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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일웅 Feb 24. 2023

거울을 보는 여자의 시력

아무 이야기 찾기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관찰하는 여자의 시력으로

난 그녀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 그녀는 없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초능력 같은 시력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내가 알던 한 여자는

거울을 보며 잡티가 생겼다며 속상해했다.

내 눈에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

그녀의 눈에는 그것만 보인단다.

어떤 시력이어야 그게 보일까?


이런 시력 엄마에게서도 발견된다.

나는 아무리 봐도 그놈이 그놈이고

어제나 그제나 변한 게 없는데

엄마는 예뻐졌다. 더 자랐다. 하시며 좋아하신다.

똑같이 생겼는데 이 아이는 이게 이쁘고

저 아이는 저게 이쁘다 하신다.

이 또한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엄마의 다육이들. 다 똑같이 생겼는데 모두 다른 이름을 가졌다


비슷한 시력을 동생에게서도 발견한다.

요즘 세차에 푹 빠져 있는 동생은

파리 발톱에 스치면 날 법한

초미세 먼지보다 작은 흠집을 보고

공룡이 할퀴고 간 듯 난리를 친다.

이 또한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나는 보지 못하는 걸 본다는 것이다.

왜 나는 못 보고 그들은 볼 수 있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관심의 대상은

생각 속에 항시 있고 또 잔뜩 있다.

보고 있을 때도 생각하고, 보지 않을 때도 생각한다.

보고 싶어 생각하고, 자꾸 생각나서 또 본다.

아까 보고 또 보고, 자꾸 보고 계속 본다.

그렇게 보고 생각하니

이지 않던 게 보이게 된다.


관심을 가지고 온통 마음을 쏟으면

보는 수준과 보는 힘 달라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경지에서 보게 된다.

관심은 관찰하게 하고 관찰이 축적되고 숙성되면

통찰이 이루어진다.

통찰의 단계까지 진화한 시력은

전체를 꿰뚫어 봄과 동시에

부분을 알뜰히 볼 수 있게 되며

볼 수 없던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마침내 뭔가를 집대성 하는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곤충만 보고 곤충만 생각했던 파브르는 '곤충기'를 집필했고,

꽃만 보고 꽃만 생각했던 김덕형은 '백화보'를 완성했다.


마음이 끌려 마음을 쏟아붓는 일.

나는 지금 그런 게 있는가?

(글쓰기는 아닌가 보다 마음을 쏟아 붓지 않으니까)

구체적으로 답하기가 힘든 걸 보니

나는 날 잘 모르고 있다.

그 말은 곧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가 된다.

나에게 관심이 없으니

내가 무엇에 관심 있는지 알 수 없다.

에 대해 잘 모르면서 

내가 원하는 걸 하려고 노력한다?

뭔가 마땅치 않았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면,

나도 몰랐던 눈부신 내가 보일까?

그래서 해 봤다.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나를 지켜보기.

내 생각 내 행동이 이래서

지금의 내가 이렇고 저렇구나 하며

좀 더 관심을 두고 보면

이런 건 잘하고 저런 건 못하는구나 하는 것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를 관심 있게 지켜보자

내 마음도 보고, 내 생각도 보자

보자보자 하니까 이런 것도 보이네 할 정도 보자

뜻밖의 재능을 발견할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으로

며칠간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나를 관찰해 보니.




아무 생각도 목적도 없이 

스마트폰을 보는 걸 수차례 알아챘다.

스마트폰을 무음으로 해놓고는 더 신경 쓰고 있었다.


엄마에게 하는 말투가 살갑지가 않았다.

직장 동료 여자에게는 세상 살가웠다.


사탕은 녹여 먹는데 초콜릿은 깨물어 먹고 있었다.

사탕은 딱딱하고 초콜릿은 부드러워서인 거 같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걸까? 생각했다.


목소리가 작아 상대방이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대답했는데 왜 대답 안 하냐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남이 목소리가 큰게 싫어서 내 목소리를 작게 하나보다.


잠을 많이 못 자면 상당히 예민해진다. 이건 누구나 그럴 거 같다.

오전에만 예민하고 오후에는 괜찮아졌다.


평소에는 욕을 한 마디도 안 하는데

운전할 때는 두 마디 정도 욕을 한다.(이 색히 저 색히 수준)


운전 할 때는 짜증도 내고 욕도 하는 사람이었다가

엘리베이터에서는 무거운 짐을 든 사람을 도와주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잘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는데 잘하는 게 있었다

축구와 노래다.(물론 내 주변 사람들 기준이다)

노력해도 잘 못하는 게 있었다(독서과 글쓰기다. 노력을 덜해서일거다)


생각보다 매너가 좋았다.

어떤 여성분과 동시에 문을 열게 된 타이밍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얼른 문을 열어 잡은 채

그분이 먼저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

(남성이었다면 문을 잡고 기다린 게 매너가 아닐 수도...)


메타인지가 제법 되는 것 같다.

말하는 중에 말이 빠르구나,

끝을 흐렸구나 하는 걸 생각하는 나를 발견했다.

아무 생각 없이 남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하다가

아차. 내가 지금 확실하지 않은 근거로

남 얘기를 하고 있구나 하는걸 알아채고

하던 얘기를 그만두었다.


부정적이었다가 긍정적으로 되는 경우는 있지만

긍정적이었다가 부정적으로 되는 경우는 없었다.


여전히 막걸리를 좋아한다. 막걸리는 몸에 좋다는 믿음이 있다.

소주를 좋아하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몇차례 있었다.(소심인가 싶다)

자신감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줄이라도 책을 매일 읽고 있었고

매일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무슨 압박 때문인지 나중에 더 잘써야지 하며 대충 글을 마무리하다

발행하지 못하는 글만 늘어나고 있었다.

(지금도 나중에 더 잘써야지 하며 대충 마무리 하고 싶다)

자투리 시간에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힘들어하고 있었다.

특히 몰입하는 시간이 없이 쓰다 보니

글이 얄팍해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렇게 나를 조금씩 알아가는 게 재밌다. 하지만,

뜻밖에도 뜻밖의 재능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또 하지만, 

관심을 두지 않으면 몰랐을 것들은 제법 알아가고 있다.

아직 한참을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조금씩 알아가다 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

나로서의 인생을 효율적으로 컨트롤하며

주체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지 않을까?

나를 최대한 아는 것이

나의 최대치를 끌어내는 힘이 되지 않을까? 

그리하여 마침내 나에 대한 통찰로 나를 집대성할 수준에 이르면

능력을 자유자재로 펼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관찰하는 여자의 시력으로

나는 나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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