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승! 신입사원입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MBTI 성격 유형 검사를 실시했는데 내가 ‘ISTJ(세상의 빛과 소금형)’ 유형의 인간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후에도 몇 차례나 검사 기회가 더 있었는데 줄곧 ‘ISTJ 유형’으로만 결과가 나왔다. 나는 어쩔 수 없는 ISTJ 인간인가 보다.
인터넷에서 'ISTJ 유형 인간'에 대해 적나라하게 묘사한 내용을 찾아 첨부해보았다.
내용을 보고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한 분석에 나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다. 정리된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 이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 없으니 차라리 모든 부분을 내가 도맡아 하는 편을 선호한다. 나라는 인간은 내가 좀 더 고생하더라도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고자 하는 그런 인간이다.
이런 내 성격 탓에 대학 생활 동안 숱하게 겪었던 팀플레이(조별과제)는 스트레스일 뿐이었다. 상대방에게 역할 분담을 해주는데 익숙지 않았고, 설령 역할을 분담하더라도 '그 사람이 제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부터 앞섰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두고 '오만방자'하다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뭐 어떡하겠는가. 이게 '나'인데. 또한, 남들에게 도움을 줬으면 줬지 피해를 끼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도움은커녕 출석도 제대로 하지 않음 운동부 학생에게도 'A 학점'을 선물해줬던 나였으니깐.
그래서인지 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나는 '팀플레이로부터의 해방이다.'라는 기쁨과 환희에 차 있었다. 그런데 정보학교에서 다시 한번 나에게 '팀플레이의 악몽'을 떠오르게 해 주었다.
정보학교에서의 브리핑 자료 작성과 브리핑은 팀플레이의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2인 1조로 구성된 팀이었고, 교관들이 임의로 정해준 조대로 팀 과제를 수행하기로 했다. 정확한 팀 선정 기준을 공개한 적은 없지만 '1등'과 '꼴등, '2등'과 '뒤에서 2등' 이런 형태로 조를 지어준 거로 보아 추측건대 두 사람의 평균성적을 맞춰서 조를 결성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내 성적이 2등이었는데도 꼴등이었던 형과 조를 이루어 협동하게 되었다. '쇼부'를 외쳤던 바로 그 형이었다.
모두에게 생소한 주제였기 때문에 서로의 협력이 절실했다. 우리는 먼저 역할 분담을 하기로 했고 우선 브리핑을 하기 위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먼저 만들기로 했다. 우리 조는 두 가지 주제로 브리핑하기로 했고, 서로 주제를 하나씩 담당하여 자료를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작업을 하기 시작했고, 90% 정도 완성했을 때 ‘형, 얼마나 했어요?’라고 물어보니 ‘아직 내용을 어떻게 구성할지 구상 중이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순간적으로 '내가 거의 다 만들 동안 이 형은 뭘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믿고 맡겨보기로 했다. 나는 '형, 그럼 만들고 있어요.'라고 이야기하고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갔다.
한 10분 정도 뒤에 돌아왔는데 이 형이 태평하게 '일본 소설'이나 읽고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형, 뭐해요?'
'아, 머리 좀 식힐 겸 잠깐 책 좀 읽고 있었지.'
'만든 거 한 번 봐봐요.'
'아직 제목밖에 못 적었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고작 제목 하나 만들었다니.
이 형만 믿고 있다가는 수원은커녕 수도권도 못 가게 생겼다. 하는 수 없이 두 번째 주제도 나눠서 만들기로 했다. 또다시 몰두해서 자료를 작성하고 있는데,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형을 발견했다.
내 인내심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확인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형을 툭툭 치면서 이야기했다.
‘형, 좀 심하다는 생각 안 들어요?’ 형은 깜짝 놀라면서 깨더니, ‘아, 미안, 미안. 깜빡 잠들었네?’라며 아무렇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팀플레이의 폐해인지, 아니면 그 형의 잘못인지. 그것도 아니면 형을 잘 이끌어가지 못한 내 잘못인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