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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일웅 Oct 03. 2024

결심한 일이 실행되기 어려운 이유

무언가 결심을 할 때는 마음먹은 대로 잘 실행할 것 같지만 막상 실행을 해야 할 때는 나중으로 미루게 된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결심을 할 때와 실행을 할 대의 상황이 영 달라서인 것 같다.
 
결심을 하는 순간에는 의욕적이고, 잘할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에너지가 넘친다. 하지만 그게 결심한 일을 실행할 때까지 고스란히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때의 생각 그대로도 아니고, 그때의 감각 그대로도 아니고, 그때의 기분 그대로도 아니고, 그때의 감정도 그대로도 아니고, 그때의 컨디션, 그때의 심박수, 그때의 호르몬 분비상태, 그때의 신경세포 활성화 상태, 그때의 주변 환경 등 많은 게 그대로가 아니다.
 
결심을 할 때와 실행할 때의 내적, 외적 상황은 아주 다르다. 그러니 결심으로 실행으로 이어지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옛사람들께서 쇠 뿔을 단 김에 빼라고 하신 게 그 때문인가 보다.
 
결심한 일을 잘 실행하기 위해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잠시 궁리해 봤다. 결심한 직후 실행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럴 거면 결심 자체를 회피하지 않을까 싶다.
 
결심의 성공적인 실행을 위해 전략적, 심리학적, 뇌과학적 콤비네이션을 생각해 봤다. 스몰스탭 전략, 자이가르닉 효과, 작업흥분 그리고 망상활성계 콤비네이션이다.
 
방청소를 해야지!라고 결심했다고 치자. 막상 청소를 해야 할 때가 되니 생각했던 것보다 치울 게 많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청소할 양과 드는 시간과 얻게 될 피로를 가늠해 보니 시작하는 데 드는 에너지 수치가 굉장히 높아진다. 그러니 아예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이미 피곤해졌다. 나중으로 미루고 싶어 진다.
 
이때 스몰스탭 전략을 써서 시작하는데 드는 에너지를 확 줄여야 한다. 청소를 하려 하지 말고, ‘청소기를 잡는다’ 정도의 목표로 임해야 한다. 그런 다음 자이가르닉 효과를 노리기 위해 청소기를 그냥 방바닥 아무 데나 내팽개쳐 놓는다.
 
자이가르닉 효과는 미완성 상태로 남겨놓으면 강렬하게 기억된다는 효과다. 청소를 하다가 만 상태처럼 남겨놓으면 기억에 남게 되어 계속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다만 청소가 생각에서 떠나지 않고 반복 기억된다. 뇌는 반복해서 생각하면 중요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어느덧 청소는 힘들고 하기 싫은 일이 아닌 미완성된 중요한 일로 전환될 것이다. 미완성된 것을 완성시키고 싶은 욕구 또한 인간이 가진 심리라고 하니 곧 청소를 하게 될 확률이 아주 높아질 것이다.
 
그렇게 해서 청소를 시작하게 되어도, 무리하지 말고 아주 작은 목표를 설정한다. 눈앞에 보이는 머리카락만 청소하고 말아야지 정도면 충분하다. 이 단계에서는 스몰스탭에 측자핵과 망상활성계의 활동을 가미해야 한다. 눈앞의 머리카락 청소를 시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시작하는데 드는 에너지 따위도 거의 들지 않고 시작이 끝일 정도로 하찮은 일이다.
 
그런데 그 하찮은 일이 뇌 속에 큰 변화를 일으킨다. 어떤 일을 시작하면 측좌핵이 흥분하여 의욕을 담당하는 세포를 활성화시켜 의욕적인 상태로 만든다. 세포의 활성화로 인해 의욕적인 상태가 된 걸 작업흥분 상태라 한다. 이 상태가 되는 방법은 일의 강도나 중요도 뭐 그런 것 없이 일단 시작하면 된다. 하찮든 어쨌든 일단 뭐든 시작만 하면 측좌핵이 스스로 흥분한다. 그러니 손가락을 까딱하는 정도라도 일단 시작만 하면 된다. 손가락을 까딱하는 정도의 시작을 하려면 하려는 일을 쪼개고 쪼개고 쪼개서 더 이상 쪼갤 수 없을 때까지 쪼갠 정도의 작은 일부터 하겠다는 목표를 정해야 한다. 스몰스탭으로 시작해 측좌핵을 흥분시켜 의욕이 충만한 작업흥분 상태가 되는걸 노리는 것이다.
 
눈앞의 머리카락만 청소기 하기를 시작해서 눈앞의 머리카락 청소를 끝냈다. 그런데 그 옆에 또 머리카락이 보인다. 작업흥분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그 옆에 머리카락도 참지 못하고 청소한다. 머리카락 옆에 머리카락 옆에 머리카락이 계속 보이게 되는데 이 때는 망상활성계가 활동하기 때문이다.
 
망상활성계는 설정한 목표에 해당되는 정보만 의식하게 하고 나머지는 정보는 무시한다. ‘머리카락을 청소해야지’라는 목표가 설정된 순간부터 머리카락의 정보만 걸러서 의식으로 보낼 것이다. 그러니 다른 건 보이지 않고 머리카락만 보이게 되며, 의욕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머리카락을 청소하게 된다.
 
머리카락을 계속 청소하다 보니 더욱더 작업흥분 상태가 되어 머리카락 외에 보이는 각종 먼지들도 청소하고 싶어 진다. 먼지들을 청소하다 보니 지저분한 것들은 다 정리하고 치우고 싶어 진다. 망상활성계는 실시간으로 내가 지금 원하는 목표인 청소를 위해서 끊임없이 청소할 정보들을 의식으로 끌어들인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온 방구석구석을 다 청소해 버린다.라는 시나리오다.


과연 이게 될까 싶지만, 이전보다 청소를 하게 될 확률은 매우 높아질 테다.
 
그동안 미루었던 청소는 시작도 하지 못하고 엉뚱한 생각을 잠시 하게 되었는데, 그래도 일단 청소기를 방바닥에 방치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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