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방울만 흘려도 목숨이 날아갈 판에 여인들이 벌거벗고 장을 본다 한들 눈에 들어왔을 리 없다. 생각과 마음을 온통 바가지 속 물에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이 신하처럼 보여도 보지 못하는 현상을 누구나 겪어 본 적이 있을거라 생각한다. 유튜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자는 절대 못 맞추는 마술'이란 제목의 영상을 보면 체험이 될 것이다.
눈만 뜨고 있으면 볼 수 있도록 대놓고 트릭을 보여주며 마술을 하지만 그 트릭을 보지 못한다. 마술 트릭을 대놓고 보여줄 때 옆에 있던 야한 여자가 야한 옷을 입고 야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야한 여자에게 주의가 온통 쏠리는 순간에 트릭을 보여주기 때문에 대놓고 보여줘도 보지 못한다.
캔을 종이에 말아넣고 그대로 있다는걸 보여준다 (이미지 출처 : 이미지에 표시 됨)
옆에 있던 여자가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한다. 이 때 대부분의 남자가 여자에게 온 정신이 팔려 남자가 캔을 테이블 아래로 흘리는 걸 보지 못한다.
눈에 보이지만 우리가 주의를 두지 않으면 무시되는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무주의 맹시'라고 한다. 생각과 마음이 집중된 것 외에 다른 건 보지 못하는 것이다.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으면 불러도 모르고 툭 쳐도 모를 때가 있으니 시각 외에 다른 감각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 '무주의 맹시'가 일어나는 게 망상활성계 때문이라 생각한다. 망상활성계는 의식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필터링하는 신경네트워크다. 망상활성계는 목적이 있는 것, 관심이 있는 것, 반복되는 것, 생존 관련 된 것 들을 중요한 정보로 인식한다. 나에게 중요한 정보는 의식으로 보내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무의식으로 보내 무시한다.
의식에서 모든 정보를 처리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쓸데없는 정보는 걸러 내고 필요한 정보만 취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중요한 정보는 잘 보이고, 나에게 중요하지 않으면 눈앞에 있어도 본 것으로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 생각과 마음을 온통 쏟아붓는 일이 있다면 그 일 말고 다른 건 안중에도 없게 하는 게 망상활성계다.
나는 망상활성계에 의한 무주의 맹시 현상을 내 생각과 마음의 아웃포커싱에 사용한다. 아웃포커싱은 초점을 맞춘 곳만 선명하게 하고 그 주변은 흐리게 하는 기법이다. 생각과 마음의 초점을 모아 한곳에 집중시키면, 다른 생각과 마음은 흐리게 할 수 있다. 그래서 불안, 긴장, 분노, 억울함, 부끄러움, 짜증, 질투심 등의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힐 때 특정한 생각이나 마음 하나를 딱 정해서 그 생각과 마음에만 초점을 맞춰 부정적인 생각과 마음을 흐려 뜨린다.
인간은 한 번에 하나의 정보만 처리할 수 있다고 하니, 동시에 여러 곳에 주의를 기울일 수 없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중에는 부정적인 생각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초점을 맞출 특정한 생각과 마음이 그리 특별한 건 아니다. 베란다에 책상을 놓으면 창 밖을 보면서 독서나 글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책상이 들어갈까? 그러면 나만의 카페가 될 수도 있겠는데? 책상 스타일은 어떤 걸로 하지? 노트북을 사용하려면 멀티탭도 하나 사야겠네? 등의 엉뚱한 상상을 한다든가, 정 상상할 게 없으면 로또 1등이 된 것처럼 상상하며 돈 쓸 궁리에 빠져들어도 될 것 같다.
도저히 떠오르는 상상이 없어도 떠올리려고 노력하는 동안 다른 건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질문과 상상을 하면서 생각과 마음을 딴 데로 몰아붙이면 너무나 당연하게 부정적인 생각과 마음은 온 데 간데 없어진다. 나의 경우는 대부분 그렇다. 단, 그냥 단순히 상상만 하면 거저 되는 건 아니고 상상에도 노력은 필요한 것 같다.
베란다에 책상을 놓는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질문과 상상을 하면 망상활성계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정보를 끌어들이기 시작하고 상상하는 이미지에 부합하는 정보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한다. 내 질문과 상상에 초점이 맞춰진 무주의 맹시가 일어나 필요 없는 건 보지도 듣지도 않고, 불필요한 생각도 하지 않게 되는 걸 노릴 수 있다.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면 하루의 모든 게 흐트러진다. 표정은 굳어 있고, 입맛도 없고, 즐거운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도 없다. 회사에서는 일 처리에 지장을 받고, 학생은 공부가 잘 안 되고, 가족에게 괜한 짜증을 낸다거나 애인을 서운하게 할 수도 있으며, 어두운 표정으로 푹 가라앉아 침울한 기운을 내뿜고 있으면 주위 사람들을 불편케 만들게 된다. 또한 쓸데없는데 신경 쓰느라고 정말 필요하고 중요한데 쓸 신경을 소모해 버리는 낭비가 발생한다.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 잡혀 있는 동안 어제까지 기쁘게 여겼던 것들은 내 의식에서 사라진다. 바로 어제만 해도 곱창에 막걸리 한 잔 마시는 게 그렇게 즐거웠고, 동료와의 가벼운 농담에도 기분이 좋았고, 퇴근길에는 그냥 그저 기분이 좋아 끼어드는 차에도 웃으며 먼저 가라 했었는데, 부정적인 감정에 빠지면 그 기쁨과 여유들이 모두 의식에서 사라져 버린다. 크고 작은 기쁠 일들을 모두 놓쳐 버리는 거다.
그래서 무주의 맹시를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은 ‘긍정에 정신 팔기’라 생각한다. 즉, 생각과 마음을 긍정에 초점 맞춘 아웃포커싱이 최고다. 일단 내가 긍정적인상태라야 뭐든 잘 되고 기분도 좋아진다. 기분이 좋아야 의욕도 생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라는 말은 그냥 뻔하고 흔한 말이 아니라 해도 해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중요한 말이다.
부정을 보지 못하는 무주의 맹시를 연습하자. 원하는 곳에 몰입할 수 있고, 원치 않는 곳에는 신경을 꺼버릴 수 있다. 연습하면 더 잘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