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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푼 Nov 24. 2022

카타르 도하까지 남은 1시간 57분의 비행

내가 백수가 되긴 했구나

인천에서 오전 10시에 비행기를 타고 4시간 이상 이동하고 보니 홍콩 시간으로 오후 1시가 되었다. 가는 길에는 홍콩의 캐세이 퍼시픽 항공을 이용했는데, 처음 이용한 항공사였지만 음식도, 전반적인 서비스도 모두 만족스러웠다. 기내식으로는 치킨 덮밥 같은 게 나왔는데 우리나라의 닭볶음탕 같았다. 새벽 6시 즈음 집에서 출발하느라 따로 챙겨 먹은 게 하나도 없어서 그랬는지 걸신이라도 들린 듯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은 곤히 잠에 들어 기내식을 먹지 않았는데, 후식으로 나온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이라도 대신 먹어줄 걸 그랬다.


홍콩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항공사 직원이 팻말을 들고 서서 나를 찾고 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 아닌지 우려가 되었는데 나를 에스코트하고 가는 길 동안 아무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 걱정스러움이 더해졌다. 그녀는 나를 데리고 어딘가에 도착해서 14:30까지 기다리라고 하고 사라졌다. 맹목적으로 한 20분 정도 기다리고 있다가 뭔가 느낌이 싸해서 다른 직원을 찾아가 물었다. 그녀는 나와 광둥어로 소통을 하고자 했는데, 나는 중국 표준어(보통화)가 가능하냐고 되물었고 중국어로 소통을 하고 난 뒤에야 아무 문제도 없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카타르항공으로 환승하기 위해서 수속을 밟아야 했고, 14:30에 오픈하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기다리는 한 남자가 내게 영어로 인사를 건넸다. 오커란이라는 이름의 홍콩 남자였다. 그는 내 최종 행선지는 어디인지, 왜 가는지 등을 물었다. 나는 카타르에 월드컵을 보러 간다고 했다. 처음 본 사람이지만 TMI로 어제까지 일하고 직장을 그만둔 뒤 떠난 여행길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내가 어디에서 일했는지 물었고, 나는 대학교에서 일했다고 답했다. 홍콩에서도 교직원은 꽤나 안정적인 직업이라며, 내게 그 용기가 아주 멋지다고 격려해 주었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는 뉴질랜드에 있는 공장을 보러 간다고 했다. 옆에 있는 상사를 모시고 다니는 듯 보였다. 내 영어가 짧은 터라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묻지 못했다.


14:30이 되었는데도 직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14:40 정도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한 명이 나타나 천천히 컴퓨터를 켜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발급받은 비자가 있는지 물었고, 나는 힘겹게 발급받은 하야 카드(Hayaa card)를 보여 주었다. 하야 카드를 힘겹게 발급받게 된 스토리는 조만간 또 공개하기로 하겠다. 하야 카드를 보여주고 수속을 마친 나는 카타르 항공 환승게이트로 이동했다. 이동하고 보니 출발까지는 4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기내식을 먹기는 했지만 금방 또 배가 고파진 상태였기 때문에 곧장 식당가로 향했다.


여행을 가면 현지 음식을 먹는 게 일반적이지만 나는 적응이 되기 전까지는 햄버거와 같은 실패할 확률이 낮은 음식을 먹는다. 도전 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홍콩의 물가가 비싸서 웬만한 메뉴가 모두 3만 원이 넘었는데 거금을 들여 맛없는 음식을 먹어서 내 여정을 망칠 순 없었다. 나는 검색창을 열어 170 HKD(홍콩달러) 165 HKD(홍콩달러) 모든 식당 모든 메뉴의 가격을 검색해 보았다. 원래 더치페이를 하는 그 순간의 어색함을 모면하고자 계산도 종종 하는 편이었는데, 가격표를 보고 일일이 검색하며 심사숙고하는  내 모습을 보고는 내가 진짜 백수가 되긴 했구나라고 새삼 또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30여 분을 돌아다니면서 겨우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원래 버거킹이나 맥도날드를 가고 싶었는데, 버거킹을 포함한 대부분의 서양식 음식점은 코로나로 인해 운영을 하고 있지 않았다. 대신에 Orleans라는 곳에서 버거와 프라이를 주문했다. 우리나라 돈으로 3만 원 정도였다. 다행히 맛은 있었는데, 주문하고 나서 보니 부가세 10%는 별도로 33,000원이 조금 넘는 가격이었다. 고작 햄버거 하나를 그 가격을 주고 먹었다는 사실에 조금 서러웠지만 배도 찼고 맛도 그럭저럭 괜찮았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남은 3시간 동안은 게이트에서 핸드폰을 충전하며 쉬기로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는 한 사람 때문에 쉴 수는 없었다. 충전이 가능한 구역이 한정적이었는데, 한 사람이 일자로 길게 누워서 이어폰도 끼지 않고 큰 소리로 인터넷 방송을 보는 듯했다. 모든 사람들이 쳐다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송을 보고 또 큰 소리로 영상통화를 하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되어 환승게이트가 열리고 도하에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기내식을 주문하는데 내 옆에 있는 부부가 영어를 못 알아듣자, 승무원이 나보고 얘기 좀 해주라고 했다. 나는 그 부부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몰랐는데 같은 동양인이라 같은 언어로 소통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나 보다. 다년간의 직무 경험으로 미뤄 보았을 때 이런 경우 아주 높은 확률로 중화권 국가의 사람일 수가 있어 중국어로 이야기를 해주었고 그 효과는 상당했다. 여러모로 중국어를 배워 두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또 한 편으로는 바로 뒷좌석에서 중국어로 크게 떠드는 일행이 있어 편안한 비행이 되지 못했다.

그래도 이제 도하까지 1시간 57분의 비행이 남았으니 조금만 참으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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