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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일웅 Jan 02. 2023

남다른 나만의 특별한 장점이 있나요?

크리에이티브, 에세이


#1.

조라는 회사의 자동차 광고다.

개폐 사고를 방지하는 슬라이딩 도어의 장점을

재미난 장면으로 보여준다.

앞 차와는 다른 개폐의 차별성이 

자전거와의 충돌을 피했다는 혜택을 깨닫게 해 준다.


이런 광고 전략을 USP( Unique Selling proposition)라고 한다.

한국말로 흔히들 '독특한 판매 제안'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독특하다는 것은 제품 자체가 가지는 '남다른 차별적 우위'를 말한다.

남들은 가지지 못한 나만의 그 무엇인데 그게 아주 특별한 장점이 되어

어떤 혜택을 준다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 우리나라 광고 중, 가루 세제는 빨래에 가루가 남아 묻지만 

액체 세제는 가루가 남지 않는다고 어필한 것 USP 전략이다.

가루가 아닌 액체라는 것이 남다른 무엇이며 가루가 남지 않는다는 혜택을 준다.

특수 표면 코팅으로 손에서는 녹지 않고 입에서는 녹는다는

M&M 초콜릿도 USP로 유명하다. 초콜릿이 녹아 손에 묻지 않는다는 혜택을 준다.


나도 이 USP만 있으면 남다른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남들은 없거나 하지 못하는데 나만 할 수 있고 그게 특별한 장점 즉,

누군가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그런 차별적 우위가 내게 있을까?

'슬라이딩 도어'와 같은 하나의 워딩으로 표현할 수 있는 나만의 USP가 있을까?


없다. 완전 없다. 도무지 없다.

삼세번 생각해봐도 없다.

당신도 딱히 없을 것이... 겠죠?


'슬라이딩 도어'와 같은 남다른 점이 있더라도 이미 슬라이딩 도어는 많다.

비슷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이미 세상에 많은 것이다.

그래서 요즘 세상에서 나만의 독보적인 USP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크든 작든 USP를 선점하여 포지셔닝 할 수는 있다.



#2.

나는 엄마의 내부로부터 세상으로 나올 때

머리를 부딪혀 기절을 했었다고 한다.

그때 나를 받던 의사는 내가 죽은 줄 알고 죽을 뻔했단다.

그래서 세상에 나와 울어보지도 못하고 인큐베이터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태어나자마자 일주일을 손해 봤고 원래는 천재의 두뇌였는데 머리를 부딪히며

천재성이 상실 되었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


초, 중, 고 대학교 때까지 공부를 영 못했다.

초등학교 때는 축구부를 해서 공부를 안 해 못했고,

중학교 때는 축구부도 아니면서 축구만 해서 공부를 못했다.

아마 죽어라 공부했어도 못했을 것이다. (태어날 때 머리를 다쳐서)

연합고사 커트라인을 넘지 못해 고등학교를 재수해서 들어갔고

그렇게 들어간 고등학교에서도 축구만 했다.

남들보다 잘하니까 재밌어서 제일 많이 했다. 그러니 나쁜 건 아니다.

어렵게 대학교를 들어갔는데 가장 먼저 한 일도 단대 축구부 가입이었다.

그래서 나는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었다.



#3.

머리에 충격을 받으며 충격적으로 태어나 머리도 나쁜데

공부도 안 했으니 취업할 길이 막막했다.

그럼에도 나는 대학교 4학년을 졸업하기도 전에 

우리 과에서 가장 먼저 취업을 했다.

그것도 그 당시 대구에서 단 한 명 뽑았던 카피라이터로.

게다가 광고대행사의 대기업으로 인정받는 회사에서 20년간 근무하다

독립하신 사장님께 선택되었다.


아무리 지방이라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장학금을 받았던 애들도 광고 공모전에서 수상한 애들도 다 떨어졌었는데.


그 비결은 자기소개서에 있었다.

나는 나를 '100권 전문가'로 포지셔닝했었다.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어 '카피 교실'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관련도서 50권만 읽으면 이 분야 전문가가 될 수 있다길래 

따블로 100권을 읽었다.

남들이 공무원 공부를 하거나 유학을 갈 때 1년 휴학하고 

도서관에서 광고와 카피 관련 도서 100권을 읽었다.

그랬더니 동기들보다는 광고나 카피에 대해서 더 잘 알더라

읽다 보니 책에서 쓰는 훈련도 시키더라.

그래서 나는 100권 전문가다 라는 식으로 어필했었다.

학점은 2.0밖에 안되는데 100권 전문가라는 워딩에 혹한 사장님은

나를 선택했었던 것이다.

(내 이력서에는 자칭 100권 전문가인데요? 라는 게 전부였다)


이 '100권 전문가'의 과정은 나중에 자세하게 다룰 예정이다.


쥐뿔도 없는데 자칭 100권 전문가라 떠들어대니

마치 대단한 사람처럼 보였었고 그게 나의 USP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100권 읽은 애들은 있었지만 100권 전문가라는 워딩을 내가 선점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때 대구의 대학생 중 광고 관련 도서만 100권 읽은 사람은

내가 유일했을지도 모른다.


능력 있어 보이는 그것이

능력 그 자체만큼 중요하다.

-척 리에페, 베롤회사 최고 경영자-


사실 나는 능력 있어 보이는 만큼

실제로의 능력은 그닥이었지만.



#4.

카피라이터가 된 나는 즐겁게 고통스러웠다.

매일 하는 업무가 대학교 때로 치자면 리포트를 2~3개씩 써야 하는 수준이었다.

가령, 신문광고 카피를 써야 한다면 한 제품에 100개의 헤드라인을 써야 했다.

하나도 쓰기 힘든데 100개를 쓰려니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게다가 하나의 제품만 하는 게 아니었으니..


하지만 하나씩 써서 드디어 100개를 채우면 쾌락이 있었다. (아주 잠시지만)

근데 헤드라인이 끝이 아니다. 바디카피라는 본문 카피도 써야 했었다.

그게 신문광고라면 지면 중 일부지만, 

그 당시 아파트가 핫해서 아파트 브로슈어나 카탈로그를 많이 했었다.

8페이지 16페이지 32페이지를 카피로 채워야 했었으니....지금 생각해도 토 나온다.

근데 또 그렇게 토 나오게 써도 정작 그 카피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는 게 함정이다.

내가 잘 썼는지 못 썼는지 알 길이 없었다.

카피는 원래 전략을 쓰는 일인데 나는 글짓기만 주구장창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지방의 작은 광고회사였지만 사장님은 대기업 출신이고 

영남 제일의 크리에티브 집단을 만들겠다는 포부가 가득하셔서 

아마 서울에서 하던 시스템으로 나를 훈련시킨 게 아닌가 싶다

그 사장님은 적자를 봐가면서도 나를 훈련시켜주셨다. (감사합니다)


적자가 심해질 무렵.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빵집 광고를 위해 자료 조사 회의 중.

이거 장사되겠네? 하시더니 파리에 있을 법한 빵집을 차리셨고 회사는 곧 사라졌다.

사장님의 훈련 덕분에 다른 광고회사에 카피라이터로 가는 건 어렵지 않았었다.


그 후 내가 나름 지방의 변두리에서 잘 나가는 카피라이터다.

라고 착각 하던 무렵 큰일이 생겼다.



#5.

나는 대구에서 나름 핫한 카피라이터였다.(내 생각임)

지방의 3류 카피라이터지만 나는 내가 카피라이터라는 자체가 좋아

능력과 별개로 스스로를 높이사고 만족하며 더 큰 발전을 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5층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었다.

2년 간 병원에서 보호자 생활을 했었고 동생이 퇴원하고 요양 중일 때

아버지가 식도암으로 입원하셨다. 그렇게 다시 1년 간의 보호자 생활을 했었고

동생은 무사히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돌아오지 못하셨다.


그 후 나는 심각한 불안증에 시달렸었다. 

회사에 가는 게 두려웠고 카피 한 줄이 써지지 않아

하루 종일 회사에서 심장이 두근 거리는 상태로 있었다. 

최면 프로그램을 결재해 출근 전에 듣고 갔었지만 소용없었다.

그렇게 몇 개월을 보내다가. 한 친구와 함께 구미 공장으로 도망쳤다


구미는 내게 파라다이스였다. 모든 게 좋았다.

아무 생각 없이 일해도 월급이 나왔었다.

그렇게 구미 생활을 즐기며

약 7년 가까이 카피든 글이든 뭐든 다 접고 살았다.


처음 광고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디자이너 대리님은 어느새 부장님이 되었고, 

다시 같이 하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더 이상 카피를 쓰기는 싫었다. 

남의 글을 억지로 대신 쓰는 일에 염증 같은 걸 느꼈었다.

(하지만 여전히 카피라이터 자체는 좋다)


7년간 너무 놀기만 했다 싶어 공장에 다니며 

틈틈이 책을 읽고 이제는 나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3년을 하다 보니 공모전에 출품해 상을 여러 번 받기도 했다.

공장 사람들은 나를 신기하게 봤었고 그런 시선을 즐기는 재미도 쏠쏠했다.

지금부터라도 노력하면 뭐라도 될 것 같은 작은 가능성도 보기 시작했다.



#6.

크린룸이라고 하는 먼지와 온도 등이 크린 하게 통제된 곳에서 일을 한다.(아주 쾌적한 환경이다)

품질유지관리자로 일하기 때문에 검사사하시는 분들에 비해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보안 때문에 스마트기기를 가지고 들어가진 못하지만 

현장 안에 내가 쓸 수 있는 책상과 컴퓨터가 있어

메모장에 뭐라도 글을 쓸 수는 있는 환경이다. (인터넷이 안 되는 게 안타깝다)

나는 주로 자투리 시간에 틈틈이 썼고, 브런치 작가까지 될 수 있었다.

여기에서 무언가 조금만 더하면 비약적 발전이 있을 것이다.


USP 이야기를 하다가 쓸데없는 이야기로 길어진 것 같지만

결국은 USP를 얘기하기 위해서다.

나는 쥐뿔도 없는 상태에서 

100권 전문가라는 USP로 작은 성공을 맛보았었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 100권이 지금까지의 내 밑천이었다.

그 100권을 읽는 데는 6개월밖에 걸리지 않았었다.

지금은 그 작은 밑천마저 다 떨어져 (지금이 아니라 진작에 다 떨어졌지..)

100권 전문가 과정에 다시 도전하려고 한다.

6개월만 투자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으니 하지 않으면 손해다.


이쯤에서 이 글에서의 USP를 다시 정의하겠다.

USP는 남다른 특별함으로 차별적 우위를 선점하는 것이며,

그 차별적 우위는 누군가에게 혜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나를 더욱 업그레이드된 100권 전문가로 포지셔닝하고

100권 전문가라는 워딩을 선점에 그걸 나의 USP로 삼고자 한다.

그래서 그게 누구에게 뭐 어떤 혜택을 줄건데? 라고 묻는다면,

죄송하지만 그 혜택은 누군가에 줄 게 아니라 내가 가질 것이다.


100권 받고 100권 더를 계속하면 100권 전문가를 넘어 

1000권 전문가가 될 수 있고, 그게 또 하나의 USP가 될 수도 있다.

그게 USP가 아닐지라도 100권, 1000권의 과정은 

엄청난 경쟁력을 가질 게 분명하다. 없던 USP도 생길 것이다.

1000권을 읽는 동안 생각하고 쓰는 일도 병행될 테니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사람이 될 건 완전 뻔하다.


훨씬 더 나은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는데

10년 가까이 시간을 허비해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에

더 늦기 전에 나의 최대치에 도전해보는 심산이다.

이미 많이 늦어버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다시 100권을 읽으며 그 옛날 이덕무의 '이목구심서'를 흉내 내면서,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한 것을 질서 없이 마구 쓸 것이다.

이 이목구심서도 100편을 쓴다면 쓰는 일에 질서가 잡히지 않을까?

그때는 또 자칭 '100편 전문가'라고 떠들고 다닐 예정이다.


100권 전문가100편 전문가

이 워딩은 이제 내것이고, 나의 USP가 될 것이다.

지금은 별 볼일 없지만 나는 점점 더 잘 될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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