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주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겁니다"라고 말하면?
관점가변과 망상활성계
관점은 생각하는 방향이다.
공원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을 봤을 때
사색적 관점으로 보면 피어오르는 연기 속 생각에 잠긴 모습이 낭만적일 수 있지만,
건강의 관점으로 보면 피어오르는 연기는 그냥 독으로 가득한 악마의 연기이고,
공중도덕적 관점으로 보면 어린아이도 있는 공중장소에서 흡연을 하는 밉상이다.
관점에 따라 흡연하는 모습에 대한 인상이 달라진다.
관점가변은 관점을 바꾸거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여 태도를 변화시키는 설득이론이다.
관점가변에 관한 내용은 이전의 글로 설명을 대신한다.
관점가변
여자가 말했다.
"고마워요, 잘해줘서"
남자가 대답한다.
"잘해주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겁니다."
영화 '사랑을 놓치다'에서의 대사다.
이 대사로 남자는 여자의 관점을 변화시킨다.
잘해주는 즉, 친절이나 매너의 관점으로 보는 여자에게
좋아하는 즉, 고백과 연모로 관점을 바꿔 잡는 남자다.
관점가변에 따라 여자의 태도는 달라질 것이다.
남자를 받아들여 연인의 감정으로 대하거나
혹은 부담스러운 감정으로 대하거나.
여자의 태도에 따라 둘의 사이도 달라진다.
더 가까워지거나, 영 멀어지거나.
상황이 바뀐 건 없지만 관점가변에 의해
둘 사이의 관계가 새로워진다.
도 하나의 사례를 보자.
어느 유머 코너에서 본 이야기다.
한 육군 훈련소 정문 앞에 입소하는 자들과
그들의 부모, 친구, 연인 등 수많은 인파가 모여 있다.
사람들이 모이니 군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팔거나
먹거리를 파는 장사치들도 어느새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훈련소 정문 앞에는
버려진 쓰레기가 하나도 없었다.
담배꽁초 하나라도 버려져 있을 만한데
믿을 수 없을 만큼 깨끗했다.
이유를 알고 보니 정문에 걸린 현수막 때문이었다.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
귀하의 자녀가 청소해야 합니다."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메시지가
양심의 관점이 아닌 자녀에 대한 걱정과 애정의 관점으로 전달되니
아무도 쓰레기를 버리지 않게 된 것이다.
관점가변은 이렇게 상황의 변화 없이도
관점만 달리 제시함으로써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관점가변과 망상활성계
관점가변만으로도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꾀할 수 있지만,
관점가변이 망상활성계에 영향을 미쳐 생각과 행동이 달라질 수도 있다.
망상활성계는 정보를 필터링하는 신경망이다.
내 생각의 방향 즉, 관점에 따라서
망상활성계가 취하고 버리는 정보가 달라진다.
외부에서 밀려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 중 필요하 것만 선택하고 나머지는 걸러 낸다.
주로 시각이나 청각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 중 내게 필요한 정보만 선별해 의식으로 보낸다.
내부의 정보는 상황이나 목적에 관련된 기억이나 경험만 불러일으킨다.
관점이 변하면 망상활성계가 외부에서 받아들이는 정보와
내부에서 기억해 내는 정보가 달라지고, 정보가 달라지면 행동과 결과가 달라진다.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침대는 과학입니다.'
라는 새로운 관점이 제시되는 순간 침대 구입을 생각하고 있던 사람의 망상활성계는
새로운 정보를 끌어들이기 시작한다.
어떤 인체 공학적, 수면공학적 과정을 거쳐 생산되었는지를 따지며 관련 정보를 모은다.
이전에는 관심 없었던 '수면 시 뇌파 상태'라든가 '심전도와 최적 수면과의 관계' 같은
과학적 정보가 구매 시 고려사항이 되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기 시작한다.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관점이 제시되기 전에는 고려하지 않았고,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던 정보들이다.
그런 정보들로 인해 침대가 가구였던 시절보다 더 엄격하고 신중하게 침대를 구입하게 된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는 관점가변에 따라
망상활성계가 의식으로 들여보내는 정보가 달라지고,
그로 인해 대상에 대한 판단기준이나 관여도 등이 달라진 것이다.
"잘해주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겁니다."라고 고백받은 여자가 거리를 다니면
이전에는 전혀 보지 못했던 연인도 아닌 그렇게 친구도 아닌 애매한 관계의 남녀가 보인다거나,
짝사랑 중인 이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 모습들이 보이게 되면 생각이 많아져
여자의 감정 변화에 영향을 미칠 확률이 생긴다.
훈련소에 아들을 보내며 그 현수막으로 보고 온 엄마가 늘 가던 식당이나 마트 등에 가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아들 또래의 청년들이 열심히 알바를 하고 있었다는 게 보이게 된다.
다들 내 아들 같아 청년들을 대하는 마음 가짐이 달라진다.
음료수라도 하나 사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실제로 건네기도 한다.
이전에 마트에 다닐 때와는 달라진 상태다.
보고 듣는 정보는 생각과 행동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
어떤 정보에 노출되느냐에 따라
생각과 행동에 변화가 생긴다는 걸 조금 더 강조하고 싶다.
이사를 자주 다녔었던 어릴 적 기억 속에 사례가 있다.
옆집에 욕 잘하는 형이랑 친하게 지냈더니
뜻도 모르는 욕을 배워 아무 데서나 썼었다.
앞집에 오락실 좋아하는 형을 따라다녔더니
저금통의 동전을 몰래 빼가며 오락실에 다녔었다.
뒷집에 공부 잘하는 형이 부모님께 존댓말을 쓰니
존댓말이 옳다고 생각하며 따라 썼었고 같이 공부도 했었다.
롤러스케이트를 좋아하는 친구를 사귀면 롤러스케이트를
자전거 좋아하는 친구를 사귀면 자전거를 타고 놀았었다.
정보의 인풋은 주로 시청각으로 이루어진다.
보고 들으며 배우고, 보고 듣고 따라 하게 된다.
보고 듣는 것에 따라 생각도 달라지며 달라진 생각에 따라
행동도 달라지고 행동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어떤 관점 즉, 생각의 방향을 어디로 가져가느냐에 따라
망상활성계가 취하는 정보가 달라지고
취하는 정보에 따라 생각과 행동 그리고 결과가 달라진다.
망상활성계가 어떤 정보를 취하게 할지는 내 생각
그리고 관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