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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일웅 Dec 23. 2022

내 머리 속의 개구리

미셀러니, 에세이


대구 동인동의 어느 골목에서

주차 라인에 주차를 하면

어디선가 자전거를 타고 나타난 아저씨가

종이 쪼가리 하나를 주면서

천원을 달라고 한다.

일명 주차 아저씨다.


대개 목소리가 호탕하고

어두운 복장을 하고 있으며

쉽게 말 걸기 어려운 이미지를 풍긴다.


그런데 한날은

곱상한 얼굴과 가냘픈 몸을 지닌

아주머니가 나타나 천원을 달라고 했다.

마스크 벗은 쌩얼은 마치 소녀 같은 이미지였다.

그리고 뭔가 사연이 있는 듯 위태로운 표정이었다.

그동안의 호탕한 아저씨들과 매우 상반되었다.


볼일을 마치고 다시 차를 타기 위해 왔을 때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그 가냘픈 아주머니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아주 찰지게 욕을 해대는 것이었다.

이런 씨베리아 북극곰이

사이좋게 수박 씨봘라 먹는

가 족같은 얘기하고 있네.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많이 놀랐다.

나는 마치 가수 아이유가 길거리에서

담배를 벅벅 피우며 지나가는 사람에게

'뭘봐 이 삐리리야' 라며 침을 찍 뱉는

모습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얌전하고 수줍은 사람인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었다.

나는 그 아주머니를 본 게 아니라

내 생각을 본 것이었다.

겉모습으로만 판단한 선입견이었다.


신영복 교수님은 '더불어 숲'이란 책에서

이런 구절을 쓰셨다.


"개구리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

두꺼비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바라보는 것은 두꺼비가 아니라

머리 속의 개구리다."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진 못했지만,

사물의 본질 또는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이미 형성되어 있는

지식과 정보만으로 판단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개구리와 두꺼비는 비슷하지만 다르다.

자신이 개구리를 본 적이 있다고

처음 보는 두꺼비를

개구리로 판단해 버리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3가지 정도를 생각해 봤다.


우선, 보이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버려

본질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차바라는 선인장은 가시 돋은 열매껍질을 벗겨내면

달콤한 과즙과 영양분이 가득하다.

겉과 속이 이리 다른데

겉만 보고 판단해 버리면

그 속에 있는 본질 즉,

달콤한 과즙과 영양분은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또 하나는 비슷한 것을 같은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임신 증상인 줄 모르고 감기 증상이라고 생각해

감기약을 먹는 경우가 있다.

그리 치명적이지는 않다지만, 너무 많은 감기약을 먹으면

태아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과거에 얽매여 현재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아직도

'직장을 다니더라도 집안일은 무조건 여자가 해야지'

라는 사람이 있다. 그런 낡은 가치관으로

여자를 대하는 사람은 두꺼비를 보고

자꾸 개구리만 떠올리는 답답한 사람이다.

결국 그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단절될 것이다.


보이는 것만으로 전부를 판단해서는 안되고

비슷한 것을 같은 것으로 착각해서도 안된다.

버려도 될 낡은 가치관은 버리고,

기존의 내 생각과 달라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도 필요하다.


내 머리속에 어떤 개구리가 불쑥 나타날지 모른다.

두꺼비와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챙겨둬야 한다.

참을 볼 줄 아는 통찰이 더불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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