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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일웅 Apr 21. 2023

적색의 횡단보도와 평균적 인간

신호는 눈치 보지말고 무조건 지키기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릴 때

맞은편에 있던 사람이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듯

한 발짝 내디디면 자기도 모르게 따라 건너려다가

신호등이 적색임을 확인하고는 움찔하며 무안했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어릴 적 옆에 있던 친구를 장난스레 속이기 위해

해보았던 행동이기도하다.


어느 횡단보도에서 그와 관련된 재미난 상황을 목격했다.

그 횡단보도에는 열두세 명 정도의 사람들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떤 학생이 다른 생각에 몰두하고 있었는지

신호등이 적색인데 무심코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그 학생은 횡단보도를 1/3쯤 건너가다

신호등이 적색임을 깨닫고 움찔하며

일시적으로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걷더니,

다시 돌아오기에는 무안했던지

그냥 당당하게 건너가는 것을 선택한 듯 그대로 건너갔다.

그때 그 학생이 건너는 것을 맞은편에서 본 사람이

그 학생이 건너기 시작하자 무심코 따라 건넜고,

신호를 기다리던 사람들 중 다수가 따라 건너기 시작했다.


그 학생이 신호를 보지 못한 실수가

다수의 사람들이 신호규범을 어기고 횡단보도를 건너게 했다.

신호등은 건너지 마시오.라는 적색이었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건너기 시작하자. 남아 있던 소수의 사람들도

하나 둘 '적색의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상황이 그쯤 되니, '적색의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 되는 듯한 상황이었다.

'적색의 횡단보도'를 건너는 일은 옳지 않은 행동.이지만

다수가 행동하자. 그것이 옳은 행동인 양 여겨지는 듯했다.


다수의 행동이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이 되는 듯.

사람들은 일제히 '적색의 횡단보도'를 건넜고, 매우 당당했다.

그때까지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던 나는

'적색의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는 듯한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다.

옳은 것을 지키는 사람이 그 '적색의 횡단보도' 앞에서는

공공의 적이 되는 이상한 상황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했다.


나는 왜 그런 심리적 압박감을 받아야 했을까?

그리고 사람들은 왜 다수의 행동을 맹목적으로 따라 했을까?


심리학의 과정이론 중에 '인지부조화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두 개의 인지요소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부조화라는 긴장상태를 일으키며 마음을 불편하게 하여

그 상태로부터 조화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동기를 활성화한다고 보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나의 상황을 적용해 보면,

신호등이 적색일 때 횡단보도를 건너서는 안된다.

라는 사회규범적 인지요소

나를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이, 적색이지만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라는 다수의 행동사실에 관한 인지요소 등

두 가지 인지요소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서로 충돌하여

그 상황에서의 불편한 마음.

즉, 다수의 행동에 동참하지 않는 자.라는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이규태 선생님의 '한국인의 의식구조' 분석에 관한 내용으로도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


예부터 농촌생활을 바탕으로

촌락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던 한국인은

그 속에 같이 사는 사람끼리 서로 도우며 살아왔다.

그래서 그 공동체의 삶에 조화롭게 섞이려면

그 공동체가 지향하는 평균적 인간이 되어야 했다.

즉, 유별나게 더 잘 살지도 유별나게 더 못 살지도 않는

평균을 유지해야 했고,

유별나게 이치를 따지기 보다 공동체의 다수가 지향하는

가치판단에 따르는 것이

평균적 인간으로서 적합했다고 한다.


하여,

'적색의 횡단보도'이지만 차도 안 오는데 건넙시다.라는

암묵적 동의가 내포된 '다수의 행동'에 동참하지 않은 나는

그들의 평균으로부터 벗어난 비평균 인간이 되기 때문에

평균을 형성한 다수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다는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게  것이다.


다수는 옳지 못한 행동을 하고, 나는 옳은 행동을 했지만

옳은 행동을 한 내가 심리적 압박감이라는

처벌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시 '인지부조화 이론'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인간은 어릴 적부터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옳다라는

교육을 받으며 자라나지만,

완벽한 의사결정을 통해 행동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인지부조화를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음주는 건강에 매우 해롭다.라는

건강에 관한 인지요소와

원만한 사회생활을 하려면 술자리를 피하기 어렵다.라는

인간관계 측면의 인지요소는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이때 우리는 어느 한쪽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해

그 행동을 정당화하게 되는데

대개 건강에는 해롭지만,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한 인간관계 유지를 위해

해로운 것을 알면서도 술을 마신다.(사실은 그냥 좋아서 마심)

해로운데 마신다.라는 것은

우리가 어릴 적부터 교육받아온

합리적 행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해로운 것은 하지 않는 게 이치에 맞다.

하지만, 원만한 인간관계 유지라는 명분으로

합리적 행동이라고 정당화할 수는 있다.


인지부조화 이론은 이런 인간의 비합리적 행동을

당연한 것으로 봄으로써 인간을 합리적인 존재가 아닌

'합리적이고자 하는 존재'로 가정한다.

건강에 해롭기에 자꾸 마시면 안 되지만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필요하다. 그래서 마셨다.

라고 술을 마신 행동을 '정당화' 하는 태도를 가짐으로써

인지부조화를 극복한다고 한다.


그래서, '적색의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은 제각각

'합리적이고자 하는 존재'로서 행동을 했던 것이다.

적색의 신호등을 건너는 것은 옳지 않지만 차도 오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건너는데 굳이 신호가 바뀔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옳고 그름을 떠나, 합리적이지는 않다.

건너가도 괜찮은 상황인데 다른 사람도 모두 건너고 있으니

굳이 신호를 기다릴 것 없이

시간을 아껴 건너는 것이 합리적이다.


신호를 지킬 것인가. 빨리 횡단보도를 건널 것인가. 하는

두 가지 대안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했고,

차도 오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건너고 있으니

나도 건너가도 괜찮다.라고 정당화 하면서

'적색의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을 선택하고 행동한 것이다.




다수의 행동을 맹목적으로 따라 하는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서도 조금 생각해봤다.


우리는 보통 다른 사람을 똑같이 따라 해야 안심한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쿠팡에서 물건을 살 때도 상품평이 좋고, 구매수가 많으면

안심하고 그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다수의 사람들이 하는 대로 행동하면 실수할 확률이 낮고

다수의 행동이 옳은 것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하는 행동.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사회적 증거라고 하며, 사회적 증거에 따라 행동하려는 경향을

'사회적 증거의 법칙'이라 한다.


가장 쉬운 예로, 국밥집이 쭈욱 늘어선 국밥골목에 가보면

모두 자기네가 원조라는 간판을 붙여 놓고 있다.

그 간판만으로는 어느 집이 맛있을까.라는 판단을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손님이 제일 많은 식당. 즉, 다수가 선택한 식당은

저 집이 제일 맛있는 집이구나.라는 판단을 내리게 한다.

다수의 행동에 따르면 안심할 수 있고,

다수의 행동이 옳은 것이라 인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색의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을

사회적 증거의 법칙에 따라 행동한 것으로 본다면,

다수가 하는 행동이니 안심하고 따라 건넌 것이며

신호규범 보다 다수의 행동이 옳다고 인정된 것이다.

또한 다수의 행동에 따르는 것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명분이 된다.


인간은 자신의 비합리적인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특성이 있고

다수의 행동을 옳은 것으로 여겨 그대로 따라 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옳지 않은 것이 옳은 것으로 인정되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수의 의견 또는 행동을

맹목적으로 타율적으로 따르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올바른 가치판단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주체적이고 합리적인 행동을 하기 위해 정신 바짝 차리고

인간의 심리적 특성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부정적인 들로부터

생각없이 당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교통 신호는 남들 눈치 보지 말고 무조건 지켜야 한다.

나는 심리적 압박감을 버티고 녹색의 횡단보도를 건넜다.(칭찬 이모티콘)






참고문헌.

'고교생이 알아야 할 한국인의 의식구조' (이규태 저)

'설득의 심리학' (로버트 치알디니 저)

'광고 심리학' (김완석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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