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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푼 Nov 25. 2022

첫 월드컵 직관을 카타르에서 하다니

인생을 즐기기로 했군요

11월 22일까지 근무를 하고 23일 오전 비행기 편으로

장장 16시간의 비행 끝에 이곳 도하에 도착했다.

처음으로 축구 경기 직관을, 그것도 이곳 카타르에서 월드컵을 보면서 하다니

이틀 동안 세 시간 정도 잠을 잔 것 같은데도 잠이 오지 않는다.

분명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아서일 테다.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대한민국 조별예선 첫 번째 경기인 우루과이전을 보기 위해 경기장으로 향했다.

경기장으로 향하는 길 내내 월드컵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주차장에 내려서는 경기장까지 30분 정도 걸었는데,

가는 길 동안 이번 월드컵을 위해 DJ의 디제잉도 볼 수 있었고 춤을 추는 사람도 볼 수 있었다.

세계 각국의 축구팬들이 들뜬 마음을 가지고 경기장으로 향하고 있다.

퇴사를 결심하기 전부터 이따금씩

카타르에 가서 월드컵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러다가 결국 현실적인 어려움들 때문에 생각을 접었었다.

돈도 벌어야 했고, 장기간 휴가를 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만약 휴가를 낸다고 하더라도 온전히 월드컵에 집중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카타르에 와 있다는 사실이 계속 믿기지가 않았다.

경기장에 들어와 보니 왜 사람들이 축구 경기장을 찾는지

왜 그 많은 사람들이 수십 시간의 비행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와서 월드컵을 즐기는지 알 것만 같았다.

경기장의 웅장함에 압도되었고, 곧 시작할 월드컵 경기가 더욱 기다려졌다.

월드컵 경기를 기다리면서 뒤늦게 내 퇴사 소식을 전해 들은 동료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다소 무거운 분위기로 내게 위로를 전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지금 내 기분 상태와는 완전히 대조적인 상황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두 시간 뒤면 월드컵 경기를 직관한다는 설레고 기대되는 생각뿐이었다.

지금 육아휴직 중인 한 동료는 내게 ‘이제 인생을 즐기기로 했군요?’라고 이야기했는데

그 말이 딱 맞는 표현 같았다.

지금껏 해야 하는 것을 위해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고 살았고, 그게 대부분의 직장인에게 적용되는 일일 것이다.

그만큼 직장을 그만두고 이곳에 오는 그 결심을 하는 것이 내게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는데,

이곳에 와서 보니 생각보다 인생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그중에는 휴가를 내고 온 사람도,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되어 온 사람도 많았겠지만

이유야 어찌 됐든 모두 이 순간을 즐기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현실의 어려움과 괴로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온전히 이 순간을 즐길 뿐이었다.


경기를 기다리는 동안 경기장을 돌면서 경기를 보러 온 김병지 선수, 이동국 선수, 박주호 선수를 만나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각국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찾은 외국 팬들과 기념사진도 찍었다.

무언가 다른 세상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축제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

세계 속 축제 한가운데 있는 기분이 낯설면서도 싫지는 않았다.

 

경기가 시작되고 관중들의 함성 소리와 함께 경기장의 뜨거운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세계인들이 왜 축구에 그렇게 열광하는지, 그리고 경기장에 와서 축구를 보려고 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TV 속 중계화면으로 축구를 ‘볼 때’와 경기장에서 경기를 ‘함께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원래 조별예선 세 경기를 모두 볼 계획은 아니었는데, 우루과이전을 보면서 확실히 깨달았다.

이곳까지 날아와서 조별 예선 세 경기를 모두 보지 않는 것은 큰 잘못이라는 것을.

아마 이곳 경기장을 찾은 4만여 명의 사람들 중

경기장에서 축구 경기를 처음으로 본 사람은 나밖에 없지 않았을까.

월드컵 경기를 처음으로, 그것도 자국이 아닌 카타르에서 보았다는 건 정말 이색적인 경험일 것이다.

‘대한민국 응원가’를 부르는 것이 조금 낯설고 어색해서 하는 시늉만 했는데

경기가 진행되고 분위기가 과열되면서부터는 목이 찢어져라 대한민국을 연호했다.

원래 그런 성격의 사람이 아닌데도 미친 듯이 소리를 치고 또 환호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이 순간을 남기고자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하다가 문득 이건 내 두 눈으로 남기는 게 몇 십배는 더 가치 있는 일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의 메모리가 영상으로 오랜 기간 기록을 해줄 수는 있겠지만

비록 언젠가 내 기억이 잊히더라도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느끼는 게 더 중요한 일이었다.


경기가 끝나고는 같이 응원을 한 사람에게 먼저 ‘고생하셨어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해외에서 만난 우리나라 사람은 정말 반가웠다.

그것도 국가대표팀 응원이라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욱 반가웠다.

이제 집에 가서 우루과이전 경기를 중계화면으로 다시 볼 생각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을 하게 되어 대한민국팀 16강 영웅담이 회자되는 날이 온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그 영광스러운 현장의 내가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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