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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일웅 Jan 01. 2023

예정에 없던 새해

미셀러니, 에세이


오늘은 이라고 시작하며 썼어야 하는데

어제는 이라고 써야 하는 시간이 되어 버렸다.


어제는 2022년의 마지막 날이자 아버지의 기일이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인 것도 

그날이 아버지 기일인 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그만큼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낸 것도 아니다.

외삼촌의 승진을 축하하기 위한 파티만이 예정되어 있었고 

다른 예정된 일은 없었다.

다만 예정에 없던 일이 생겨 예정되어 있던 일이 

예정대로 되지 못했다.


동생이 심한 감기 기운에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집에서 코로나 진단 키트로 테스트하니 양성이었다. 

외삼촌께 연락해 사실을 알리고 파티를 취소한 후 

급히 병원으로 향했다.

토요일이라 어쩔 수 없이 한 병원의 응급의료센터로 갔다. 

동생은 격리실에서 신속항원검사를 했고 코로나가 맞았다.

동생이 검사하는 동안 차에서 기다리며 브런치를 보는데 

올해를 마무리하는 글들이 많았다.

그때 알았다. 오늘이 그날인 것을.


10년 전 아버지는 식도암으로 입원 중이셨고, 

12월 31일에 주무시다가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후 메시지가 왔다.

"올 한 해 수고 많았다 새해는 더 힘내자" 

라는 내용이 담긴 이모티콘이었다.

나는 여기에 죽음을 알리는 답장을 해야되는구나. 

라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더 좋은 새해를 기대하며 맞이하려는 사람들에게

무거운 초대를 해야 했다. 

나의 친척과 지인들은 한 해를 마무리하다 

느닷없이 예정에 없던 나를 만나야 했고, 

몇몇 분들은 새해를 예정에 없던 검은 옷의 나와 함께 해야 했다.

하지만 나와 아버지를 위해 기꺼이 예정을 변경해주신 사람들이 많았고

나는 예정에 없던 많은 사람들과 

한 해의 마지막 날과 새해의 첫날을 함께 했다.


그리고 다시 지금.

나는 예정에 없던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

예정대로라면 새해 첫날 수면을 음주 상태로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정에 없던 동생의 코로나 덕분에(?) 

나는 지금 브런치에 글을 쓰며

섭섭할 뻔 했던 아버지를 생각으로나마 챙겨드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 칭찬을 하나 하자면, 

야채 파시는 분의 100% 실수로 

그분의 트럭과 접촉 사고가 난 적이 있다.

차 수리비를 주겠다는 그분에게, 

일당 날아간다며 기어이 돌려보내시고

자비로 차 수리를 하신... 

나는 멋있다 생각했는데 엄마는 속 터지신...

그런 일이 있었다.ㅎㅎ 


한 해가 무지하게 빨리 갔다.

돌이켜보면 뭘 했는지 떠오르는 게 별로 없다.

매일을 그게 그건 듯 반복하며 보냈으니 

기억날 게 없는 것 같다.

새해가 시작되며 다짐했던 결심들은 

한 달도 채 못가 대부분 분실되었었다.


하지만, 12월 8일 브런치 작가 된 후

재밌고 따뜻하고 존경스러운 브런치 작가님들을 만났다.

그분들이 내 한해의 격을 단숨에 높여주셨다.

그분들 덕분에 글쓰기의 다양성을 사랑하게 되었고,

깨닫기도 하고 분발을 다짐하기도 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 감사한 마음에 구독해주신 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댓글과 댓글의 댓글을 드리는 일을 가장 먼저 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인사 못 드린 분도 있지만 기억하고 있음)


2023년 새해, 

우리 가족과 나, 친구 친척 직장 동료들 

그리고 브런치와 작가님들의 건강을 바라며

새해 첫 글을 발행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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