 발걸음을 맞추는 것뿐인데.

남들과 같아지는 것뿐인데.


왠지 모르게 뒤처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만방자하게도

앞서 나가지 못하는 것이 뒤쳐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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