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에는 1초에 4천억 비트의 정보가 들어오는데 그걸 의식에서 모두 처리하려면 823년이 걸린다고 한다. 초당 4000억 비트의 정보 쓰나미를 막기 위해 뇌는 망상활성계라는 정보 필터링 시스템을 운영한다. 망상활성계는 딱 필요하거나 중요한 정보만 선택해 의식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몽땅 무의식으로 보내는 일을 한다.
책을 읽을 때도 이 망상활성계가 일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가뜩이나 정보가 넘치게 흘러 들어오는데 책까지 읽는다는 건 필터링해야 할 정보의 추가이므로 망상활성계 입장에서는 업무량 증가다. 책이라고 해서 모든 정보를 의식으로 보낼 수도 없다. 책의 정보도 필터링해서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려야 한다.
평소보다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인데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읽으면 정보를 취사선택해야 하는 망상활성계는 상당한 곤혹을 느낄 것이다. 중요한 정보는 의식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무의식으로 보내야 하는데 그 기준이 없으니 이게 중요한가? 저게 중요한가? 어쩌지 저쩌지 하는 우왕좌왕스런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 즉, 뭣이 중하고 뭣 때문에 중한지 목적이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책을 읽어도 집중하기 힘들고 읽어도 기억에 남는 게 없다. 망상활성계가 어떤 정보를 의식으로 보내야 할지 판단할 수 없으니 어떤 정보도 의식으로 보내지 못하기 때문이라 짐작할 수 있다.
망상활성계가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책 읽기를 하려면 읽는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진 상태에서 관심 있는 분야나 나에게 중요한 내용 또는 지금 딱 필요한 내용의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을 읽을 때 2분마다 딴생각을 한다던 후배가 '장사의 신'이란 책은 딴생각할 틈 없이 푹 빠져서 읽을 수 있었던 건 창업이란 목적이 있고 그중에 커피 창업에 관심이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짝사랑하는 이가 있는 사람이 상대방도 나를 마음에 들어 할까? 궁금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성의 마음을 확인하는 486가지 방법'이란 책을 읽는다면 망상활성계가 어떻게 반응할지 그리고 얼마나 집중해서 읽게 될지 짐작해 보면 목적을 가지는 것의 중요성이 짐작될 것 같다.
망상활성계는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할 때 목적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 목적에 부합하는 정보들은 귀신같이 끌어 모은다.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에도 망상활성계는 목적에 부합하는 정보는 순식간에 포착해 의식으로 보내준다.
예쁜 머리핀을 사고 싶은 목적을 가진 당신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 중이라고 하자. 뭔가 결정적인 사건이 해결될까 말까 하는 순간이다. 함께 드라마를 보는 가족들 모두 완전히 몰입해 주인공의 결정적인 대사와 행동을 기다리고 있다.
그 와중에 당신은 잠시 스쳐 지나간 여주인공의 옆통수에 달린 머리핀이 너무 예쁘다는 걸 포착한다. 모양이 예쁘고, 색깔이 고급지고, 크기도 적당하는 걸 찰나의 순간에도 자세하게 보았다. 다른 가족들은 아무도 보지 못한 여주인공의 머리핀을 오직 당신만 볼 수 있었다.
0.1초의 짧은 순간. 그야말로 눈 깜빡할 새 지나쳐간 머리핀을 당신은 매우 자세하게 볼 수 있었다. 드라마가 클라이맥스에 이르든 말든 당신의 망상활성계는 예쁜 머리핀을 사고 싶다는 당신의 목적에 부합하는 정보를 놓치지 않고 포착해 주었기 때문이다.
"일단 목표를 정하면 망상활성계가 작동하여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는 정보와 기회들을
마치 자석처럼 순식간에 끌어 모은다."
-거인의 생각법, 토니 라빈스-
"망상활성계에 특정 아이디어나 목표를 설정해 놓으면
망상활성계는 24시간 쉬지 않고 작동해서
내가 찾으라고 명령한 것을 정확히 찾아낸다.
주변에서 밀려드는 수많은 데이터 중에
설정 내용에 유의미한 것만 선별해 나의 관심 속으로 밀어 넣고
나머지 무고한 정보는 미련 없이 잘라 버린다."
-결국 해내는 사람들의 원칙 중-
독서를 할 때 이런 망상활성계의 능력을 써먹으려면 읽는 목적을 명확히 해야 한다. 목적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해준다. 무엇 때문에 그 행동을 하는지 분명히 해야 행동 또한 분명해진다. 마차가지로, 무엇 때문에 그 책을 읽는지 분명히 해야 분명하게 읽을 수 있다. 목적에 부합하는 내용만 기억하더라도 목적을 달성한 것이며, 훌륭하게 독서를 한 것이다.
읽었으면 다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은 독서에 불리하다.
뇌는 애초에 모든 내용을 기억하려는 의지가 없다. 망상활성계를 운영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모든 정보를 기억하지 않기 위해 망상활성계가 존재한다. 그러니 한 권을 읽고도 기억나는 게 반에 반에 반도 안되는 건 크게 잘못된 게 아니다.
읽은 내용이 기억에 남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무의식에 모두 저장되어 있다가 언젠가 필요한 순간이 되면 연상의 힘에 의해 끌려 나와 지적자산으로 활용된다.
또한 뇌는 반복하면 중요하게 여기고 중요한 건 장기기억으로 간직한다. 내게 필요한 내용인데 집중이 잘 되지 않고, 읽어도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으면 가볍게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