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괜찮다는 거야?
최근 작성한 44문답 글에서 ‘싫어하는 말’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괜찮아’ 라는 말을 적으려다가, 아무래도 좋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더 많아서 적지 않았다.
‘괜찮아’ 라는 말을 싫어한다. 정확히는 ‘괜찮아~’ 정도의 뉘앙스를 갖는 말을 싫어한다.
‘괜찮다’는 일단 단어 자체가 부정적인 뜻을 갖고 있진 않다. 우리는 보통 (자신을 포함한) 특정 대상에 대한 상태나 평가를 얘기할 때 ‘괜찮다’는 말을 쓴다.
내가 싫어하는 건 ‘무방하다’와 같은 의미로 쓰일 때이다. 그것도 본인 기준에 의한.
본인 기준의 잣대를 갖고 본인에게만 하는 말이면 상황에 따라 조금 한심해 보일 수는 있어도 크게 문제 삼진 않는다. 다만, 그 대상이 상대방이 될 때는 이만한 민폐가 없다.
예를 들어, ‘전자담배는 담배만큼 몸에 나쁘지 않으니 피워도 상관없다’라고 한다면 딱히 상관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담배를 피운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는다. 본인의 기준을 갖고 본인이 한 선택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타인과 함께 있는 공간에서 피우는 건 전혀 다른 얘기다. 난 도저히 그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담배보다 덜 해로우니 함께 있는 공간에서 그냥 내뱉는다? 혹여 그 연기가 전혀 무해하다 하더라도 말이 안 되는 행동이다. 방귀 냄새 맡으면 사람이 죽기 때문에 우리가 조심하는 게 아니다. 숯불 구이 냄새를 맡으면 사람이 죽기 때문에 아파트 내에서 하지 않는 게 아니란 말이다.
술 마시는 거 전혀 상관없다. 술 당연히 안 좋지만, 너도나도 다 마신다. 근데 “이 정도 마시는 건 괜찮아~”라며 타인에게 강요하는 건 다른 얘기다. ‘이 정도’의 기준은 어디서 나온 것이며, 괜찮으면 자기만 괜찮을 것이지 왜 상대방도 괜찮기를 강요하는 건가?
본인 기준의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아 상당히 이기적으로 보인다. 왜 본인의 ‘괜찮다’는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일까.
아마도 나는 이런 부분에 조금은 예민한 편인 것 같다. 내 것, 내 공간 등을 소중히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왜 내 방에 마음대로 들어오지? 왜 내 물건을 함부로 쓰지? 등등.
별일 아닌 것(거의 대부분)에 대해서는 딱 그만큼의 반응을 한다. 왜 내 물컵에 있는 물을 마음대로 마시지? 근데 그럴 수 있지. 등등.
그러나 이것 또한 내 기준이다. 별일이냐 아니냐의 기준은 나한테 있는 것이다.
공존할 것이라면 상대의 입장에 대해 알려는 노력을 기울이시길.
인간적으로 피해는 주지 말자.
근데 인간은 생존과 동시에 만물에 대한 가해 행위를 한다.
어찌 보면 가해 행위는 가장 인간적인 것이 아닐까?
정정한다. 비인간적이게 피해는 주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