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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푼 Nov 23. 2022

카타르 여정의 첫날

아직까진 실감이 나지 않는 휴식

어제 부로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전셋집에 있는 짐을 옮겨 왔다.

살림을 하던 집이 아니라는 생각에 옮길 짐도 별로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참으로 안일한 생각이었다.

2년 반의 시간 동안 꽤나 많은 짐들이 집안 곳곳에 숨어 있었고,

이를 옮기기 위해서 적지 않은 수고스러움이 들었다.


어제 오전에는 직장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여러 부서를 .

놀라는 사람이 절반이었고, 나머지는 대부분 이직을 하게 된 것으로 생각해

정해진 곳이 있어서 가는 거냐고 물었다.

그리고 정해진 곳은 없다는  대답을 듣고는 전자의 사람들처럼 놀라 했다.

그 놀라움은 좋은 쪽보다는 그렇지 않은 쪽에 가깝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준비라도 했다는 듯이 다음 행선지는 ‘카타르라고 선수 쳐서 이야기했다.

내 얘기를 듣고는 ‘월드컵을 보러 카타르에 간다니 참으로 낭만적이다.’라고 부러워했다.

그들은 내가 카타르에 간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는,

뒤도 재지 않고 직장을 그만두고 놀러 가는 내 모습이 부러웠을 테다.

이유야 어찌 됐든 카타르로 여행 가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사를 다니면서 느낀 점은 내가 정말 싫어하는 직장이었지만

이곳에는 꽤나 많은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퇴사를 해야겠다는 오랜 고민 속에서도 쉽게 결심을 내릴 수 없는 이유였기도 했다.

결심을 하고 나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기에 그들은 따뜻한 격려의 말을 건넴과 동시에

‘미리 얘기해주지.’라고 말하며 섭섭한 눈치였다.

만약 내가 결심이 아닌 고민을 그들에게 먼저 나눴더라면, 어쩌면 또 그런대로 직장을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먼저 이야기를 하지 못했음에 미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러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두니깐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았다.

명쾌하게 답을 해주진 못했었는데,

카타르에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 글을 쓰면서 한 번 생각해봤다.

오랜 연애를 한 상대와 이별을 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끝을 내야 하는데,

생각만 하고, 고민만 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없었다.

만나는 동안 꽤나 힘들었는데, 결국은 헤어졌다.

끝이 나고 나서도 한 동안은 생각이 날 것 같다.

그래도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다.

나랑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다시 만날 수도 없다는 것을.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도 이런 생각이 든다.

마치 출장을 가는 듯한 느낌 같기도 하고,

경기를 보고 돌아와서 밀린 업무를 처리해야 할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게이트에서도 공연히 채용공고 사이트를 둘러보곤 했다.

아직까지 휴식은 내게 너무나도 어색한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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