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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호 May 11. 2018

2017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도시전: 공동의 도시>

인상적이었던 다섯 가지 장면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의 대선 공약에 이름을 올린 도시재생이 화제의 중심이었다.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유명을 달리하면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가 한 유명 건축가의 유작이 되었다며 언론이 떠들썩했다. 고가도로를 새롭게 해석하여 보행로로 꾸민 서울로 7017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팽팽하게 엇갈렸다.


한편 익선동을 간 A는 좁은 골목길과 색다른 건물 형태가 나름대로 느낌이 있어 좋다고 말했다. 한 인기 프로그램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등장하여 실시간 검색어와 메인 뉴스를 도배하였고, 바로 그날 집주인은 전세 보증금을 올려주지 않을 거면 월세로 전환하거나 나가라고 말했다. 그리고 최근 몇 년 간 봄철 황사가 유독 심해진 것 같다.



전자는 화제가 된 내용이지만 잠시 듣고는 잊어도 그만인 주제이다. 반면 후자는 도시 또는 건축에 대한 관심이 없더라도 실생활과 관련이 있어 한 번쯤 호기심을 가져봄직한 주제이다. 길고도 길어 입에 달라붙지 않는 ‘도시건축비엔날레’. 도시와 건축은 전자와 같이 낯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후자처럼 생활 깊숙이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이번 글을 통해 2017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서 인상적이었던 몇몇 장면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중 몇몇은 지나치게 학술적인지라 난해할 수도 있지만 다른 몇몇은 일상 속에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현상에 숨어 있는 원리를 명료하게 풀어냈다. 현대 시민이라면 삶 속에서 직간접적 영향을 주고받는 도시, 그리고 건축이기에 쓸데없을지라도 알아두어 나쁠 건 없을 그런 내용과 콘텐츠에 9,000원을 투자하는 건 분명 아깝지 않은 선택이었다.



도시 시대의 역동성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도시연구소, 도이치뱅크 다스 국제 포럼


도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건축, 행정, 제도, 기술 등 인간 문명의 성취가 집약된 결과 형성된 복잡하면서도 다층적인 유기체이다. 수많은 개인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또한 그러한 집단은 헤쳐 모이면서 도시와 국가를 이룬다. 한 개인의 일상만으로도 충분히 복잡다단한 시대, 하물며 도시적 차원에서는 기하급수적인 사회적 행동과 상호작용을 관찰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도시를 분석하여 읽어낼 수 있을까?


<도시 시대의 역동성>은 도시전의 문을 여는 섹션으로써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국제 도시의 도시동태성에 관한 설명과 7개 도시가 겪은 25년의 변화 과정을 다루고 있는 이 전시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도시 환경에 대한 자료를 제시하여 사회 변화에 따라 물리적 환경이 형성되는 과정을 소개했다. 도시 성장, 도시 형태, 경제, 교통, 환경, 사회통합 등 도시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에 대한 정의부터 그러한 요소들의 추이를 드러내는 물리적 사회적 지표를 제시하여 도시를 들여다보는 방식에 대한 일종의 척도를 제안했다.



서울 잘라보기

김소라, 서울특별시


언젠가 사람들은 서울을 ‘몰개성한 도시’라 불렀다. 그러한 견해의 근원을 쫓아가다 보면 무분별한 개발과 규모만 키워버린 건축물 덕분에 도시 경관이 엉망이 되어버렸다는 비판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상황이 묘해졌다. 2010년대 들어 서울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재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K-POP 덕분에 덧씌워진 콩깍지 덕을 보았을지는 몰라도 서울에 대한 국내외의 평가는 한 가지 지점으로 수렴하고 있다. 


별별 요소가 전부 모여 있어 지루할 틈 없는 도시, 빠르고 역동적인 도시


잡종적인, 혹은 용광로적인 서울의 다층성에 대한 평가는 분명 시대의 흐름에 따라 긍정과 부정을 오가지만, 변하지 않는 요소가 하나 있으니 그것은 서울이란 도시의 토대가 되는 ‘지형’이다. 이와 관련하여 외국인 관광객이 흥미롭게 여기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거대한 마천루와 마천루보다 높은 산지가 함께 스카이라인을 이루는 풍경, 엄청난 너비를 자랑하는 강이 도심을 관통하며 흐르는 광경, 게다가 그러한 강을 한 번에 건너는 교량이 수없이 놓인 모습까지. 이 모든 건 정작 한국 사람은 무심히 여기지만, 외국인에게는 생경하고도 신기한 모습이다.


도시건축비엔날레 <서울,일상,레벨> Everyday Seoul, Levels Everyday


<서울 잘라보기>는 위와 같은 지형적 토대 위에서 개발되어온 거대한 도시 서울을 지하, 평지, 고가, 산지 등 네 가지 지층으로 구분하여 분석했다. 흥미롭게도 그 네 가지 영역의 특성과 풍경은 사뭇 대조적이다. 서로 다른 높이에서 시민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분석은 일상에 가려 바라보지 못했던 서울의 면면을 드러내어 보여줬다.



온천 포럼

아프릴 아키텍처


아이슬란드에서는 어디서나 쉽게 온천을 찾을 수 있다. 수도 레이캬비크를 비롯한 아이슬란드 전역에서는 그러한 온천을 공공목욕탕으로 활용해왔는데 그들은 대개 수영장이나 복합 여가시설에 자리 잡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러한 온천이 도시 구성원을 물리적, 사회적으로 결속해주는 특별한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사적인 이야기부터 정치적 토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교류를 나눈다.


<온천 포럼>은 내가 사는 도시를 돌아보게 했다. 서울, 아니 대한민국에는 지역 구성원이 허물없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포럼 성격의 공간이 있는가? 농촌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자 또는 평상부터 OO탕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공중목욕탕까지. 이 나라 이 땅에도 시대를 가리지 않고 ‘마을’이란 공동체의 공론을 주도하는 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커뮤니티 공간에 대한 욕망은 매우 근원적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2017년, 나는 그러한 공간을 떠올릴 수 없었다. 아파트 대단지에는 나름대로 공원과 놀이터가 있으나 육아라는 소재에 한정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고, 그나마 불특정 다수가 북적이는 카페 공간에서는 우연적 소통보다는 지인과의 계획적 소통만이 일어날 뿐이다. 나 아니면 모두 오답이라 여기는 인터넷 소통 문화에서 나는 ‘포럼 공간의 부재’라는 대한민국의 오늘을 읽는다. 지금 이 시대를 반영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의 가능성은 정녕 없는 것일까?



길거리 음식: 공유 식당

니라몬 쿨스리솜밧, 도시디자인 개발센터(UddC)


모 포털에서 노점상에 대한 기사 댓글을 볼 때면 복잡미묘한 마음이 들어 눈을 떼지 못한다. 댓글 여론에 따르면 노점은 탈세의 온상이고, 미관을 해치는 불법 시설이므로 철거당해도 싼 암적인 존재이다. 종로3가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 기울이는 낭만을 즐기길 좋아하는 나에게는 가슴이 아려오는 내용이다.


기사를 읽던 내가 도착한 곳은 청계광장, 나는 그곳에서 푸드트럭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을 보았다. 그야말로 ‘아’ 다르고 ‘어’ 다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노점은 불법적 영업 행위의 온상으로 여겨지지만, 푸드트럭은 조금 기다려도 희열과 설렘을 주는 존재로 여겨진다. 카오산 로드는 낭만적이지만 아현동 골목은 더럽다.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만 하는 걸까?


<길거리 음식: 공유 식당>은 노점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에 시사하는 바가 큰 사례 연구였다. CNN에서 세계 최고의 길거리 음식을 선정할 정도로 노점의 콘텐츠 가치가 주목받는 시대, 이 연구는 관광콘텐츠를 넘어 하나의 도시 시스템으로 자리 잡은 아리-프라디팟(Ari Pradipat)의 노점상에 주목했다. 이곳의 노점은 단순한 즐길 거리가 아니다. 방콕에서 노점은 주변 상가 및 시설, 행정과 상호 보완적 관계를 갖는 주체이며 사회적 네트워크와 장소성을 형성한다. 거리에 촘촘한 틈새 공간을 빚어내고 고객과 밀접하게 소통하며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 노점의 가치는 고정적인 시설과는 명확히 차별화된 가치를 갖는다. ‘적법성 여부’라는 편협한 프레임에서 한 발 벗어나면 노점만의 유연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공유재

고바야시 게이고, K2LAB, 크리스티안 디머(와세다 대학교)


<공유재>는 도쿄 야나카의 다양한 지역사회 프로젝트와 지역 내 크고 작은 공동체를 대표하는 스물한 가지 오브제를 선보였다. 여러 오브제를 통해서 읽어낼 수 있었던 화두는 다양했는데 그중에서도 ‘공동체’, 그리고 ‘유휴공간’이란 키워드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효율 중심의 성장이 자리를 비운 그곳에서 사람들은 공유하고 소통하며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도쿄 야나카의 사례 역시도 그러한 세계적 추세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오래된 학생 아파트를 개조하여 카페 및 호텔 로비로 활용하는 HASIGO의 사례를 감명 깊게 보았다. 그들의 공간 운영은 정말 독특한데, 본 건물에는 카페 및 호텔 로비만이 마련되어 있고 객실과 욕실은 각각 다른 건물, 그리고 공중목욕탕에 분산되어 있다. 지역 상점과 식당은 호텔 층별 편의시설의 역할을 대신한다. 오래된 건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마을 커뮤니티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호텔로 설계한 발상은 매우 신선하다. 이는 유형 자산의 공유를 넘어 의식의 공유가 전제되어야만 가능한 운영 방식이기 때문이다. 야나카의 사례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공존하지만, 구성원 개인의 자율적인 의지와 독립성을 전제로 형성되는 지역사회의 느슨한 연대야말로 21세기 도시 공동체의 프로토타입임을 역설한다.



※ 아는동네 미디어를 통해 배포한 콘텐츠입니다.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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