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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일웅 Mar 09. 2023

우물에 빠진 당나귀

생각하기 나름


이어령의 '생각'이란 책에서

지혜로운 당나귀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한때 인터넷에서 유명했던 이야기라고 한다.

요약하면 이렇다.


어쩌다 당나귀가 마른 우물에 빠졌다.

주인은 당나귀를 구할 방도를 찾지 못한다.

당나귀도 늙었고, 우물도 말랐으니

그냥 묻어 버리기로 결심한다.

마음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

다 같이 삽질을 한다.

당나귀와 마른 우물을 함께 메우려

흙을 채워 넣는데 놀라운 일이 생긴다.

위에서 떨어지는 흙으로 바닥을 다지며

당나귀가 점점 위로 올라와 마침내

우물을 탈출한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생각을 다르게 하면

자신을 해하려던 것이 오히려

자신을 살리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교훈적 메시지로 마무리된다.


여기까지는 당나귀의 지혜를 보는 관점이다.

이 책은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생각을 다르게 하자는 책이므로

다르게 생각해 봤다.


당나귀에서 인간으로 관점을 옮겨봤다.


마른 우물에 빠진 당나귀를 두고 

생각한 결론이 고작,

늙었으니 그냥 묻자. 였다.

마을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다른 방도를 제시하지 않고

생매장에 동조하며 삽질을 공조한다.

서로 합심하며 삽질하여 

흙으로 도살을 시도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무능과 무책임

그리고 잔인함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인간은 당나귀를 구할 방도를 찾지 못한 

무능함을 보여준다.

어떻게든 우물에 빠진 당나귀를 구해야 하는데

방도를 찾지 못하니

당나귀가 늙었다는 부실한 합리화로 

죽이는 것을 결정하며,

주인으로서의 책임을 회피한다.

죽이는 방법이 생매장이니 잔인하다.

그런 인간의 무능, 무책임, 잔인함을 나무라듯.

당나귀는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흙을

목숨을 건지는 데 이용하는 지혜를 보여

인간의 부끄러운 모습을 부각했다.


생각의 관점을 달리하니,

이야기의 주제는 당나귀의 지혜에서 

인간의 무능과 잔인함으로 바뀌면서

긍정적인 분위기보다.

부정적인 느낌으로 흐르는 거 같다.


당나귀의 지혜가 아닌 인간의 관점으로 보니

인간의 부실한 점만 자꾸 생각하게 된다.

삽질마저 얼마나 부실했으면

당나귀가 땅을 다질 여유가 있었을까?


우물에 빠지기 전이나 빠진 후에나 살아온 후에도

당나귀가 늙었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우물에서 살아 올라온 당나귀는 여전히 늙었는데,

늙었으니까 죽이자. 했던 

부실한 생각은 어찌 되었을까?


당나귀의 지혜 앞에서

자신들의 삽질이 부끄럽긴 했을까?


당나귀가 지혜를 발휘하기 전

바닥을 흙으로 채워 

당나귀가 나올 수 있게 하자!

라고 누군가 먼저 생각했다면

삽질은 잔인한 생매장이 아니라

생명을 구하는 지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부끄러운 삽질은 없었을텐데.




다르게 생각해 보는 연습이었는데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연습이 되는 것 같다.

나는 다르게 생각한 걸까?

부정적으로 생각한 걸까?


부정적인 생각의 흐름이 싫어서

또 한 번 다르게 생각해 보니,

저 사람들처럼 당나귀를 묻으려 

삽질하는 인간이 되지 않아야겠다는

반면교사의 교훈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다르게 생각해서

나는 무엇을 얻었을까?

확 이거다. 하는 건 없지만,


책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나름 다르게 생각해 봤다고 생각하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생각을 다르게 해 보자는 시도였으니까.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당나귀의 지혜에 그저 감탄했다가

인간의 부정적인 모습을 보았다가

그 부정적인 모습에서 가르침을 얻기도 했다.


다르게 생각해 봄으로써

처음엔 없었던 다른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다.

자꾸 해봐야겠다.

그러면 언젠가 확 얻어지는 게 있을 거다.


이런 생각을 학생들이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학생때부터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니다. 생각이 모자랐다.

그냥 내가 하는 게 맞겠다.

요즘 학생들은 훨씬 기발하게 생각하니까.




당나귀의 지혜는 누군가가 지어 낸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지혜를 실제로 발휘하는 존재가 있다.


바다거북이는

구덩이를 파고 여러 개의 알을 놓은 후 흙으로 덮는다.

알을 깨고 나온 새끼바다거북이들은 태어나자마자

구덩이를 스스로 탈출해야 한다.

새끼바다거북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지혜를 발휘한다.

한 마리가 흙으로 덮인 위를 긁어낸다.

다른 한 마리는 떨어지는 흙을 아래로 털어 낸다.

또 다른 한 마리가 떨어지는 흙으로 바닥을 다진다.

그렇게 점점 위로 올라와 함께 구덩이를 탈출한다.


시련을 지혜로 맞서면 극복할 수 있다는 실화다.

각자의 역할을 하며 함께 힘을 모으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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