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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일웅 Feb 20. 2023

나도 모르는 나의 포지션

숨은 이야기 찾기

과학입니다.

침대를 가구가 아닌 과학으로 포지션 시킨 유명한 광고다. 시장 점유율 18%에 그치던 에이스 침대는 이 광고로 업계 1위가 된다. 에이스 침대의 광고 전략은 포지셔닝(Positioning)이었다

포지셔닝 전략이란, 목표 소비자의 마음속에 제품이나 브랜드차별화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제품이 가지는 남다른 차별적 강점으로 어필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마음속에서의 남다른 차별적 강점 차지하기 위한 전략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박카스는 피로회복으로 포지셔닝되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피로회복 드링크 하면 박카스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며,  피로회복제 중 가장 친근하고 효과 있는 이미지로 마음속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반려견 훈련사 하면 강형욱의 자리가 클 것이며, 배달 서비스는 배달의 민족이 차지할 것이다.


사람의 마음속 한 자리를 차지하면 첫 번째로 기억되거나 대표 속성으로 기억되게 한다. 이렇게 마음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다. 에이스 침대처럼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신의 위치를 다르게 바꿔주는 것만으로 하위에서 1위가 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그래서 한 번 포지셔닝되면 그 위치를 바꾸기가 어렵다. 에이스 침대가 "다시 생각해 보니까 우린 가구가 맞는 것 같아요."라고 해도 사람들 에이스 침대에서 과학의 이미지를 빼내기가 쉽지 않다. (지금은 과학이라 광고하진 않는다)


그런데 이 강력한 포지셔닝이 우리의 일상 속에 아주 나쁘게 작용될 수 있다. 가 나를 의도한 대로 포지셔닝할 수도 있지만 남이 나를 강제 포지셔닝 할 수도 있는데, 이때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원치 않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포지셔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둘, 셋 모이면 남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얘기도 하겠지만 험담도 많이 한다. 험담은 그때 그 순간 함께 있는 사람과의 유대감을 증폭시키고 무엇보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좋은 얘기든 험담이든 무슨 얘기를 하든 어쨌든. 사실을 말해야 한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의 대부분은 추측을 이야기하거나 어디서 들은 얘기를 왜곡하고 과장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사실처럼 덧붙여 이야기한다. (우리 엄마도 유튜브에서 본 가짜뉴스를 사실처럼 내게 말하시는 경우가 있다.)


문제는 사실이 아닌 이야기가 사실처럼 받아들여진다는 데 있다. 사실이 아닌데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현상.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느낌으로 믿는 사실. 이런 걸 트루시니스(Truthiness)라고 한. 아주 적절 용어를 마침 알았다. 우리가 남 얘기를 함부로 하는 동안 이 트루시니스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의 마음에 포지셔닝된다. 즉, 사실이 아닌 것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사실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그 사람 자꾸 거짓말하는 것 같아."  말은 사실이 아니라 추측이다. 하지만 이 말을 들어버린 사람은  이 말을 듣기 전과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같을 수 없다. 그 사람이 정말 거짓하든 말든 그 사람은 거짓말과 연관되어 버린다. 그얘기를 반복해서 듣다 보면  정말 거짓말을 하는 것 같고 그 느낌을 사실이라고 믿어 버린다. 그 사람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은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릴 수 있다. 그렇게 그 사람은 거짓말이 그의 대표속성 되어  포지셔닝될 가능성이 생긴다.


나에게 초콜릿이나 빵 같은 걸 자주 가져다주는 A가 있었다. 맛있는 걸 자주 가져다 주니 A는 내 마음속에 좋은 아이로 포지션 되었다. 그런 A가 동갑내기인 B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B는 방금까지 웃으며 함께 이야기하던 사람도 돌아서면 험담을 한다는 것이다. B가 오늘은 누구를 험담했고, 어떻게 험담했는지 매일 들었다. B는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내 마음속에 험담 잘하는 나쁜 아이로 포지셔닝되고 있었다. 급기야 "와 뭐 저런 애가 다 있노?" 하며 A의 말에 동조하고 있었다. A가 내게 B를 험담을 하는 상황이었지만,  A의 말을 사실이라 믿게 되면서 남을 험담하는 사람으로  내 마음에 포지셔닝되는 건 B였다. B가 남을 험담하는 걸 직접 들은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언젠가 사람들의 추측으로 같은 부서 직장 동료 여자의 남자친구로 포지셔닝된 적이 있었다. 차를 같이 타고 갈 일이 있었는데 조수석에 짐이 있어 그걸 치워주기 위해 문을 연 것이 문을 열어 준 것으로 보였고 그걸 본 누군가가 둘이 사귀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은 몇 사람을 거쳐 둘이 사귀는 게 확실한 것으로 규정되어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의 남자친구로 포지셔닝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와 1년 정도 사귄 사람이 되었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여자친구 때문에 누군가를 만날 기회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내가 함부로 하는 말이 트루시니스가 되고 누군가를 그 사람의 의도와 상관없는 모습으로 포지셔닝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제 내가 한 말들을 돌이켜 보니, 확실한 근거가 있는 사실은 별로 말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봤을 때 이건 이렇고, 내 생각엔 저건 저렇고, 아무래도 뭐뭐 한 것 같아, 그 사람 좀 어쩌고 저쩌고 한 거 같은데...라는 식의 말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내 생각과 내 추측을 사실인 듯 말한 것이다. 그나마 사실을 말할 때도 조금 부풀려 말하거나 주관적 생각을 덧붙여 왜곡되게 말한다.


호떡이 조금 탄 이야기가 호떡에 불 붙었다에서 호떡집에 불났다로 전해져서는 안 된다.

자기에게 밥 한 번 사지 않았다고 짠돌이라 말하고 다녀서는 안 된다.

내 부탁을 거절했다고 싸가지 없는 사람으로 말하고 다녀서는 안 된다.

이 좋지 않아 잠시 업무에 소홀했는데 농땡이 부린다고 말하고 다녀서는 안 된다.

교가 많은 여자를 질투해 그 여자를 꼬리 치는 여우라고 말하고 다녀서는 안 된다.


나는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포지셔닝하고 있고, 누군가 나도 모르게 나를 포지셔닝하고 있다. 말이 씨가 되어 트루시니스가 되고 누군가를 부정적인 이미지로 포지셔닝하는 일을 경계해야겠다. 군가를 함부로 이야기하는 사람과 그의 말도 경계해야 함은 물론이다. 나의 말들을 돌이켜 보니 너무나 부끄럽고 너무나 위험했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라고 나쁜 얘기만 하다간 자신이 나쁜 말만 하는 나쁜 사람으로 포지셔닝될 수도 있으니, 이 또한 경계할 일이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니 각별한 주의와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말하려는 것이 근거 있는 사실인지,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는 메타인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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