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가일> 리뷰
스파이 소설 <아가일>은 현실적인 스파이 세계관을 그려내며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아가일>을 집필하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엘리(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시리즈의 마지막을 앞둔 상태. 그러던 중 우연히 현실 스파이 에이든(샘 록웰)을 만나고, 에이든은 의문의 적들로부터 엘리를 구한다. 엘리가 집필한 소설 <아가일> 속 스파이 세계관과 사건이 현실이 되었고, 그로 인해 엘리가 스파이들의 표적이 된 것. <아가일>의 다음 챕터를 쓰고, 소설 속 단서를 통해 전설적인 요원 ‘아가일’을 찾아내고자 엘리와 에이든은 동행한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로 전세계에 이름을 각인시킨 매튜 본 감독의 신작. 영화는 전통적인 에스피오나지 장르를 따르면서도, 그 어떤 작품보다 열심히 클리셰를 비튼다. 개인적으로 매튜 본의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관심이 쏠린다. 10년 가까이 지났지만,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보여준 ‘머리 폭죽’의 감동을 잊지 못한 탓이다. 그 자극적인 ‘병맛’을 생각하면 여전히 혀가 얼얼하다.
<아가일>이 보여준 병맛도 만족스럽다. 다만 톡톡 튀는 병맛은 영화의 후반에나 가서야 맛볼 수 있다. 영화는 ‘소설이 현실이 된다’는 소재로 이야기를 쌓아간다. 한편으론 식상하다고 말할 수 있는 소재지만, 영화의 중반을 넘어가면 그 어떤 예상도 비틀어버린다. 마치 ‘무슨 상상을 하든 그렇게는 안 할 거야’라는 감독의 의지가 보일 정도다. 물론 이를 위해 개연성과 목적성은 철저하게 희생된다.
개연성은 ‘고도의 최면’이라는 헐거운 설정에 의존한다. 이 설정이 이야기 전체를 좌지우지하는데, 그 억지스러움으로 몰입이 떨어지기도 한다. 영화 속 특수한 장치로 죽은 사람도 살리던 ‘킹스맨’ 시리즈를 떠올리면 쉽다. 시도 때도 없이 오락가락하는 주인공을 보다 보면 어느 집단에 이입해야 하는지도 헷갈린다.
재밌다고 느낀 건 주연 배우 조합이다. <미션임파서블: 폴아웃>에서 이중 스파이 역으로 분한 헨리 카빌을 인상 깊게 봤던 터라, 헨리 카빌과 존 시나 조합의 스파이 액션을 기대했다. 이들을 카메오로만 등장시킨 것이 고도의 마케팅인지, 관객을 향한 감독의 놀림 중 하나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와 샘 록웰의 매력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재밌다. 특히 영화를 보는 내내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의 연기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될대로 돼라’는 수준의 이야기 설정이 난무함에도 영화가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는 힘도 그의 연기력에서 나온다.
매튜 본 감독이 마음먹고 내놓은 이 병맛 영화는 보는 내내 헛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헛웃음도 웃음이고, 병맛도 맛이다. ‘머리 폭죽’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 후반부 액션 시퀀스 만으로도 이 영화는 추천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