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하고싶은 말 있지?"
"응. 미안한데 너랑 있으면 좀 피곤해."
이 매몰찬 대화의 주인공은 거의 20년지기였던 내 짝꿍과 나.
우리 둘은 고등학교때부터 셋트로 불릴 정도로 붙어다녔던 사이다.
우리가 친해진 계기는 번호였다.
친구와 나는 가나다 순으로 정렬된 번호에서 앞뒤로 연결된 번호였는데
신기하게도 3년 내내 같은 반에 번호까지 앞뒤로 찰싹 붙어있었다.
무슨 활동을 하던지 우리는 같은 조에 속할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다.
졸업하고 나서는 둘이 전혀 다른 길을 갔지만 그래도 우정은 끈끈하게 이어졌다.
친구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과 함께 한달에 한번씩 꼭 모여서 밥도 먹고 수다도 떨고~
결혼과 돌잔치 같은 경조사에 빠지는 건 상상조차 못하는 사이였던 것이다.
친구는 처음부터 나와 전혀 반대 성향이었다.
덜렁대고 뭐든 대충 넘어가려는 나와 달리 친구는 워낙 꼼꼼하고 하나하나 제대로 하지 않으면 큰일나는줄 아는 스타일이었다.
이런 친구와 어떻게 친해진건지 지금도 미스테리이긴 하다.
부부도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끌어당긴다는 말이 있던데 이 친구도 그랬나 싶다.
여튼 우리는 서로 집에 숟가락이 몇개 있는지 알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고 그렇게 평생 잘 지내줄 알았다.
내가 참고있던 친구에 대한 스트레스를 터트리기 전까진.
둘째를 낳고 얼마되지 않았을때의 일이다.
사실 돌이켜보면 이때가 최근 내 인생에서 제일 힘들때였던 것 같다.
첫째를 낳은 이후 늘 다시 일을 하고 싶었고, 운좋게 기회를 얻었지만 둘째의 임신으로 인해 무산된 상황이었다.
그래서 심적으로도 힘들었고, 2년 터울인데도 불구하고 둘째를 낳고난 내 몸의 상태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 전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친구의 쓸데없는 치밀함, 대화의 80%를 주도하는 버릇 등에 슬슬 짜증이 났다.
그래도 친구니까 하면서 참아보던 어느 날.
나는 기어이 친구와 크게 말다툼을 하고 말았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말실수를 하긴 했다.
평소의 나답지 않게 직설적으로 친구에게 불만을 말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실수했다 싶다.
하지만 나도 그때는 한계가 왔던 것 같다.
평소에 늘 자신의 불행한 상황을 한탄하던 친구가 그 부분을 막상 지적하니 오히려 화를 벌컥 내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달까?
놀란 다른 친구들이 나서서 화해를 시켜주었지만 앙금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친구의 연락을 피하기 시작했고 뭔가 직감한 친구는 일부러 우리집으로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했다.
당시 모든게 다 힘들었던 나는 '너와 함께 있으면 피곤하고 즐겁지 않다'고 매몰차게 말해버렸다.
좀 놀란 표정이었던 그 친구는 나에게 빌려줬던 아이의 외출복을 달라고 하더니 그날로 연락을 끊어버렸다.
이것이 마지막까지 지나치게 꼼꼼했던 내 친구의 마지막 모습이다.
짝꿍? 솔직히 나에겐 좀 씁쓸한 단어다.
이 일로 인해서 나는 베스트프렌드를 잃었고, 함께 연락하던 다른 친구들까지 연락 두절 상태이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진정한 친구란 과연 무엇인지 곱씹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나에게 스트레스 주는 사람들은 전처럼 눈치보지 않고 끊을줄도 아는 요령이 생겼다.
친구. 친구라는 단어는 언제 들어도 참 좋다.
아무것도 모르던 순수하고 철없던 시절을 함께 공유한 가까운 이들을 우리는 친구라고 한다.
그들과 함께 지냈던 긴 시간들은 내 인생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입맛이나 취향이 바뀌는 것처럼 친구도 바뀌는 것 같다.
최근 나에게 친구는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하고 서로를 응원해주는 이들을 뜻한다.
그들은 비록 함께한 시간은 짧지만 누구보다 크게 교감하고 진심으로 서로를 걱정하고 아껴준다.
앞으로 내가 더 나이가 들면서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현재의 나를 아껴주고 서포트 해주는 이들이 친구란 사실은 변하지 않을 듯 하다.
문득 내 삶의 끝자락에는 어떤 친구들이 있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