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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푼 Dec 27. 2022

갈 사람은 가야지

카타르 한 달 살이를 마무리하며


한 달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우루과이전을 보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게 벌써 한 달 전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한 달이란 시간이 길 수도 또 누군가에게는 한 달이란 시간이 짧을 수도 있다. 나에게 있어서 한 달이란 시간은 월드컵과 함께였기에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다.

11월 24일 조별예선 첫 경기였던 우루과이전을 시작으로, 가나전, 포르투갈전, 브라질전까지 4경기를 모두 경기장에서 함께 했다. 정말 꿈만 같았던 시간들이었고, 그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정확하게 한 달 전에 브런치 플랫폼에 작성했던 글 ‘첫 월드컵 직관을 카타르에서 하다니‘ 를 읽으면서 소름이 돋았다.

이 글을 작성할 당시만 하더라도 가슴으로는 대한민국의 16강 진출을 염원했지만 머리로는 그런 기적 같은 일은 벌어질 리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조별예선에서 같은 조였던 우루과이, 가나, 포르투갈 어느 하나 만만한 나라가 없었다. 대한민국은 최약체로 꼽혔고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3패, 잘해야 1무 2패를 할 거라 점쳤다. 그러나 언제나 그러했듯이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포르투갈전에서 승리하고 16강 진출을 확정 지었던 당시 이곳 현장 분위기는 20년 전인 ‘2002년 4강 신화‘를 이룩해내었을 때 못지않았다고 자부한다. 한국에 돌아가면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그 영광스러운 현장에 내가 있었다고.

직장을 그만두고 카타르에 온 데는 월드컵을 보기 위한 목적이 가장 컸지만 그렇다고 월드컵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퇴사 후 리프레시를 위해 한 달 제주살이를 택하는데, 나 역시 생각과 마음을 비우고 온전히 재충전을 하기 위해 이곳 카타르에 오게 되었다. 사실 카타르에서 볼거리는 그리 많지 않다. 도하를 중심으로 펼쳐진 도심지를 벗어나서는 아직도 개발이 되지 않은 지역이 많았고, 개발이 되지 않은 지역은 사막처럼 황량했다.

만약 관광을 목적으로 카타르에 온다면 일주일이면 충분히 볼거리를 모두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나마 월드컵이라는 지구촌 대축제가 있었기에 월드컵 기간 중에는 볼거리가 꽤 있었지만 월드컵 결승전을 끝으로 폐막이 진행된 이후부터는 그마저도 모두 사라졌다. 돌이켜 보니 이곳에서 지낸 한 달은 3단계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단계는(2022.11.23.~12.6.) 붉은 악마로서 대한민국의 기적적인 16강 진출을 함께 했던 꿈같은 기간이었고, 다음 단계는(2022.12.7.~12.18.) 각국에서 온 세계 각국 축구팬들과 교감하며 월드컵을 즐길 수 있었던 기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12.19.~26.)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간이었다. 붉은 악마의 일원으로서 모든 경기에서 대표팀을 응원하고 대한민국의 16강 진출을 염원했던 꿈같은 시간, 그리고 그 꿈이 현실이 되어 브라질과의 경기를 두 눈으로 직접 보며 응원했던 순간은 앞으로 내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왜 사람들이 축구를 사랑하고, 공 하나에 울고 웃을 수 있는지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모로코의 4강 진출 신화 역시 현지에서 모로코 사람들의 뜨거운 열정과 함께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매 경기가 끝날 때마다 지하철, 길거리에서 춤을 추고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며 ‘멋있다.’는 생각을 여러 차례 했다. 월드컵이 진행되기 이전부터 카타르에는 모로코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다. 일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온 이주 노동자들이 많았는데, 카타르에서 월드컵의 감동을 함께 하며 자신들이 모로코 국민이라는 사실을 어느 때보다도 자랑스럽게 여겼을 거다.

나도 태극기 모양이 있는 옷을 입고 길거리를 다니면 ‘코리아?’ 하면서 한국을 알아보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라며 먼저 인사를 건네는 그들을 보며 한국의 위상이 올라갔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런 순간마다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대한민국의 국민임이 자랑스러웠다. 또한 어딜 가나 BTS 정국이 부른 피파 월드컵 주제곡인 ‘Dreamers’가 흘러나오면서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이 더없이 자랑스러웠다.

12월 18일 밤. 메시와 음바페의 대전이 메시의 승으로 끝을 내림과 동시에 월드컵은 끝이 났다. 월드컵 기간 동안에는 나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세계인의 축제 속에서, 축제에 초대된 사람으로서 축제를 즐기는 것이 책무였다. 월드컵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그 긴 시간 동안 앞으로 무엇을 할 건지가 스스로에게 물은 가장 큰 질문이었고, 아직도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명확하게 내리지 못했다. 무엇을 할지,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한 달이라는 월드컵 기간 동안 내린 결론은 ‘인생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자’였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가 아니다. 힘든 일을 하더라도, 그 안에서 즐길 거리를 찾아 충분히 행복하게 살자는 것이다. 인생은 짧다. 그 짧은 시간 동안 행복하게 살기도 아까운데, 힘들다고 힘든 부분만 생각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내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언제나 인생을 복잡하게, 심각하게 살았던 것 같다. 카타르에서 내가 본 바로는 적어도 월드컵을 보러 온 사람 중 인생이 고달파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그들 중에는 나보다 훨씬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적어도 내 눈에는 인생이 행복한 사람밖에 없었다. 나도 이제 내 인생을 멋지게, 행복하게 살기로 했다. 월드컵을 보러 온 사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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