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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일웅 Dec 29. 2022

번개를 그리는 시간

미셀러니, 에세이


단골로 가는 미용실이 있다.

가끔 아줌마에게서 소주냄새가 나지만, 단골이다.

어떤 날은 속상해서 소주 두 병 마셨다며

머리를 깎아주지만, 단골이다.
소주를 마신 아줌마에게 귀를 잘릴까봐

두렵기도 하지만 그래도 단골이다.


낮술을 마시고 커트를 해주는 게

그래서는 안될 일이지만,

속상한 일이 많아 그러지 않으면

마음이 너무 괴롭다 하신다.

한 번은 엄마가 새로 담은 매실 액기스를

한 병 주러 가셨다가

남편 때문에 힘들었던 얘기를 주고받으며

같이 낮술을 드시고 온 적도 있다.


영업 중 낮술을 드시는 아줌마가 나는 좋다.

왜냐면 술기운에 할 얘기 안 할 얘기

다 해주시기 때문이다.

술 드신 아줌마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며
이발하는 동안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


이런저런 거침없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신다.
시동생과 욕을 하며 싸운 이야기. (실제로 욕을 하며 말씀하신다)
시동생에게 식칼을 들고 찾아갔다가 파출소에 잡혀간 이야기.
정답을 옆에 놓고 문제집을 풀어도 틀린다는

초등학생 아들 이야기.
남편하고 이혼하고 싶은데 죽어도 안 해준다는 이야기 등
주로 가족 이야기를 마구 털어놓는다.


한 날은 아줌마의 친 여동생 이야기를 해주셨다.
예술하는 것들은 다 미친 것들이라며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아줌마의 여동생은 서양화를 전공해서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단다.


그 여동생이 대학시절 야외에서 그리기 수업을 할 때였다.
한 참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했단다.
교수님과 학생들은 긴급하게 대피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여동생은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는거다.
번개가 치는 그 순간 번개를 그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예술하는 것들은 다 미친 것들인데
특히 자기 여동생은 더 미친것 같다며 이야기는 끝났다.


번개가 치는 순간

번개를 그렸다는 얘기를 듣고
약간의 구라감을 느끼긴 했지만

그렇든 말든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 여동생은 그 순간이 아니면 볼 수 없고,
그 순간이 아니면 느낄 수 없고,
그 순간이 아니면 자신의 화폭에 담을 수 없는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그건 미친 모습이 아니라 삶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멋진 모습이었다.

번개가 칠 때 번개를 그리는 일은

얼마나 짜릿하고 즐거울까?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할 수 없는 일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생각할 수 없는 것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즐길 수 없는 상황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전할 수 없는 말과 마음


그 순간, 그때가 아니면 다신 없을

그것을 놓치지 않고 즐기는 것.
나는 그런 것을 수도 없이 놓치고 있었다는 사실에

번개를 맞은 듯 아찔했다.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

또한 매 순간 죽어가고 있다.

죽고 나면 어찌 될지도 모른다. 그건

죽어야 알거나 죽어도 모른다.

그러니 어느 날 죽기 전에 지금을 챙겨야 한다.


로마의 정치가 카토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이 내 남은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다”


가장 젊은 날의 가장 소중한 순간들을
맥없이 놓쳐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을 인지해야 하며

더 나아가 내가 지금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도

인지해야 한다.

가능한 매 순간 자신의 지금에 대한 메타인지를 해서

최선을 다해 지금을 누려야 한다.




우선 가족들에게 사소한 지금을 실천 중이다.


퇴근 후 집에 오면 12시간 참았던 엄마의 수다가 쏟아진다.

유튜브에서 본 천재 강아지 이야기. 송중기 이야기.

마트에서 배추를 싸게 산 이야기 등 매우 다양하다.

나는 지금까지 엄마의 수다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었다. 그런데

12시간 동안 혼자 얼마나 외로웠으면 그렇게 말을 하고 싶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고, 그동안 너무 못된 놈이었음을 깨달았다.

지금 아니면 못 들을지도 모르는데, 나중에 엄마의 수다를 그리워하게 될 게 뻔한데..

그래서 이제 엄마의 수다가 시작되는 순간 경청을 하며 호응을 해주고 있다.


최근 세차에 재미를 붙인 동생이 내 차도 삐까뻔쩍하게 해 주겠다며

가자고 했다. 요령을 터득했다며 한 껏 신나 있었다.

7일간의 긴 휴가를 받으면서 술을 너무 많이 마셨기에

몸이 너무 힘들었지만, 신나 있는 동생의 지금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나중에 가자 하지 않고 당장 세차하러 가자고 했다.

하지만 세차는 자동 세차가 최고다. 셀프 세차는 중노동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광고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가장 젊을 때 하고 싶은 공부를 다시 해보고 싶다.

광고를 공부하려는 이유는 일단 재밌기 때문이고,

인간을 대상으로 설득을 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광고는 인간을 설득 하기 위해

인간의 심리와 행동 그리고 인간이 사는

세상의 흐름을 관찰하고 통찰하여,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전략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기에

광고를 공부한다는 것은 인간과 세상을 공부하는 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다.

지금의 마음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광고 일을 다시 할 생각은 없다.




“과거나 현재를 모두 닫아라.
내일과 어제의 짐까지 모두 오늘 지고 가려한다면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쓰러진다.
에너지의 낭비나 정신적 고뇌, 번민이 붙어 다니기 마련이다.
오직 오늘을 위해서만 충실히 생활하는 습관을 가져라.”

-윌리엄 오슬로, 영국의 유명한 학자-


더 큰 행복이 언젠가 오는 게 아니다.

작아도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느껴야 한다.

-이시형 박사, '세로토닌 하라' 中-


가장 중요한 순간은 지금이며,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일이다.

-톨스토이-


모든 순간은 생애 단 한 번의 시간이며,

모든 만남은 생애 단 한 번의 인연입니다.

-법정-


현재를 잃어버리는 것은

모든 시간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영국격언-


미래가 좋은 것은 그것이

하루하루씩 다가오기 때문이다

-링컨-


마치 하루가 거기에 죽어가기라도 하듯이 저녁을 바라보라

그리고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기라도 하듯이 아침을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지헤로운 사람이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사람이다.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中-


오늘이라는 날은

지금부터의 인생에 있어서 첫날이다.

-서양속담-


80세의 노인이 친구들에게 말했다.

"최근 그리스어를 배우기 시작했네"

친구들은 도대체 그 어려운 걸 그 나이에 시작해서

어쩌자는 거냐며 비아냥 거렸다.

80세의 노인은 말했다.

"내게 남아 있는 날 가운데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네"

-로마의 정치가 카토의 이야기-


오늘은 내 일생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며

다른 모든 날을 결정해 주는 날이다.

-미셸 몽테뉴-


"자신이 즐기는 일을 하는 것이 행복이 아니요,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을 즐기는 것이 행복이다"

라는 옛말이 있다.

자신이 즐기는 일을 하는 것을 행복한 삶이라고 여기는 한,

우리의 행복은 무척이나 제약받게 된다.

그냥 지금 이 순간,

내가 하는 일을 진심으로 몰입하여 즐길 수만 있다면,

우리는 매일매일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윤홍식, '5분 몰입의 기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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