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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일웅 Jan 25. 2023

소심을 극복하는 글쓰기

미셀러니, 에세이


초등학교 3학년때다.

가가멜게 여동생이 있다면

딱 그렇게 생겼을. 그러니까 아주 못생긴.

짜증 같은 못된 것들의 표정으로 얼굴을 형성한.

그러므로 못생긴 담임 선생님께

뺨을 한 대 시원하게 얻어맞았다.


20cm짜리 자로 30cm가 넘는 선의

길이를 재는 시간이었다.

나는 처음 20cm를 재고 나머지를 재기 위해

20cm 자의 끝을 손으로  다시 나머지를 재려고 했다.

그 순간 등짝에 날려 쫙 소리를 낼 정도의 파워로

왼쪽 뺨에 스매싱이 작렬했다.


쫙~! 하는 순간 교실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반 아이들의 수십 개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그 시선은 고요하지 않았다.

내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천둥 같은 시선이었다.

뺨은 아 겨를이 없었다.

나에게 달려드는 수십 개의 시선이

의 내부를 더 세게 구타했기 때문이다.

쿵쾅쿵쾅 거리며 내 심장이 폭행당했다.

그 시선들은 거두어질 기미 없이

나를 잡아먹을 듯 달려들다.

눈을 마주치면 잡아먹는다는

홍콩할매같은 시선이었다.

 무서운 시선들에 짓눌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심장이 너무 세게 뛰어 몸까지 떨렸다.


"반장한테 가서 물어보고 와!"라는

못생긴 선생님의 호통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반장에게 가서 개미 한숨보다 작은 소리로 물었다.

"니..어..떻게 했..는데?"

반장은 나와 같은 방법으로 했다고 한다.

그러자 못생긴 선생님이

자의 길이가 짧을 땐 연필로 표시를 하고

그다음을 재면 더 정확하다고 알려주셨단다.

반장에겐 가르침을 나에겐 귀싸대기를 날린 것이다.

왜 그랬는지 의문이다. 나는 봉투를 건넨 적이 없어서일까?

오해일 수 있지만 그런 오해를 받아도 싸다. 내게 싸다구를 날렸으니.


그날 이후 나는 시선이 두려워졌다.

내 생각 내 판단에 자신감을 잃고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저 시선은 나를 바보라고 생각할 거 같아.

저 시선은 나를 불쌍하게 여길 것 같아.

저 시선은 나를 답답하게 보는 것 같아.

저 시선은 나를... 하는 식의 눈치였다.


귀싸대기가 무서운 시선을 불러일으켰고

그 시선에 짓눌려 주눅이 들어 버렸다.

그 주눅은 모든 시선을 두렵게 했고

내 시선은 오갈 데 없이 방황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시선이 내게 닿으면

주눅 든 내 시선은 그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피할 곳을 찾았다.

시선에 대한 눈치를 보게 된 것이다.


이 시선은 나를 몇십 년간 꾸준히 괴롭히며

소심한 사람으로 성장시켰다.

내가 소심한 이유는

그때 그 시선 때문이라 생각했다.


남들이 이렇게 저렇게 생각할 거라는

눈치를 보며 긴장하는 일이 잦아졌다.

목소리 작아졌고, 진취적 기상은 락했다.

사람들 앞에서 씩씩하게 래를 부르고

적극적으로 손을 들고 발표하던 나는 사라졌다.

마음이 쪼그라들어 움츠러든 상태가 되었다.


일상생활이 많이 불편했다. 가령,

은행 같은 조용한 곳에서 창구 여직원이

주변 사람들도 들릴 또렷한 목소리로 나를 맞이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올 것 같아 주눅 들어 버린다.

못생긴 담임 선생님 트라우마가 발동하며

심장이 뛰고 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떨리지 않는 척하려고 애쓰며 속이듯 용건을 말한다.

볼일을 마치고 은행을 빠져나오면

무슨 큰 일 하나 해결한 듯 안도하게 된다.

간단한 은행일 하나 보는데도 그랬다.

그러다 보니 은행 같은 데를 가려면

며칠 전부터 결심을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의 나는

굉장히 유쾌하고 유머가 넘친다.

남들이 이렇게 저렇게 생각할 거라는 식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까.


이 눈치를 극복하고 싶어 글을 썼다.

왜 그러지? 왜 그래야 하지?

이게 다 못생긴 선생님 때문인가? 하며

묻고 답하는 식으로 한참을 쓰다 보니

이런 글이 나오게 되었다.


남들이 이렇게 저렇게 생각할 거라는 건

남들의 생각이 아니잖아? 그건 내 생각이잖아?


이렇게 적고 나니 뭔가 뻥 뚫리듯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러네? 남들 생각을 굳이 내가 하며

나 혼자 긴장하고 나 혼자 주눅 들었었네?

남들은 나를 별로 의식하지 않는데

나 혼자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의식했네?


초등학교 3학년때로 돌아가도 마찬가지다.

쫙! 소리가 나서 쳐다봤을 뿐인데 그리고 그뿐인데

나 혼자 그 시선에 온갖 의미를 갖다 붙인 거였다.


나는 남들의 생각 때문에

이러지 저러지 못한 적이 없었다.

남들의 생각 때문에 긴장하고 불안한 적이 없었다.

스스로의 생각으로 나를 괴롭히며,

스스로 소심해졌던 것이다.


이런 생각과 글로 나는 지금 아주 많이 좋아졌다.

아니, 좋아진 게 아니라 원래대로 돌아왔다.

결국, 내 생각 안에서 이랬다 저랬다 했고

비로소 그것을 깨달았다.


이게 결국은 글쓰기 덕분이라고 과장해본다.

글쓰기가 좋은 이유 중 하나다.




대구 ㅎㄱ 초등학교 ㅇㅁㅎ 선생님.

여전히 못생기셨나요?

초등학교 3학년때의 기억은 오직 당신 하나입니다.

나한테 왜 그러셨어어요?

어쨌거나 깨달음 하나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아니 감사 취소합니다. 제가 스스로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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