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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 Sep 13. 2022

구조적 아름다움에 대한 고찰

구조적, 또는 형식적 완성도에서 오는 아름다움


  구조적, 형식적. 


어떤 단어가 적합한지 모르겠다. 고찰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내가 얼마나 무지한지를 깨달아 가고 있다.


영화 '기생충' 중 계단 장면



  음악, 글, 영화 등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구조적(그냥 구조적 이라고 하겠다.) 완성도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왜 구조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선호하는가?’


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글인데, 막상 써보니 질문조차 어이가 없다. 당연한 말 아닌가.  얘기하고자 하는 작품 속 구조적이라 함은 ‘특정한 무엇을 나타내는 대에 논리정연하다’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예시를 들자면


추재훈, 넌 날 사랑했어. 

아니, 정확하게는 사랑한다는 말로 날 너의 틀에 맞추려 했어. 너의 틀에 맞춰지지 않으면, 날 비난했어. 날, 버려뒀어 길들이려고.

넌, 사랑하려고 한 게 아니라 소유하려고 했어. 
넌 나한테 널 맞춰갈 생각이 없었어.
너의 틀에 날 끼우려고 내 어리석음을 인질 삼아 내 감정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네가 원하는 걸 끊임없이 요구했어. 
그 요구가 이뤄지지 않으면 날 비난했어. 날, 버려뒀어.

넌, 나를,
사랑한거니?

- 멜로가 체질 대사 중


  드라마 ‘멜로가 체질’ 중에서 나오는 대사다.(멜체 대사부터 시작해서 모든 게 너무 내 취향..)

문장 또는 단어를 중심으로 하여 대사 전체를 아치 형태(?)와 같이 구성되어 있다. 

“넌 날 사랑했어” 로 시작해서 “넌 나를 사랑한거니?” 로 끝맺음 하였고,

“날 비난했어. 날, 버려뒀어” 를 그 전후에 반복하였다. 어찌 보면 문단 자체도 아치 형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https://youtu.be/JyGO6osGaBY


  이 장면도 개인적으로 많이 좋아하는 장면..  이병헌 감독의 개그 코드 자체가 너무 잘 맞는 것 같다.  이거 뭐 거의 멜로가 체질 홍보 글인데?

  여기서도 문장 또는 구성 자체를 반복하는데, 이러한 반복이 주는 뉘앙스가 있다. 아마 장면 자체를 서술하는 방식으로 풀어갔으면 전혀 다른 뉘앙스였을 것이다.


  물론 이 외에도 다양한 예시가 있겠지만, 그냥 최근에 다시 본 멜로가 체질이 제일 생각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아 대표 사진은 기생충의 장면인데 아무 얘기 안 했네.  기생충도 구조적으로 정말 잘 짜인 영화다. 전문가가 아니라서 아는 척할 게 없지만,  '선' 과 '수직 구도' 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었다.  계단은 그러한 역할을 하는 요소로 사용되었다.






  정리를 해봤다.  구조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선호하는 이유.


1.  당연한 말이지만, 구조적으로 완성도가 높다는 것은 그 작품 자체가 좋은 작품일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작품 자체가 완성도가 높으면 그 이유가 무엇이든 좋아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건 패스.


2. 작곡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분석' 이지 않을까 싶다.  화성학이라는 이론을 배우고, 다양한 곡을 분석하게 된다. 모든 음악에 대한 얘기를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배우고 알고 있는 작곡은 정말 분석을 많이 하게 된다. 특정 주제가 곡 전체적으로 어떻게 쓰이는지, 어떻게 발전되는지 등등.. 

  깊이 얘기하자면 복잡하고, 여하튼 이러다 보니 나는 평소에 음악을 들을 때도 분석을 하려는 시도를 많이 한다. (음악뿐 아니라 영화든 무엇이든 하는 것 같다.)  

  내 생각에 나는 분석했을 때 특정 요소들이 그 자체로 근거가 되는, 구조적으로 짜임새가 좋은 작품을 보며 '타당하다' 느끼는 것 같고, 그것이 타당하고 느낄 때 작품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높아지는 것 같다.


3. 2번과 연결되는 맥락인데, 이건 성격에서 이유가 좀 있다고 본다.  나는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대부분의 상황에서) 항상 그것에 대한 근거가 있어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근거가 없거나, 없다고 판단되면 받아들이지 않거나 표면적으로만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다.  감정조차도 근거가 있어야 하는 성격이다.  

  단적인 예로, 난 신파 영화를 굉장히 싫어한다.  근거 없이 눈물을 강요하는(신과 함께 같은) 영화는 오히려 화가 나는 것 같다.  가족끼리 '신과 함께' 보러 갔었는데, 내 앞뒤 양옆 모두 '그' 장면에서 울고 있을 때, 나 혼자 화나있었다. 그때 주변에서 들려오던 훌쩍임이 아직도 짜증 난다.

  MBTI를 좋아하는 이유도 인간관계에서 누군가를 이해할 때 그 분석의 근거자료로 쓰기 때문이다.  과학적이라며 맹신하는 편은 아니지만, 괜찮은 통계 자료 정도로는 생각하고 있다.







최근 이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얼마 전 의도치 않게 '데이비드 자민' 전시회에 가게 되었다. 전시회는 정말 오랜만에 가는 것이었다.  작품을 보면서 꽤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창작 관련하여), 무엇보다 전시회의  마지막쯤 작가의 말을 보고 괜히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하나의 큰 여정일 뿐 정밀한 과학이 아니라는 말이, 내가 이해하는 방향이 아니더라도 이 말 자체가 새삼 생각을 다시 하게 만들었다.

  정밀한 과학은 아니다. 

아마 내가 쓰는 곡 들도 그럴 것이다. 

순수 음악을 배울 때와는 어느 정도 다르게 받아들이게 되는 말이었다.  


아름다운 태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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