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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푼 Nov 14. 2022

퇴사와 카타르 한 달 살이

쉴 자격이 있는 사람

퇴사를 결심하고 나서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글도 써보고 싶고, 그림도 그려 보고 싶었다.

근데 그래도 되는 건가?


하고 싶은 걸 생각하는 것도 잠시, 곧바로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내가 생각했던 하고 싶은 것은 ‘일’이 아니라 ‘놀이’였는데 말이다.


정해진 게 없는 상황에서의 퇴사였기 때문에 막막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테다.

퇴사하고 최소 한 달은 휴식하기로 마음을 먹었음에도

공연히 취업 정보를 제공하는 카페에 들어가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건가.’

씁쓸하게 웃음을 지어 보았다.


언젠가 친구 중 한 명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회 규범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 보기 드문 젊은 청년이지 너는.’

분명 좋은 의도로 말한 건데도 지금 생각하면 그저

세상이 바라는 나의 모습대로만 살아온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의 기대에 어느 정도는 부응하며 살아온 것 같기도 하다.

2017년부터 지금까지 6년 동안 경제활동을 멈춘 적이 없었다.

삼쩜삼이라는 세금 환급 플랫폼에서 최근 5년간 소득을 분석해주는 서비스가 있어 재미 삼아해 보았는데,

5년간의 총 근로소득으로 1억 7천만 원을 벌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분명 그런 큰 금액을 만져본 적 기억은 없는데 그래도 그간 꽤나 열심히 살았나 보다.


물론 10년, 20년 직장생활을 한 분들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지난 6년 간 쉼 없이 달려온 나였다.

먼저 가면, 앞서 가면 분명히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달려오긴 달려왔는데

어딜 향해서, 무엇을 향해서 달려온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만둘 수 없었던 건

아직 쉴 때가 아니야. 쉬어서는 안 돼.’라는 일념 하나 때문이었다.

돈을 벌어서 결혼도 해야 하고, 돈을 벌어서 집도 사야 했다.

할 일이 태산인데 쉴 수 없었다.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지조차 모르고 있는 주제에 말이다.


내가 정말 의지하는 형이 오늘 저녁을 먹으면서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너는 쉴 자격이 있어.’

그 한 마디를 듣고 느낀 바가 있다.

내가 나에게 가장 엄격한 사람이었구나.

나는 쉬어도 되는 사람이었다.


어느 누가 뭐라 할지라도 나는 쉴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합리화와 함께 기존에 계획했던 2주일 카타르 월드컵 직관 계획이

카타르 한 달 살이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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