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민덕희> 리뷰
덕희(라미란)는 운영하던 세탁소에 화재가 생겨 대출을 알아보다 보이스피싱을 당한다. 경찰에 신고해 보지만 경찰은 적극적인 수사에 나서지 않는다. 대출상품을 소개하는 척 덕희에게 여러 차례 보이스피싱을 시도한 재민(공명). 그러나 그도 보이스피싱 조직에 붙잡혀 강제로 사기 전화를 건 것이었다. 재민은 지옥 같은 생활을 벗어나고자 한다. 자신이 속한 보이스피싱 집단을 경찰에 제보하고자 재민은 덕희에게 다시 전화를 건다. 조직의 위치와 총책의 정보를 알아낸 덕희는 이들을 잡기 위해 직접 나선다.
오래전 일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던 어느 날에 한 할머니가 매장에 들어왔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의 캐시를 충전할 수 있는 기프트카드를 들고 카운터에 왔다. “이거 50만원어치 달라”고 할머니는 말했다. “손자가 꼭 필요하다고, 편의점에서 사서 사진 찍어 보내달라고 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혹시 몰라 경찰에 신고했다. 할머니는 보이스피싱 피해자였다. 이미 500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을 같은 방식으로 잃은 뒤였다. “돈은 돌려받기 어렵다”고 말하던 경찰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시민덕희>는 실화를 모티브로 제작한 영화다. 2016년 경기도 화성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던 김성자 씨가 보이스피싱 조직과 총책 검거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사건이다. 영화의 초반 진행은 만족스럽다. 덕희의 사기 사건을 담백하게 설명한 것이 좋았다. 덕희와 재민이 각각 다른 상황의 피해자가 되어 이들이 공조한다는 전개도 좋았다. 사족 없이 담백하게 서스펜스를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 작품을 기대하게 했다.
그러나 영화는 실화가 아닌, 창작한 각본에서 문제를 드러낸다. 영화의 중반부, 덕희가 보이스피싱 조직을 잡기 위해 칭다오로 떠나는 지점부터 작품은 급격히 어수선해진다. 사건의 실제 피해자인 김성자 씨는 칭다오를 간 적이 없다. 사실상 초반 이후 대부분의 각본이 실화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셈이다. 각본은 실화라는 뼈대를 잃고 흔들린다. 철 지난 코미디가 난무하고, 어설픈 전개가 연속된다. 영화 초반에 보여준 완성도에 비하면, 중반부터는 다른 감독이 연출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엔딩은 거론할 필요도 없다.
라미란의 연기는 뛰어났다. 여러 작품을 단독으로 이끌어본 노하우 덕분일까. 폭넓은 감정과 배우의 탄탄한 에너지로 작품을 단독으로 견인한다. 새삼 라미란이 꾸준히 주연으로 캐스팅되는 이유를 납득했다. 공명은 역할에 충실하며 좋은 연기를 보였지만, 배우의 카리스마는 다소 아쉬웠다. 염혜란의 조연은 노련했다. 두드러진 모습은 없었지만 아쉬움도 없었다. 문제는 장윤주와 안은진이다. 장윤주의 과장된 연기를 보면 눈을 감아버리고 싶었고, 안은진의 어설픈 억양을 들으면 귀를 막아버리고 싶었다. 물론 배우들의 문제겠냐마는, 두 사람이 나오는 매 순간이 괴로웠다. 이무생과 박병은은 다소 평면적인 캐릭터를 맡았지만, 뛰어난 연기로 배역을 훌륭히 포장했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좋은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통쾌한 추적극’으로 연출한 제작진의 판단이 아쉽다. 김성자 씨는 아직도 피해 금액을 받지 못했다. 김성자 씨의 결정적인 제보로 조직을 검거했음에도 경찰은 여전히 김성자 씨를 제보자가 아닌 피해자로 명명한다. 영화가 김성자 씨의 실제 사건을 ‘흥미로운 소재’ 정도로만 차용해 ‘통쾌한 추적극’으로 연출한 것이 아쉽다. 사건은 널리 알려지길 바라나, 영화를 응원하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