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장소 하지만 다른 기억
언덕 위 아늑했던 그 빌라, 성산빌라.그곳을 생각하면 고향에 간듯 마음이 따뜻해진다.
우리 가족은 늘 넉넉하지 못했던 집안 사정 덕에 거의 반지하에서 살았었다.
여름에 홍수가 나면 늘 물이 한가득 들어와 열심히 바가지로 물을 퍼내던 기억.
당연히 해도 잘 들지 않았고 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칙칙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집에 살았던 어렸을 때의 나는 집에 친구를 초대한 기억의 거의 없다.
동네가 아닌 옆에 있는 구에 고등학교를 배정받아 꽤 멀리 다녀야하는 했을 무렵,
갑자기 엄마가 나머지 식구들을 모두 호출하셨다.
그리고 어느 낯선 동네의 꼭대기로 함께 올라가자 하시더니 어느 빌라를 가리키셨다.
"우리 여기로 이사갈거야."
그렇게 처음본 성산빌라의 첫인상은 '밝다'였다.
꼭대기에 있어서 그런지 햇빛이 밝게 내리 비추고 있었다.
이사를 가보니 생각보다 면적도 꽤 넓어서 흡족했다.
한겨울에 눈이 쌓이면 비탈길을 오르내리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 집이 좋았다.
창문을 열면 보이는 탁트인 뷰가 좋았고 뒷쪽을 조금만 올라가면 꽤 큰 공원도 있었다.
제일 좋았던 점은 방을 같이 쓰던 우리 자매가 각자 방이 하나씩 생긴것이었다.
생전 처음 생긴 나만의 공간덕에 까탈스러웠던 사춘기 시절을 그나마 잘 견딘것 같다.
엄마도 그 곳이 꽤나 마음에 드셨는지 이사할때 가구와 가전을 나름 좋은 것으로 바꾸시고 만족해 하셨다.
하지만 이 좋았던 기억속에서 어쩐지 아빠의 기억은 흐릿하다.
생각해보니 이때가 아빠가 제일 바쁘셨던 시절이셨던것 같다.
늘 새벽같이 출근하고 툭하면 지방으로 출장을 가셨던 아빠.
얼굴 한번 보기도 힘들었던 아빠는 이곳에서의 추억에서 어쩐지 동떨어져 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내가 좋았던 성산빌라.
엄마도 지금도 가끔 추억하시는 성산빌라.
하지만 아빠의 기억 속에 그 빌라는 많이 다른것 아닐까?
우리에겐 아늑하고 편안했던 그 시절이었지만
가장의 무게를 홀로 짊어지셨던 아빠 입장에서는 마냥 좋진 않으셨을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하게 우리를 먹여살리신 아빠 생각에 코끝이 찡해진다.
지금은 정년퇴직 후 집에 계시는 우리 아빠.
문득 아빠가 너무나 보고싶어진다.
오늘은 애들 키우느라 정신없다 이런 핑계 대지 말고 꼭 전화를 해야겠다.
아빠! 우리 아빠!
어린 시절 우리 가족 먹여 살리느라 고생하셨고 정말 고마워요.
뒤늦게 철든 딸이 이제야 아빠가 어떤 기분인지 알것 같아요.
그리고 정말 많이 사랑해요.