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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호 Jun 04. 2018

을지로가 을지로인 이유

대한민국 현대 도시의 탄생 공식

다른 동네는 보통 한남동이나 서촌처럼 지역 자체를 가리키는 동명이나 별칭으로 불리잖아요. 그런데 을지로는 왜 도로명이 동네를 부르는 이름이 되었을까요? 이유를 알고 싶어요


을지로 취재를 시작할 무렵, 동료가 질문을 던졌다. 사소한 질문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도로명으로 동네를 지칭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여느 동네와 다른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동네만의 특수성을 반증하는 요소일 터. 그 이유를 자세히 파고들면 을지로란 동네의 이모저모를 배울 수 있을 거란 직감이 들었다.


ⓒ 아는동네 편집부


역사를 통해 보다: 너의 이름은


역사적으로 볼 때 한반도의 지명은 특정 지역을 대표한다고 여겨지는 자연의 랜드마크(산, 강, 숲, 바위 등)나 인공의 랜드마크(향교, 성곽, 능, 교량, 포구 등), 그 외 구전 설화 및 유교적 가치 등을 포함하는 인문적 요소에 착안해 만들어졌다. 이는 오늘날 ‘을지로’라 통칭하는 광범위한 지역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남산 자락에서 흘러내린 수많은 물줄기와 야트막한 언덕 사이에 형성된 여러 마을에는 이런 원리에 따라 고유한 이름이 붙었다. 을지로 전역을 아울러 속칭 ‘남촌’이라 불렀다고 하지만 행정적으로 보나 당시 백성들의 인식으로 보나 오늘날처럼 도로 중심의 단일 권역으로 해석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전통적인 동네와 지역 개념은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며 크게 흔들렸다. 일제는 수도 한양의 이름을 경성으로 바꿈과 동시에 서구에서 들여온 근대적인 도시 계획을 도입해 자연 발생적인 지명의 맥락을 깡그리 무시하고 일본식 지명을 붙였다. 이는 을지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대한문에서 출발해 을지로 입구 주변에 있던 야트막한 고개인 ‘구리개’를 거쳐 광희문까지 이어지는 간선 도로망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조선총독부는 이 길에 ‘황금정(黃金町)’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황금정길은 그대로 을지로의 원형이 되었다. 식민 통치의 번영을 기원하는 호사스러운 새 이름과 함께 수백 년 동안 가꿔온 전통적인 지역성이 소멸했다.


타의로 새로 이식된 건 이름만이 아니었다. 같은 시기, 경성은 일본식 도시 구획에 따라 철저히 개조되었다. 일제는 남대문과 명동 일대를 식민 통치를 위한 중심지로 개발했고, 그 주변 지역을 통(通: 대로, 예: 남대문통), 정(町: 시와 구를 구성하는 작은 구획, 예: 황금정), 정목(丁目: 오늘날 가街, 예: 종로1정 목, 종로2정목) 단위로 세분화해 구획했다. 그 과정에서 을지로 지역은 황금정1정목부터 황금정7정목까지 이어지는 선형 구역으로 재편되었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기시감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이를 그대로 계승한 게 현재 을지로1가(을지로입구)부터 7가에 해당하는 지역 구획이다.


해방과 동시에 민족 정기를 회복하는 취지에서 일본식 지명은 모두 폐기했고, 황금정은 을지문덕 장군의 이름에서 착안한 을지로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바뀐 것은 이름 뿐이고 주요 도로를 기준으로 삼아 가(街) 단위로 구획하는 방식은 그대로 남았다. 현재 을지로 일대는 수많은 행정동과 법정동으로 나뉘어 있지만, 자연스레 을지로를 동네명으로 부르고 있다.


ⓒ 아는동네 편집부


도시적 관점에서 보다: 을지로로 대동단결


을지로 주변의 산림동, 입정동, 오장동, 방산동, 인현동을 하나로 아울러 을지로로 부르는 심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서두에서 이 지역은 일제의 경성 도시 구획, 특히 주요 간선 도로를 중심으로 도시 형태를 재편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지역이란 사실을 언급했다. 그러한 도시 계획을 전제하고 이곳을 살펴보면 을지로란 도로가 주변 구역의 중심을 가로지르며 중심축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입정동, 산림동, 인현동의 복잡한 골목은 지류가 본류로 합류하는 강물처럼 하나같이 을지로를 향해 뻗어 나가고, 그 덕분에 주변 지역의 교통, 물류, 유동 인구가 모여든다. 수많은 건물이 세워지고 철거되는 개발 과정에서도 한결같이 지역의 중심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도로. 그리고 넓은 구역을 예외 없이 전부 가로지르는 도로. 그렇기 때문에 을지로는 오래된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동시에 그 자체로 주변 지역을 상징하는 지명이 된 것은 아닐까?


나아가 대중에게 강남, 홍대와 같이 한 지역이 거대한 권역으로 여겨지기 위해서는 대상 지역이 유사한 특성을 공유해야 한다. 예를들어 신사, 논현, 역삼, 선릉 등을 하나로 아울러 강남이라 부르는 경우, 사람들은 대로를 따라 나란히 늘어선 고층 빌딩과 유동 인구가 많은 거대한 상권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는 대중이 세세한 동네를 구분하지 않고 강남 전역을 유사한 하나의 상권, 혹은 건축과 공간의 특성을 공유하는 권역으로 해석하는 데서 기인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서울 시민 대다수는 을지로를 연상하며 오래된 건물, 원부자재 상점, 공업소 등을 떠올린다. 실제로 6·25 전쟁 이후 세운상가군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심형 공업지구, 그리고 원부자재 유통망은 오늘날까지도 을지로를 대표하는 지역 특성이다. 그러므로 대중은 지역을 관통하는 을지로를 통해 지역 전체를 하나로 아울러 불러도 무방하다 여기는 것이다.



낯선 동네를 아는 동네로 만드는 방법


비록 그 시작은 식민 통치 중에 강제되었지만, 을지로란 이름이 정착되는 과정에는 현대 도시 서울의 탄생 과정이 담겨 있고, 다른 한편으로 지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 담겨 있다. 익숙하고 당연하게 부르는 지명 속에 도시 계획, 상징, 랜드마크 등 다양한 요소가 서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누가 상상했을까?


을지로란 이름을 처음으로 소리 내 부른 사람들이 느꼈을 가슴 뭉클한 감동을 되새겨본다. 을지로를 을지로라 부르지 못했을 때는 그저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을 모든 것이 을지로란 이름을 부르자 하나의 꽃이 되었다. 친숙하고 정이 가는 어느 동네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를 때, 비로소 그 동네는 당신에게로 다가와 하나의 꽃이 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동네 이름에는 어떤 사연이 담겨 있는가? 그 이름을 궁금해하기 시작할 때, 낯선 동네는 당신에게로 다가와 아는 동네가 될 것이다.




매거진 <아는동네, 아는을지로>를 통해 배포한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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