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되지 않은 잔혹함
최근에 초등학교를 같이 나온 친구와 초등학생 때 얘기를 하게 됐다. 나는 기억력이 정말 안 좋은 편이라 지금도 연락하는 친구 외에는 누구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았다. 근데 친구가 “J는 기억하냐” 라고 말하자마자 그때 당시의 생김새와 표정까지 기억이 났다. J는 초등학생 때 내 따귀를 때렸던 애였다.
최근 학폭이라 불리며 수면에 오른 학교폭력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면서도, 무거운 주제이다 보니 막상 글로 쓰려고 마음먹었다가 접었었다. 그런데 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는 친구와 학폭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의 대화로 조금 더 정리된 생각을 글로 써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내 생각이다. 감정을 배제하고 주제에 접근하려다 보니 피해자를 충분히 배려하지 못한 말이 나올 수도 있다.
학교 폭력이 고통스러운 이유
1. ‘나’라는 인간의 존엄이 무시당하는 경험
2. 벗어날 수 없음
3. 도움받을 수 없음
1. 한 마디로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한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대우조차 받지 못하는 경험은 피해자로 하여금 '인간이라는 근본적인 믿음'에 균열이 간다. 이 부분은 성폭력 피해자가 겪는 고통과 결이 같은 것 같다. 인격 형성에 중요한 시기인 청소년기에 인간의 존엄이 무시당하는 경험은 회복이 어렵다.
2. 가해자와의 관계에서 피해자는 최소 1년, 최대 3년 또는 그 이상을 거의 매일 함께 해야 하는데, 이 상황을 자력으로 벗어날 수 없다. 이 부분은 군대의 경험과 비유가 가능한데, 흔히 군대가 힘들다고 하는 이유는 강도 높은 훈련들 때문 만이 아니라, 자유가 박탈된 채로 2년간 강제로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3. 큰 용기를 내어 선생님과 부모님께 도움을 청했다고 치자. 선생님 입장에서는 둘 다 학생이기 때문에 피해 학생에 대한 보호뿐 아니라 가해 학생에 대한 교화도 병행해야 한다. 나는 이것이 어느 쪽이든 효과적이기 어렵다고 보는 편이다.
부모님 입장에서 아이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했다는 전제하에, 선택지는 (단순하게) 지역 내 전학 또는 지역 외 전학이 있다. 지역 내 전학은 가해자의 정도에 따라서는 벗어날 수 없을 가능성이 있고, 가정의 상황에 따라 지역 외 전학은 선택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친구의 도움은 받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학교 폭력이 없어질 수 있을까?
나는 웬만해선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 권력 구조
2. 그것의 자연스러움
1. 평등과 평화는 굉장히 이상적인 개념이 아닐까? 나는 인간의 본능은 평등과 평화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어느 정도 모여 집단을 형성하면 자연스레 어떠한 형태로든 권력구조가 생기는 것 같다. 사회적으로 이미 권력 구조가 약속된 집단이 아니더라도 힘, 재력, 외모, 언변 등 여러 요소를 중심으로 자연스레 권력 구조가 생긴다. 학교도 그렇다. 학생들은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권력 구조를 인식하고 본인의 위치를 확인한다.
2. 이미 너무나 공공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먼 과거부터 이어져오던 상황이고, 매체를 접하기 쉬워진 현시대의 학생들은 이미 입학 전부터 학교 폭력에 대해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 둘 다 아닌 학생들은 본인 주변에 피해자가 발생하더라도 그것이 이상하다 느끼지 않을 수도 있고, 본인이 피해자가 아니게 된 것에 다행으로 여길 수도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성악설을 믿는 편이다. 인간은 살아가며 선을 배우고, 악을 절제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린아이는 개미를 밟아 죽이는 것에 죄의식이 없지만, 크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고 그로 인해 행동을 조심한다.
나는 ‘미성년자’가 스스로를 책임질 수 없는 나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없다는 말은 보호(또는 관리)가 필요하다는 말이고, 보호는 필연적으로 자유를 억제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교권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폭력은 반대하지만 어느 정도의 체벌은 필요하다고도 생각한다.
이와 반대의 입장으로, 학생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도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체벌을 없애고, 여러 자유를 억제하는 규율을 없애며 학생의 의사 표현에 힘을 더하는 것이 오히려 더 정당해 보이기도 하다.
단, 나는 자유와 책임은 비례해야 한다고 본다. 미성년자라는 이름으로 자유가 제한되는 만큼 책임의 무게도 가벼웠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당연히 스스로 감수해야 할 책임도 커야 한다. 최근 학생 인권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규제와 규율이 약해지고 있는 것에 반해, 여전히 전과 같이 얕은 책임만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선생님을 하고 있는 친구와의 대화에서 의견이 엇갈린 부분이다. 나는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강해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규제가 강화되는 쪽의 의견을 갖고 있다. 친구는 선생님이기 때문에 '가해자도 학생' 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피해자에 대한 보호뿐 아니라 가해자에 대한 교화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공통된 의견도 있다. 폭력을 통한 체벌이 비윤리 적이라는 것과 학생 인권이 보호받는 것이다.
번외
연예인 학폭 논란에 대한 생각
개인적인 생각으로, 연예인 학폭 논란이 이 정도로 이슈가 있었던 이유로는
1. 연예인이 젊은 세대와 밀접
2. 학교 폭력이 젊은 세대(특히 현제 학생)와 밀접
사실 나는 좀 어중간한 입장(?)에서 바라보는 편이다. 일단, 나는 기본적으로 '불만이 있으면 소비하지 않으면 된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편이다. 진짜 최근 조선구마사 역사왜곡처럼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아니라면, 결국은 소비하지 않는 게 가장 큰 압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 사고가 있다고 해서 특정 인물이나 대상에게 별점 테러를 한다든지, 악플을 단다든지 하는 행위를 굉장히 부정적으로 본다.
본인이 무슨 자격으로 타인을 장악한 단 말인가. 본인이 정의라는 명분으로 타인을 징악하는 자들은 그 누구보다 악에 가깝다.
이러한 이유로 사실 나는 학폭 이슈(로 인한 네티즌의 행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이다. 과거 학교 폭력 했던 이력이 명확한 연예인에 대한 개인이 행할 수 있는 처벌은 소비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지금 인기 프로들 중에 출연하고 있는 연예인 중에 명백한 죄를 지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은 소비하면서 학폭 가해 이력이 있는 연예인만 질타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난 다 별로)
그 외에도 '연예인에게 범죄 이력 외의 도덕적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또 적용한다면 그 기준은 어느정도인지' 에 대한 생각도 해봤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이 주제에 대한 고찰의 목적은 결국 '현상에 대한 분석' 이다. 이를 통해 바라는 것은 오로지 하나다.
같은 일이 다신 반복되지 않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