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마 그거 알고 보면 아 진짜 개안타"
(마지막에 살짝 반전 있음)
어느 곱창집 옆 테이블에서 들렸던 얘기다.
모르고 보면 괜찮지 않은 사람 이었을까?
어제까지 모르고 봐서 비호감인 사람이었는데
알고 보니 괜찮은 사람이 생겼다.
우리 동 고층에 사는 남자는
담배냄새를 몸에 두르고 다니거나
흘리고 다닌다.
피운 직후의 냄새가 아니라
옷이며 머리며 손에 꾸준하게 열심히
찌든 냄새라 역하고,
그걸 없애려고 뿌린 것과 연합되어
고약함이 상급이다.
(흡연자분들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이 사람은 옷을 잘 갈아입지 않아서..)
그가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불쾌한 냄새가 나는 게 싫고
냄새를 남기고, 지만 내린 다음 내가 탔을 땐
나의 냄새로 오해받을까 걱정되는 것도 싫다.
그래서 그는 내게 비호감이었다.
어제 아침 출근길.
엘리베이터가 고층에서 내려온다.
그의 냄새가 예상되어
나도 모르게 하아.. 하며 이미 불쾌하다.
그와 함께 지하로 내려간다.
최대한 입으로 쪼잔하게 천천히 숨을 쉬었다.
지하 1층에 도착하면 쪼잔하게 쉬어 가빠진 숨을
대담하게 퐈아 하면서 숨통을 트고 싶었는데
하필이면 주차한 자리가 근처인지
담배냄새가 자꾸 날 따라온다.
한동안 동선이 겹친다.
그의 차는 내차 뒤에 뒤에 있었다.
차에도 담배 냄새가 찌들어있겠지 하며
속으로 쯧쯧 거리고 있는데
그가 내 뒤통수에 대고 불의의 일격을 날렸다.
"수고하십쇼~!"
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고개도 숙이고 있다.
가볍게 목례하며 네..라고 대답하고 나니.
담배냄새는 달아나고 찝찝함이 달라붙었다.
지금껏 그를 밉게 보며 속으로 험담까지 했는데...찝.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네니까
미안한 마음까지 들며...찝.
짧은 인사 한마디에
담배냄새와 불쾌함이 싹 정화되는 건 뭔 일인지..
그리고 생각했다.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인가?
그런데 정말 알고 보니,
동생에겐 엘리베이터에서
캔커피를 줬던 사람이었고
엄마께는 분리수거장에서
쓰레기 버리는 걸 도와준 사람이었다.
(높이 들어 올리는 걸 도와주었다고 한다)
또 알고 보니 나 말고 우리 가족은 모두
그와 서로 인사하는 사이였다.
아마 그래서 내게 먼저 인사했었나 보다.
그랬거나 저랬거나 그를 알고 보니,
그는 내게 호감으로 인상이 상승됐다.
담배냄새에 대한 생각은 집어치워 버렸고,
그래도 집 안에서 안 피우고
고층인데 꼬박꼬박 내려와서 피우니 기본이 됐네.
라는 생각을 어느새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얘기가 많이 달라졌다.
신영복 선생님은 층간소음에 대해
이런 해법을 제시했다고 한다.
위층에서 아이가 쿵쿵거리면
과자를 사들고 가 아이의 이름을 묻거나 하며
인사를 하고 오라는 것. 그러면 아는 아이가 되고,
아는 아이가 쿵쿵거리면 좀 낫지 않겠냐는 거다.
대부분은 위층에 가서 인사를 나누고
사정을 알고 보면
쿵쿵 거림에 관대해질 것이다.
짜증 나던 소리도 아는 사람이 내면
소음이 아니 사람 사는 소리로 여겨질 것 같다.
술 한 번 사는 법이 없어 짠돌이로 유명한 김 과장은
알고 보니 없는 형편에도
아이 두 명을 입양해서 키우고 있었다.
내 부사수를 가리키며,
임마 이거 일 안 하고 어디갔노?
라며 씩씩 거렸는데
알고 보니 나 대신 내가 미처 못했던
더 힘든 일을 하고 있었다.
접촉사고 난 순간
아씨.. 운전 개떡같이 하네. 하며 내리는데
알고 보니 상대차 운전자가 친구의 친구다.
개떡 취급하던 상대방과 별안간 반갑게 인사한다.
급기야 접촉사고를 두고는 인연이니 어쩌니 하며
담에 '그 친구'랑 같이 술 한 잔 하자며 헤어진다.
접촉 사고가 아니라 그냥 접촉이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우리는 모든 등장인물의 상황을 볼 수 있다.
모든 상황을 알고 보는 셈이다. 그래서
누군가 억울한 상황으로 오해받을 땐
모든 상황을 알고 보니까 안타까워하고,
어쩔 수 없이 나쁜 일을 할 땐 이해하게 된다.
알고 보면 얘기가 정말 많이 달라진다.
"금마 그거 알고 보면 아 진짜 개안타"
곱창집에서 들었던 이 말은 사실
뒷말을 생략한 거였다. 원문은 이렇다.
"금마 그거 알고 보면 아 진짜 개안타,
술 취하면 사람 좀 때리고 그래서 그렇지.."
뒷말까지 알고 보면 금마는 괜찮은 사람이 아니다.
뉴스 인터뷰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평소에 참 성실한 청년이었는데
이렇게 끔찍한 일을 저지를 줄은 몰랐어요."
평소에 괜찮은 사람이라도
알고보면 끔찍할지도 모른다.
어찌 됐던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
금마 그거는 알고 보면 아 진짜 개떡 같은 놈이다.
알고 보면...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알고 보면 다 별것 아니다' 라는 말이다.
자주 필요한 말이기도 하다.
뭐든 알고 보면, 다 별 것 아닙니다.
죽어도 못할 것 같은 일인데
'알고 보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 일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